전국장애인부모연대와 420 장애인 차별철폐 공동투쟁단 등이 '세계 자폐증 인식의 날'인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도입 촉구 전국 1박2일 집중 결의대회'를 열고 삭발식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300여명은 3일 오전 청와대 인근인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며 전날부터 1박2일 농성을 벌였다.
권씨는 "우리 아이를 봐야 (발달장애인의 현실을) 안다"며 "혼자서 눕거나 앉지 못하고 의사표현도 못한다"고 말했다. 권씨는 경찰이 허용한 집회·시위 구역 내 청와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아들을 뉘어놨다.
권씨는 "간신히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발달장애인은 갈 곳이 없다"며 "2016년에도 서울시청 앞에서 46일간 농성 끝에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설립이 결정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센터 이용기간은 최대 5년이다. 권씨는 "시간이 지나면 갈 데가 없어 또다시 아이의 다음 5년을 위해 싸워야 한다"며 "내일 걱정 없이, 오늘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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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씨는 "최근에 생긴 서울 관악 평생교육센터에는 13~18년 만에 '밖'으로 나온 아이들도 있었다"며 "어떤 부모는 할 수 없이 아이를 정신병원에 보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무릎을 꿇고 삭발을 해도 안된다면 아이를 굶겨서라도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얻어내고 싶다는 게 권씨의 마음이다.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에서 청와대 방향 도로에 누워 있는 발달장애인 이진규씨(21). 이씨의 어머니 권진영씨(47)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아들을 청와대에서 가장 가까운 도로에 뉘었다. /사진=방윤영 기자
20살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최명진씨(49)는 "비장애인이라면 한창 활동할 20살인데도 우리 아이는 낮에 어딘가 갈 곳도 없고 지역 사회에 어울리지도 못한다"며 "국가는 그동안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유령이나 그림자 취급만 했을 뿐 무언가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이동권·노동권·자기결정권 등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다는 권리가 우리 아이에게는 없다"며 "혼자 살 권리, 결혼할 권리, 노동할 권리 등 우리 아이는 아무것도 선택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된 지 4년째지만 이제는 예산 타령 중"이라며 "언제까지 우리 아이들이 방임 대상이 돼야 하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일명 발달장애인법)은 발달장애인의 생애주기별 복지를 지원하고 권리를 보호하며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데 도움을 주자는 취지로 2015년 11월 시행됐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 시민단체는 관련 예산에 발달장애인지원센터 설치 예산만 포함됐을 뿐, 법취지에 맞게 생애 단계별 최소한의 지원을 위한 예산이 없다고 비판해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발달장애인 관련 예산은 올해 85억7000여만원으로 지난해 90억8000여만원보다 5억원가량 줄었다. 전국 발달장애인은 약 2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부모들은 이제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싸우겠다는 각오다. 삭발은 아무 일도 아니다. '독한 엄마', '악쓰는 투쟁가'로 불려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최씨는 "나를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에게 '그럼 가만히 앉아 내 새끼 죽는걸 봐야겠느냐'고 반문하고 싶다"며 "내가 내 새끼를 방임하게 되는 게 더욱 피눈물 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요구하며 삭발을 한 부모 209명은 각자의 머리카락을 하얀색 상자에 담았다. 상자에는 '국가의 책임이다.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도입하라'는 문구와 부모들의 이름을 적었다. 부모들은 이 상자들을 청와대에 전달하려 했지만 제지당했다. 50개 상자만 청와대 분수대 앞에 두고 왔다. 이들의 목소리는 이날도 청와대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며 삭발식을 진행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부모들의 머리카락이 담긴 상자. /사진=방윤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