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後…여성 문화 콘텐츠, 비주류에서 주류로

머니투데이 이경은 기자 2018.03.17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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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콘텐츠 통한 젠더문제 이해 도모·여성 주체화 과정 통한 각성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의 반향은 문화 콘텐츠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비주류로 치부되던,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는 콘텐츠가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

'미투' 운동의 반향으로 페미니즘 도서 판매량이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사진제공=교보문고'미투' 운동의 반향으로 페미니즘 도서 판매량이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사진제공=교보문고


출판계에서는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이갈리아의 딸들'과 같은 페미니즘 도서의 판매량이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2년 전 무렵부터 서서히 꿈틀대기 시작한 페미니즘 열풍에 미투 운동이 불을 붙인 셈이다. 관련 신간 도서도 쏟아진다. 줄곧 재테크나 투자 관련 서적이 차지하던 서점의 중심 매대를 페미니즘 서적이 장식 중이다. 오랜 시간 음지에 가려져 있던 성폭력과 젠더 문제를 어떻게 규정하고 접근해야 하는지조차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문화 콘텐츠를 통해 이해를 도우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말 개봉해 지금까지 흥행몰이 중인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그 예다. 시험과 취업 등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는 일상에 지친 주인공이 홀로 시골에 내려가 보내는 잔잔한 삶의 여정을 그린 이 영화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감독과 배우 모두 여성이다. 그동안 시장을 점유해 온 남성 위주의 콘텐츠에 이제는 대중이 피로감을 느낀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사회 중심의 문제에서 비껴나, 연애나 이성애가 여성의 삶의 전부인 듯 그리던 전통적인 콘텐츠의 시각에도 변화가 나타난다. 최근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의 공식 경쟁부문에 초청된 드라마 '마더'는 진한 모성애를 감동적으로 담아낸 작품으로, 이성애나 남성의 역할은 중심에서 멀어져 있다.

여성에 대한 억압과 욕망, 차별 등을 주제로 한 연극 두 편 '너와 피아노', '아홉소녀들'/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극단 프랑코포니여성에 대한 억압과 욕망, 차별 등을 주제로 한 연극 두 편 '너와 피아노', '아홉소녀들'/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극단 프랑코포니
연극과 전시도 눈에 띈다. 서울시극단은 '창작플랫폼-희곡작가' 프로그램을 통해 김경민 작가의 신작 '너와 피아노'를 선정해 공연 중이다. 피아노 교습소의 선생과 여자 제자들을 중심으로, 억압된 세상에 갇힌 소녀들의 욕망과 선택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다. 앞서 이윤택 연출가의 성폭력을 최초 폭로한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가 연출을 맡은 작품이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또 지난 10년간 우수한 프랑스 현대 희곡을 국내에 소개해 온 극단 프랑코포니는 창단 10주년을 기념해 상드린느 로쉬의 연극 '아홉소녀들(부제: Push&Pull)'을 무대에 올린다. 9명의 소녀들의 놀이를 통해 성폭력과 차별, 페미니즘 등의 주제를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신여성 도착하다' 전시는 엄격한 가부장제를 부정하고 성 평등과 여성해방을 주장했던 신여성들의 인생을 보여준다. 지난해 12월 시작한 이 전시는 지금도 하루 평균 1000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며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2만8000원 상당의 도록은 2주만에 동이 나 추가제작에 들어갔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신여성 도착하다' 전시에 하루 평균 1000명의 관람객이 몰리며 인기를 얻고 있다./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신여성 도착하다' 전시에 하루 평균 1000명의 관람객이 몰리며 인기를 얻고 있다./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제작자가 만든 문화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향유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적극적인 논의의 장으로 뛰어드는 움직임도 두드러진다.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유료 강연이나 토론, 토크쇼 등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과거엔 일부 소수에 의해 향유되던 콘텐츠가 주류로 올라온 것.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촉발된 집회와 해시태그 운동, 촛불집회, 미투로 이어지는 일련의 '주체화 과정'을 통해 여성들의 각성이 일어나고 있다"며 "그동안 예술과 문화, 지식 담론에 존재해 온 젠더 문제에 남녀 모두 눈뜨지 못했던 시간을 각성하고, 이제는 어떤 콘텐츠를 보더라도 젠더의식을 가지고 보게 되는 변화가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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