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에 큰 보탬이 된 기업 중 일부는 올림픽을 발판으로 전세계에 기술력과 브랜드를 마음껏 뽐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동계올림픽 준비 단계에서부터 최순실 국정농단에 연루돼 비슷한 이미지가 덧씌워진 기업들은 수백억, 수천억원 단위의 후원을 하고서도 쏟아지는 비난 탓에 행사 전면에 나서지 못한 것이다. 올림픽 흥행을 타고 글로벌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릴 기회를 잃은 기업들은 평창이 남긴 숙제를 풀어야 할 때다.
현대차 넥쏘
KT도 평창 덕을 봤다. 평창올림픽 개막 행사 중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평화의 비둘기 퍼포먼스'를 통해 KT의 기술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 1200여명 평화의 비둘기 공연자가 들고 있는 LED 촛불의 밝기와 점멸이 일사분란하게 제어돼 감탄을 자아냈다. KT가 올림픽 기간 세계 최초로 선보인 5G 네트워크가 적용돼 가능한 일이었다. KT에 평창은 'ICT올림픽'이었다.
◇평창 유치의 주역 이건희 회장, 준비의 주역 조양호 회장 등 속앓이 = 국가 대표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삼성에게 평창은 아쉬운 무대였다. 총수인 이건희 회장은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3, 2007년 두 번이나 유치에 실패한 평창올림픽을 세 차례 도전 끝에 따낸 주역이다. 하지만 2011년 유치 성공을 이끌었던 그는 3년 후 지병으로 쓰러졌고 올림픽의 성공을 현장에서 함께 하진 못했다.
삼성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1000억원 이상을 후원하는 국내 유일의 공식 월드와이드 파트너지만 이번 올림픽 기간 중 TV 광고나 프로모션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강릉과 평창에 지난 9일 연 홍보관의 개관식도 생략했다.
이건희 회장과 함께 평창 유치를 이끈 조양호 한진 회장도 공식직함을 반납했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스키협회 회장으로 평창에 머물 예정이었지만 돌연 법정 구속되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올림픽 마케팅의 실종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후유증으로 지적된다. 비단 삼성 뿐만 아니라 롯데나 SK 등 관련 문제에 연루됐던 국내 상위 기업들이 적잖게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올림픽을 통한 기업 브랜드 가치 상승 등 간접효과는 당초 44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됐지만 마케팅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뉴욕타임스는 "평창에 한국 기업이 없다"는 지적까지 내놨다.
삼성전자 평창올림픽 쇼케이스
재계는 평창이 남긴 숙제를 곱씹고 있다. 그간 우리 기업은 정부 주도의 국제 스포츠 행사를 위해 발 벗고 뛰었지만 이 협조가 지난 최순실 사태처럼 자칫 권력형비리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는 염려가 커져서다. 비영리행사에 대한 후원과 협조에 대한 공개적이고 투명한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평창을 계기로 앞으로 스포츠와 관련한 기업 지원에 대한 기준이나 규준을 마련해야 한다"며 "기업이 다시는 이런 문제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