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컬리 김슬아 대표 ““마켓컬리 없이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됐으면 좋겠다.”

서지연 ize 기자 2018.03.1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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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료품을 다루는 온라인 프리미엄 마켓 마켓컬리는 3000여 가지의 품목을 소비자에게 제공한다. 소비자는 매일 먹는 식재료부터 접하기 힘든 수입 식품, 시간과 발품을 들여 찾아가야 했던 맛집 메뉴에 이르기까지, 원하는 상품을 주문하면 금세 받을 수 있다. 밤에 주문했을 경우 그다음 날 새벽까지 받을 수 있다. 이 서비스는 순식간에 화제가 됐고, 마켓컬리의 김슬아 대표는 최근 주목받는 경영자가 됐다. 김슬아 대표에게 이 일을 시작하며 겪은 것들에 대해 들었다.

마켓컬리 김슬아 대표 ““마켓컬리 없이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됐으면 좋겠다.”


원래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했다고 들었다.

김슬아
: 외국 금융기업에서 꽤 오랫동안 일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취미생활이 딱 두 개 있었는데 LP판 모으기와 음식이었다. 특히 음식은 사는 데 꼭 필요한 것이라 점점 파고들게 됐다. 예를 들어 나는 계란 노른자 비린내에 예민한 편인데, 왜 이 비린내가 나는지 너무 궁금한 거다. 알려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혼자 계란의 성분이나 생육 과정까지 공부하게 됐다.



굉장히 다양한 미식 경험을 했던 것 같다.
김슬아
: 어렸을 때부터 먹는 데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 본가가 울산인데, 외할머니가 항상 굴비를 직접 말리시곤 했다. 17살에 처음 서울에 오기 전까지 모든 집들이 그렇게 먹는 줄 알았다. (웃음) 그리고 내가 홍콩에 갔던 2006년이 와인 관세가 풀리고 홍콩에 미쉐린 가이드가 들어온 시기였다. 마침 같은 직장에서 일하던 동료 중 하나가 레스토랑 비즈니스를 하는 집안 출신이어서 이 친구와 어울려 셰프들에게 요리도 배우고 와인도 공부했다.

오랜만에 한국의 식문화를 접했을 때는 어떤 느낌을 받았나.
김슬아
: 일단 음식이 충격적으로 쌌다. 그만큼 가성비는 굉장히 좋지만 음식의 스펙트럼이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1년 정도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밥 먹는 속도에 맞추는 일이 힘들었다. 워낙 바쁘게 살다 보니까 식사를 즐기기보다는 ‘연료’처럼 채워 넣는 느낌이었다. 한국에 들어와서 한동안 이름난 레스토랑을 찾아다녔고, 좀 더 특별하고 맛있는 음식을 해 먹으려다 보니 식재료까지 직접 찾아 나서게 됐다. 그래서 ‘이 맛있는 걸 나만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마켓컬리를 만들게 됐다.

온라인 프리미엄 마켓의 특성상 식품의 보관과 배송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시작한 이유가 있나.
김슬아
: 오프라인 매장을 만들 돈이 없었다. (웃음) 현실적으로도 온라인이라는 채널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오프라인 프리미엄 마켓의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거기에 엄청난 임대료와 매장 운영비, 인테리어 비용까지 전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비싸서 프리미엄이 아니라 좋아서 프리미엄이고 싶었다. 또 오프라인 프리미엄 마켓들을 보면 문 닫기 직전까지 매대에 물건이 꽉 차 있는데, 채소나 과일의 경우 하루만 그렇게 놓아두어도 대부분은 버리게 된다. 좋은 물건을 구해 와서 비싼 장소에서 팔고, 그 비용을 가격에 얹으면서 물건까지 많이 버리는 것은 악순환이다.

