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ICO'는 요술방망이, 수백억이 '뚝딱'…"뭘 믿고?"

머니투데이 강상규 소장 2018.03.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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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재무학]<212>‘묻지마 투자’ 낳는 블록체인 ICO를 보는 불편한 시선

편집자주 주식시장 참여자들의 비이성적 행태를 알면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들 합니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


“블록체인에 기반한...”

가상통화공개(ICO)라 부르는 새로운 자본조달 방식이 전통적인 자본시장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주식도 아니고 채권도 아닌 것에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의 돈이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걷잡을 수 없이 몰리고 있습니다.

특히 ‘블록체인’과 결합된 ICO는 마치 “금 나와라 뚝딱!”하고 휘두르면 금은보화가 땅에서 솟는 도깨비방망이와 같습니다.



ICO는 기업이 새로운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때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보통 스타트업이 주로 사용하지만 ICO의 인기가 급등하면서 최근에는 기존 기업도 주식 발행이나 대출에 의존하지 않고 ICO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모바일 메신저 업체인 텔레그램은 ‘TON’이라는 블록체인 플랫폼을 개발하면서 가상통화인 '그램'(Gram)을 발행해 올해 ICO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미 벤처투자자 등 일부 큰손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전판매(Pre-sale)에서 8억5000만달러(9100억원)를 모집했고, 이달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공개판매(Public sale)까지 이뤄지면 20억 달러(2조1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조달하게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국내 최대 모바일 메신저 업체인 카카오도 지난 5일 이달 중 블록체인 전문 자회사 ‘카카오블록체인’(가칭)을 설립한다고 밝혔습니다. 업계에서는 카카오가 자회사를 통해 '카카오코인' ICO를 진행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업력이 오래된 기존 기업들까지도 전통적인 자본시장 대신 새로운 ICO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형국입니다.

기업이 전통적인 자본시장을 통해 새로운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스타트업의 경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채권자는 기업의 상환능력을 심사하고, 주식 투자자는 성장성을 점검합니다.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투자자는 생존가능성을 추가로 따지지요.

이들 전통시장 참여자들은 기업에 자금을 투자하고 주식이나 채권을 받습니다. 그래서 배당과 이자를 받을 권리를 챙기고, 만약 투자한 회사가 부실해지면 청산할 권리도 부여받습니다. 물론 지분이 많은 사람은 경영에 참여할 권리도 갖고요. 왜냐하면 투자자가 바로 기업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ICO에는 이러한 권리가 전혀 없습니다. 스타트업이 ICO를 하면 사람들로부터 자금을 받고 새로운 가상통화 혹은 디지털 코인, 토큰을 발행해 주는데, 이 가상통화를 받은 사람은 ICO 기업과는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습니다. 가상통화를 가진 사람은 기업의 주인이 아니고 완전 별개입니다.

ICO에 참여해 가상통화를 받은 사람은 기업으로부터 이자나 배당을 못 받을 뿐만 아니라 만약 회사가 부실해져 망해도 아무런 보상이나 청산배당을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ICO에 구름같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ICO를 통해 새로 발행된 가상통화가 거래사이트에 상장돼 거래만 되면 코인 가격이 단번에 수백배에서 수천배, 심지어 수만배까지 오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2012년 9월 세상에 처음 나온 리플은 지난해에만 무려 3만5000%가 급등했고, 비트코인은 2017년에 1300%가 넘게 올랐습니다. 2015년 7월 세상에 처음 공개된 이더리움도 2017년에만 8700% 넘게 올랐습니다.

거래사이트에 상장돼 거래되고 있는 가상통화 가격이 이처럼 급등하면서 ICO에 대한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급기야 스타트업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ICO를 통한 자금조달이 전통적인 벤처캐피탈(VC) 펀딩을 추월했습니다.

미국 IT 전문 매체 테크크런치가 지난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14개월 동안 자금 모집에 나선 가상통화 관련 전 세계 벤처기업 527곳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ICO를 통해 45억달러(4조8119억원)의 자금을 유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기존 벤처기업의 자금조달 수단인 벤처캐피탈(VC)을 통해서는 ICO의 29% 수준인 13억달러(1조3900억원)에 불과했습니다. 벤처업계에서 전통적인 자금조달 방식인 VC보다 ICO가 더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죠.

국내에선 금융당국이 지난해 9월 ICO를 금지하면서 스타트업 등이 국내에서 ICO를 못하고 있지만 해외에 나가서 ICO를 하는 것까진 막고 있지 않습니다.

실제로 '토종코인'으로 불리는 보스코인(Boscoin), 아이콘(ICON), 에이치닥(Hdac), 메디토큰(MED) 등 국내 기업들이 스위스 등지에서 재단을 세우고 ICO를 실시해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의 자금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또한 블록체인 관련 사업을 계획하는 국내 스타트업들도 한결같이 ICO를 통해 수백억원의 자금 조달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들이 보여주는 소위 ‘백서’(white paper)에는 블록체인과 관련한 섹시한 용어들로 가득 차 있지요. 스마트계약, 프라이빗 및 퍼블릭 블록체인 등등. 그리고 AI(인공지능) 기술과 딥러닝 기술, 로봇, 자율주행 등과 같은 혁신 용어도 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새로운 사업을 위해 ICO를 한다고 나선 스타트업들 대부분이 도대체 무슨 사업을 하는지, 비즈니스모델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겁니다. 스타트업이 VC 펀딩을 받기 위해 이런 식으로 IR을 하면 단번에 퇴짜 맞기 일쑤인데, ICO 시장에선 전혀 개의치 않은가 봅니다.

섹시한 용어들로 가득찬 백서를 만들면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의 돈이 아무런 조건 없이 굴러들어오는 걸 보면 어리둥절한 게 아니라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도대체 뭘 믿고...” 너도나도 하는 블록체인 ICO를 마냥 좋게만 볼 수 없는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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