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2평 고시원 50대 노동자, 로또 한장 남기고...

머니투데이 (이천)경기=최동수 기자 2018.02.15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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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죽음에 대하여②]고독사 현장 전문업체 동행취재…정리·소독에 5시간, 단절된 삶·생활고 그려져

편집자주 지금 이순간 어느 골방 구석에서 누군가 죽어가고 있다. 누군가의 아빠 엄마 아들 딸이다. 명절이 더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우리 옆에 있다. 이들을 보듬지 못하는 한 우리는 아직 문명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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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숨을 들이마시자마자 헛구역질이 나왔다. 지독한 썩은 내였다. 한여름 아파트 음식물 쓰레기통의 악취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생선 썩은 냄새 100배 강도에 상한 식초를 더한 느낌이다. 불과 수 초 만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부패한 시신에서 나는 일명 시취(屍臭)였다.

지난 10일 오전 8시 경기도 이천시 주택가에 있는 한 고시원. 전날 시신이 수습됐지만 2평 남짓한 방바닥은 시신이 부패하면서 흘러나온 피와 기름으로 흥건했다.
유품정리·특수청소 업체 제일클리업의 이승훈 대표(42)와 염윤성 실장(46)은 방안을 한번 둘러보고 마스크와 장갑을 꼈다. 고독사와 살인사건 현장을 수없이 다녔지만 시취는 매번 참기 힘들다고 했다. 이들이 이 고시원을 방문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1년 전에는 옆방에서 노인 한 명이 고독사했다.



작업 준비를 마친 이씨와 염씨가 방에 들어가 가장 먼저 고인에 대한 예의를 차렸다. 방안 구석에 있던 작은 탁자를 침대 위에 올리고 미리 준비한 양초 2개를 피웠다. 종이컵에 소주도 한잔 따라 올렸다.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기에 앞서 명복을 빌어줬다.

이 대표는 “요즘에는 가족들이 고독사했다는 연락을 받아도 찾아오지 않고 장례식도 치러주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며 “지난주 경기도 성남 한 원룸에서 공무원을 자녀로 둔 노인이 죽었는데 자녀는 현장에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전 8시30분 본격적인 청소가 시작됐다. 우선 손으로 쉽게 치울 수 있는 침구류와 옷 등을 자루에 담았다. 작업은 고시원 주인의 당부로 주변 세입자들 모르게 비밀스럽게 진행됐다. 방안 창문과 출입문은 모두 닫았고 작업복도 눈에 띄는 흰색 보호의 대신 평상복을 입었다.

이 대표는 “유품정리나 특수청소업체가 계속 늘어나면서 1년 전에는 한 달에 25건 정도 일했는데 요즘에는 10~15건 정도 한다”며 “2명이 고시원을 청소하고 70만~80만원 정도 받는데 요즘은 경쟁이 치열해져 이 금액도 받기 힘들다”고 말했다.

방안에 유품들을 하나씩 정리하다 보니 고인의 삶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고인은 50대 일용직 노동자 허모씨(53)였다. 경찰에 따르면 허씨는 병사로 추정된다. 미혼이었고 누나와 여동생이 있었지만 유품에서 가족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교도소에서 수감 중인 친구가 보낸 안부 편지가 발견됐을 뿐이다.


침대 밑 구석에서 발견된 라면 2개, 냉장고 한 켠 물병에 담긴 소주, 일당 10만원짜리 막노동 영수증은 고단했던 허씨의 삶을 떠올리게 했다. 현금은 종이컵에 담긴 약간의 동전과 1000원짜리 4장이 전부였다. 통장 잔고는 20만원이다. 벽에 고이 걸린 5등 당첨 로또 한 장(당첨금 5000원)은 방안에서 찾은 유일한 행복의 흔적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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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40분 유품 정리가 끝나자 벽지와 장판 제거에 나섰다. 벽지와 시신 노폐물이 쌓인 장판을 뜯어내는 데만 2시간이 걸렸다. 장판을 걷어낸 시멘트 바닥에까지 혈흔과 기름 등 노폐물이 스며들어 있었다. 이 대표 등은 단백질분해제를 노폐물 위에 뿌리고 수세미로 문질렀다.

오후 12시50분 방안에 소독제와 방향제를 뿌렸다. 이어 돈과 통장, 평소 허씨의 메모 등 유품을 담은 작은 박스를 방안에 놓았다. 혹시 가족들이 찾아올 수도 있어서다. 이제 시취가 모두 빠지기까지 최소 2주에서 최대 두 달 간 환기를 시키면 된다.

이날 2평짜리 작은방에서 200리터(L) 자루 20개와 냉장고, TV, 옷장, 침대 등의 유품이 나왔다. 유품은 모두 폐기물 처리장에서 소각한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마주친 사람들이 얼굴을 찌푸렸다. 작업자들의 옷에 시취가 뱄기 때문이다.

'천하보다 귀하다'는 한 생명은 이렇게 떠났다. 고인은 53년 인생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기는커녕 남긴 흔적조차 5시간 만에 모두 사라졌다.

결국 원인은 사회와의 단절에 있었다. 유품에 사진 한 장 남길 여유조차 없었던 50대 일용직 노동자의 힘든 삶은 자신을 2평 방에 가뒀다.

이날 오후 취재진은 평소 허씨가 다녔던 분식점 주인을 만났다. 허씨의 단골집이었지만 고인을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었다. 낯을 많이 가렸던 허씨가 대화했던 사람은 분식점 주인 노모씨(여·57)와 현장에서 가끔 만났던 일용직 노동자 3~4명이 전부였다.

노씨는 “손님들이 먹다 남은 소주를 물병에 담아달라고 할 정도로 어렵게 살았다”며 “쓸쓸하게 죽어 안타깝지 뭐……”라며 자리를 떴다.

독거 노인과 달리 사회적으로 방치된 중장년층을 위해서는 단절을 극복할 공적 지원 시스템도 사실상 거의 없다. 제2, 제3의 허씨는 우리 주변 곳곳에서 언제든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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