이런 시스템을 만들려면 어려움이 많았을 거 같다.
김슬아
: 생산자를 설득하는 것. 우리가 이름난 유통사도 아니고, 이제 막 시작하는 기업이었기 때문에 그분들 입장에서는 마켓컬리에 물건을 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좋은 생산자들은 대체로 돈에 별 관심이 없다. 상업적인 걸 떠나서, 우리는 당신 물건의 가치를 제일 잘 아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어필했다. 예를 들어 스페셜 티 커피의 경우 가장 신선한 맛을 위해 100개를 구입하더라도 딱 일주일 동안만 팔았다. 생산자의 리스크를 우리가 떠안은 거다.



첫 상품이 상추였다는 점도 특이하다.
김슬아
: 그 상추에는 나름의 상징성이 있다. 생산자를 찾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유기농 농법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분을 만났는데, 그분의 주력 상품이 상추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미친 짓이었다. (웃음) 사실 상추는 가격 등락폭이 상당히 큰 식품으로, 시기에 따라 가격이 1~100배까지 차이가 난다. ‘마켓컬리’를 2015년 5월에 열면서 상추를 팔기 시작했는데, 7월에 폭우가 내리며 1kg당 6000원이었던 상추가 잠깐 60만 원이 된 적이 있다. 팔 때마다 적자가 나서 손이 덜덜 떨릴 지경이었는데, 그렇다고 가격을 올릴 수도 없었다.

현재 판매하는 상품만 3000여 가지다.
김슬아
: 내가 MD헤드를 맡고 있지만, MD의 상품 선택권은 100% 독립적이다. 무엇보다도 정말 음식을 좋아하고, 좋은 상품을 파는 것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을 MD로 뽑으려고 노력한다. 지금까지 다행히 그런 MD들이 열심히 일해주었고, 그래서 다양한 상품군을 갖출 수 있었다. 가져온 상품에 대해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상품위원회를 열어 70가지 정도의 기준에 따라 판매 여부를 결정한다.

그중에 특별히 애정을 가지고 있는 품목이 있다면?
김슬아
: 일단 가장 어려운 건 수산물이다. 마켓컬리는 당일에 잡아 올린 수산물만 판매하는데, 변수가 너무 많다. 그래도 내가 바닷가 출신이다 보니 쉽게 포기할 수 없다. (웃음) 또 다른 품목은 쌀이다. ‘조선향미’는 전통 한국 쌀 품종을 현대화한 것으로, ‘익숙한 식재료가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를 직관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상품이다. 나는 ‘조선향미’로 밥을 지을 때 꼭 옆에 서서 냄새를 맡아보라고 강조한다. 팝콘처럼 고소하고 달콤한 향에 깜짝 놀라게 될 거다.


지난해 살충제 계란 파동 이후 마켓컬리를 찾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음식에 대한 고민과 책임감이 더 늘었을 것 같다.
김슬아
: 너무 안타까웠지만, 평소와 똑같은 수량을 팔 수밖에 없었다. 동물 복지 계란이 닭이 빨리 알을 낳도록 하면 안 되는 건데, 그걸 어길 수는 없으니까. 마켓컬리 MD들이 산지에 정말 자주 가는 편인데, 솔직히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사건이 있고 나서는 현지 실사를 더 늘리고 관리를 보강했다. 유기농 인증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게 있다고 해서 저절로 품질이 지켜지지는 않는다. 인증에 의지하기보다는 상식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농장에 CCTV를 달지 않는 한 생산자가 동물을 학대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생산자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관계에서 오는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수입 상품에 대해서는 국내 상품과는 또 다른 기준이 있을 것 같다.
김슬아
: 수입 상품 중 1차 가공식품의 경우에는 현지 실사를 많이 간다. 연어 담당 MD는 아일랜드로 출장을 가는 식이다. 또 공장 단위로 검증이 필요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일본 원전 사고 이후 많은 수산물 가공공장이 중국으로 옮겨갔는데, 이런 경우 현지 공장에 가서 일본의 기준으로 품질 관리가 되고 있는지 꼭 확인한다. 가공식품의 경우 주로 유럽산을 취급하는데, 유럽은 식품안전성 검증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 따로 검증을 할 필요도 없다. 물론 상품에 대한 모든 종류의 서류를 원문으로 받아서 꼼꼼히 검토한다. 다만 그렇게까지 식품안전성 기준이 높지 않은 나라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고민이 있다.

