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를 배운 두 달 뒤

황효진(칼럼니스트) ize 기자 2018.02.23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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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 처음으로 요가를 시작했다. 그 전까지 몇 가지 운동을 한 적은 있지만 건강에 문제의식을 크게 가진 건 아니었다. 한때 수영을 다니다 평영이 뜻대로 되지 않아 그만뒀고, 프리랜서가 된 후 딱히 할 일이 없어 친구를 따라 한강 달리기를 시작했다가 미세먼지와 종종 찾아오는 발목 통증에 나가떨어졌다. 운동은 됐고, 있는 몸을 더 망치지 않는 선에서 잘 간수하자고 마음먹길 수차례였다. 삼십 대를 넘어서면 운동으로 체력을 다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수십 번도 더 들었으나, 도대체 무슨 자신감인지 ‘내 몸이 그 정도로 엉망은 아니겠지’ 생각했다. 운동의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말하면서도 나에게만은 예외인 듯 여기며 무관심했다. 요가를 하기로 결심한 것도 운동보다는 새로운 뭔가를 해본다는 기분 때문이었다. 해먹에 거꾸로 매달리고 주리 틀듯 다리를 감아올리며 한 시간 정도 플라잉 요가를 체험한 후, 나는 3개월 수강권을 끊었다.



유연성은 부족하지만 처음치고는 제법 잘 따라가는 것 같다는 느낌은 완전한 착각이었다. 그건 청강생을 배려한 선생님이 아주 천천히, 까다롭지 않은 동작 위주로 수업을 진행해준 덕분이었다. 요가 시간이면 매번 내 몸이 어떻게 얼마나 뻣뻣한지, 어디가 뭉쳐 있고 얼마나 아픈지 뼈저리게 감각해야 했다. 몸의 이상은 오히려 운동을 해본 사람이 훨씬 더 잘 알 수 있다는 것도 그때 깨달았다. 평소에는 사용하는 근육이나 관절 자체가 적기 때문에 아주 심각한 통증을 느끼지 않는 이상 그럭저럭 멀쩡한 몸이라고 판단하기 쉽다. 몸을 제대로 써본 적이 없으니 어디에 어떻게 힘을 주고 또 언제 힘을 풀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엎드려뻗쳐 비슷한 자세를 하고 있다가 뒤에 있던 발을 앞으로 뻗은 양팔 가운데로 한 번에 당겨오는 동작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 나보다 요가를 오래 한 친구에게 물었다. “그거… 가능하긴 한 거예요? 대체 어떻게 하는 거예요?” 친구는 말했다. “배에 힘을 주고 발을 앞으로 당겨와야죠.” 배에? 힘을? 어떻게?

다리 벌리기는 늘 90도가 최선이었다. 다리와 가슴을 맞대는 동작을 하기 위해서는 무릎을 구부려야 겨우 가능했다. 팔 힘도 턱없이 부족해서 플라잉 요가를 할 때는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길 아예 포기하고 그냥 매달려 있기만 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근육과 관절의 뻑뻑함만큼이나 나를 놀라게 만든 건 호흡과 집중력, 그리고 몸을 이완시키는 기술 역시 서툴다는 사실이었다. 아주 간단한 동작, 가령 팔을 몸 양옆에 편안하게 놓은 채 눈을 감고만 있어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팔을 위로 곧게 뻗을 때도 잔뜩 긴장한 어깨가 쑥 따라 올라가는 탓에 계속해서 힘을 빼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들숨과 날숨을 일정한 길이로 반복해야 하는 호흡은 언제나 거칠었고, 조금만 힘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숨을 멈춰버렸다. 심지어 편안하게 누워 휴식을 취하는 사바아사나조차 쉽지 않았다. 어려운 동작을 따라 하느라 의식 저 아래 묻혀 있던 잡념들이 둥실 떠올라 머릿속은 복잡했고 미간에는 주름이 잡혔다. 몸에 힘을 빼고 깊게 호흡을 하고 머리를 비우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근력과 유연성, 파워는 둘째치더라도 집중력이 부족하고, 성격이 급하며, 포기가 빠르고, 그러다 보니 호흡도 저절로 불규칙해지는 상태. 그게 나였다.



그 후로 약 두 달이 지났다. 드라마틱한 효과가 있다면 좋겠지만 당연히 그렇지 않다. 달라지기는 했다. 플라잉 요가를 할 때는 코어 힘과 팔 힘이 예전보다는 조금 강해져서 거꾸로 매달려 있다 다시 몸을 일으키는 게 처음만큼 고통스럽진 않다. 등을 둥글게 말며 척추뼈 하나하나를 감각하거나, 사바아사나 단계에서 잠들기 직전처럼 의식을 편안하게 만드는 일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그보다 중요한 변화는 어떻게든 호흡을 일정하게 유지해보려 노력하고, 할 수 있는 한 동작을 중간에 포기하지 않으려 하고, 그럼에도 허리나 목 등 어딘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날에는 무리해서 자세를 따라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요가는 나의 한계를 뛰어넘게 만든다거나,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키는 종류의 운동이 아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나에게는 아니다. 천천히 숨을 쉬며 내 몸에 집중하고, 그 집중력으로 중심을 잡거나 몸을 움직여보고, 내 몸이 어떤 상태인지 판단하고, 그러다 보면 아주 느릴지라도 어떻게든 어제보다는 나아진다는 것을 배우는 운동이다. 단기간에 뭔가를 성취해낼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욕심 역시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JTBC ‘효리네 민박2’의 첫 회에서 새벽 요가를 끝낸 이상순과 이효리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어떻게, 에너지 빵빵해졌어?”(이상순) “어, 장난 아니야 지금.”(이효리) 나는 두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요가 초보 중의 초보이지만, 어떤 기분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내 몸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게 되는 것, 오로지 그 일에만 얼마간의 시간을 쓰는 것, 시간을 거듭하며 몸의 미세한 변화를 알아채는 것. 거기서 생겨나는 에너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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