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명' 목숨 끊는 가해자, 미투는 어디로…

머니투데이 최동수 기자, 최민지 기자, 이영민 기자, 김영상 기자 2018.03.1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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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가족까지 무차별 공격 자제해야"…미투 본질 흐려선 안돼, 성폭력 문화 이번에 꼭 바꿔야

임종철 디자인기자임종철 디자인기자


연기자 조민기씨(전 청주대 교수)에 이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던 대학 교수가 또 다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미투 운동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 일부 남성들을 중심으로 미투 운동에 반발하는 조짐이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투가 남성 혐오나 여성 혐오 현상 등 남녀갈등으로 전개되는 것을 경계한다. 불필요한 갈등을 배제하고 가해자의 응당한 처벌·징계,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전환 등 미투 운동의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성폭력 폭로가 나온 한국외대 교수 A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건 17일. 15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A 교수가 제자들에게 성추행·성희롱을 했다'는 글이 올라온 지 이틀 만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연기자인 조씨나 대학교수인 A씨 모두 명예나 위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로 가해 혐의가 폭로되자 사회에서 재기가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우울감보다는 급성 스트레스 탓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극단적 선택을 한 남성 가해 혐의자가 또 나오자 남녀갈등 양상은 커지는 모양새다. 주말인 17일과 18일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는 '(여성들의)잘못된 근거 없는 주장을 강력히 항의한다', '미투 운동과 더불어 남성의 안위가 위협받고 있다', '여성의 인권은 중요하고 남성의 인권은 중요하지 않은 것인가' 등 미투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투 운동이 남녀갈등으로 번지는 것을 경계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투 운동은 남녀를 떠나 조직 내 권력관계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행위들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며 "남녀 간 대립이나 경합의 문제로 환원하는 건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가해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도록 마녀사냥식 비난도 자제할 필요가 있다. 미투는 피해자들의 고백에서 시작해 가해자의 사과, 정당한 처벌과 징계, 사회 변화로 나아가야 하는데 가해자가 죽으면 고백 이후 단계가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조씨나 A 교수 관련 기사를 보면 과격한 댓글을 발견할 수 있는데 매우 가학적이고 공격적"이라며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정당한 처벌을 받았다면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 또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경찰청 한 관계자는 "가해자가 죽으면 바뀌는 것 없이 끝난다"며 "단기적으로는 피해자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가해자를 교화와 치유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가장 기본은 피해자 보호다. 피해 사실을 폭로한 이후에 비난이나 헛소문 등 2차 가해에 시달리지 않도록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가해자 가족까지 공격하는 식의 지나친 여론몰이도 삼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전화숙 서울대 여교수회 회장(컴퓨터공학과 교수)은 "가해자 가족을 가해자와 동일시해 비난하는 시선이 있는데 가해자와 가해자 가족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며 "아울러 '피해자들 때문에 가해자가 죽었다'는 식의 시선이 생기면 피해자들의 고백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무차별적인 비난과 공격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고 상처만 남긴다는 지적이다.

미투 운동이 두 달째 계속되는 상황에서 제도 정비도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경희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피해자나 가해자가 속한 집단이 분야가 서로 달라 소속된 기관별로 재발 방지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성폭력 전담기구나 조사위원회를 만들고 체계적인 재발방지 교육 등 예방활동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미투는 결코 멈춰서는 안되며 이번 기회를 살려 우리 사회에 해묵은 성폭력 구도와 문화를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진단이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여성학자)은 "미투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가해자들의 죽음으로 피해자들이 더 이상 나서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피해자가 고백했을 때 2차 피해를 당하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가해자는 확실한 처벌을 받는다는 인식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지금부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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