상품에 대한 정보 외에도 장바구니 필수품 주별 가격 조정안을 공개하고 있다.
김슬아
: 동일 등급 상품에 대해 다른 유통사와 가격을 비교하고, 사이트에 공개한다. 다른 유통사에서 엄청 싫어한다. (웃음) 그런데 우리가 궁금해서 하는 거다. 마켓컬리는 재고도 책임지고 물류, 유통, 상품화까지 제공하니까 생산자는 우리에게 좋은 가격으로 물건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모르는 비효율이 혹시 있을까 봐 더 조사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배우는 것도 많고, 고객들에게는 시장 가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알려줄 수 있다. ‘실수는 하더라도 거짓말은 안 한다’는 믿음을 주기 위해 굉장히 애썼다. 예를 들어 당도 10 브릭스 이하의 귤을 팔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일부 고객들이 시다고 하셔서 확인해보니 당도 9.8 브릭스여서 전량 환불 조치를 한 적도 있다.

소비자들의 기준이 높아진 것을 언제 느끼나.
김슬아
: 친환경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포장이 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냉장, 냉동, 상온 상품을 따로 포장하는데, 한 번에 할 걸 세 번에 나눠 하니 당연히 비용도 더 많이 들고 손도 더 많이 간다. 사실 정말 친환경으로 가려면 소비자들의 도움이 조금 필요하다. 실제로 가정별로 아이스박스를 배포하고 최소한의 패키지로 배달하는 방법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공동창업자가 다른 사업에서 그런 방식의 배송을 했던 적이 있는데, 아이스박스를 문 앞에 내놓는 사람이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 현재 샛별배송이 매일 8천 건이 넘는데, 그 방식에는 위험 요소가 너무 많다. 기후와 포장만 연구하는 직원들이 있는 만큼, 어떻게든 더 나은 방법을 찾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회원 수가 50만 명이 넘었는데, 새로운 소비자들은 어떤 특징이 있는 거 같나.
김슬아
: 초기에는 30-40대 워킹 맘들이 가장 많았다. 요즘은 20대와 50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아무래도 50대는 건강을 생각해서 좋은 식재료를 찾는 것 같고, 20대는 확실히 좀 더 예쁘거나 특별한 음식을 선호한다. 어머니들이 한식 재료를 많이 산다면, 20대들이 가장 좋아하는 상품은 치즈나 베이커리, 디저트 등이다. 그리고 미혼자들이 많은 것도 중요하다. 우리 최우수 고객 중 한 분이 여성 싱글인데, 한 달에 식재료만 150만 원 이상 구입한다. 요리에 맞는 도구나 식기를 요청하는 분들도 많다. 전체적으로 한 끼를 먹더라도 제대로 먹고 싶어 하는 성향이 강한 것 같다.

상대적으로 여성들이 관심을 많이 갖는 분야인데, 사업을 하는 여성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김슬아
: 무엇보다도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내가 꼭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찾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문제를 잘게 쪼개서 해결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많은 창업자들이 처음부터 큰 비전을 제시하려고 애쓴다. 큰 비전에 너무 몰두하다 보면 거기에 꼭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 작은 과제들을 놓치기 마련이다. 사업은 얼핏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사실은 아주 보편적인 가치를 매일 실행하는 지루한 과정을 견디는 일이다.

마켓컬리의 슬로건은 ‘당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완성하는 프리미엄 마켓’이다. 마켓컬리로 인해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기를 바라나.
김슬아
: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마켓컬리 없이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됐으면 좋겠다. (웃음) 그리고 우리 내부에서는 “한국의 식문화를 바꾸자” 같은 이야기를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다들 잘 먹고 잘 사는 게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식문화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수준까지 가기를 바란다. 음식은 마켓컬리가 잘 고를 테니, 아무 걱정 없이 자신의 삶에서 더 높은 가치를 깨닫고 추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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