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탈북 청년 "우리의 소원 통일? 남한 살아보니…"

머니투데이 이동우 기자, 이영민 기자, 김영상 기자, 이예은 인턴기자 2018.02.22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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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애프터]⑪전문가 "단계적 접근 중요, 젊은 세대 스스로 느끼게"

편집자주 '하나된 열정'으로 세계인의 가슴을 울린 2018 평창올림픽이 3일후인 25일 막을 내린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기가 최고조에 달한 가운데 성사시킨 '평화올림픽'이지만, 그만큼 '평창 이후'에 기다리고 있는 숙제의 무게도 크다. 스포츠를 넘어 '평창'이 우리 사회에 던지게 될 울림을 짚어본다.

이달 2일 오후 강원도 원주 강원감영에서 열린 '2018 평창올림픽 남북공동응원단 출범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남북 단일기와 평화 통일을 염원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기사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 사진=뉴시스이달 2일 오후 강원도 원주 강원감영에서 열린 '2018 평창올림픽 남북공동응원단 출범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남북 단일기와 평화 통일을 염원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기사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 사진=뉴시스


가까운 미래에 갑작스럽게 북한 정권이 붕괴한다. 대한민국은 유엔(UN)과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고 북한에는 통일과도정부가 세워진다. 북한의 통일과도정부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실제로는 마약 밀매 조직이 실권을 장악한다.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되며 남북한 청년들은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진다.



2016년 말에 출간된 장강명(43)의 소설 '우리의 소원은 전쟁'에 대략적 내용이다. '북한 급변사태-과도기 정부 수립-점진적 통일'이라는 일반적 시나리오가 배경이다. 비교적 이상적인 시나리오임에도 불구하고 준비되지 않은 통일이 불행한 미래를 가져온다고 지적한다.

문학적 상상일 뿐이지만 통일 준비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현실은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통일부는 2022년까지 국회 협의와 국민 소통을 기반으로 '통일국민협약'을 체결한다는 계획이지만 이를 아는 국민은 드물다.



정부는 구체적인 통일의 미래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우리 사회의 통일 공감대가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한반도의 미래를 책임질 2030 세대는 통일의 당위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실정이다.

남과 북에서 모두 살아본 청년 탈북민들은 이를 절감하고 있다. 그나마 평화올림픽을 표방한 평창 동계올림픽이 통일 논의의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를 살려 통일의 의미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막상 한국 와보니, 통일 쉽지 않겠다고 느껴져"


올해로 한국생활 4년 차인 탈북민 조은경씨(22)는 북한에 있을 당시에는 통일을 원했지만, 막상 한국에서 살아보니 통일이 쉽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조씨는 "북한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빨리 통일이 되었으면 한다"며 "여기 와서 보니 남한의 젊은 친구들이 통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관심도 없어서 통일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번 단일팀 논란도 씁쓸하게 봤다. 통일이 이뤄지려면 남북 교류가 많아져야 하는데 정부의 미숙한 일 처리가 반감만 키웠기 때문이다. 조씨는 "지금처럼 아무런 교류가 없이 통일된다면 더 어려운 상황만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교류가 어려운 현실에서는 탈북민으로서 책임감도 느낀다. 조씨는 "통일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 중에는 탈북민 이미지가 좋지 않아서 그런 측면도 일부 있다"며 "탈북민들이 자기 힘으로 돈 벌고 세금을 내면서 열심히 산다는 것을 보여주면 남한 사람들의 인식도 바뀔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2013년 국내에 들어온 탈북민 허모씨(21)는 조급증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씨는 "남북한이 생김새도 비슷하고 급한 성격도 비슷해서 조금씩 교류를 늘려 나가면 긍정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막연한 '통일 논의' 보다, '평화와 공존' 단계적 접근 필요

전문가들은 2030 세대에게 처음부터 통일을 말하기보다 '평화-교류-통일'로 나가는 단계적 로드맵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성세대와 달리 주로 적대적 남북 관계만을 경험하며 자라온 2030 세대가 통일에 느끼는 거부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주화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통일을 사건이 아니라 과정이라고 본다면 남북 화해와 협력의 단계도 통일이 될 수 있다"며 "범주적인 통일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물을 채워가듯이 조금씩 통일에 다가 간다는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태호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은 "젊은 세대가 원하는 것은 추상적 통일이 아니라 '밝은 미래'"라며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가 분단이라고 하지만 자유로운 교류가 가능한 것처럼 평화로운 공존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2030 세대가 겪는 현실에 의문을 던져보는 방식으로 부정적 통일 인식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한다. '통일 대박론' 같은 선언적 접근으로 설득해서는 2030 세대가 체감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김병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는 "현재 분단 상태가 치르고 있는 막대한 비용을 합리적으로 설명해야 하고 '계속 이렇게 분단 체제로 살아야만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을 계속 던져야 한다"며 "군대만 해도 젊은이들에게 큰 스트레스고 굉장히 옥죄는 일인데 통일이 되면 이것부터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교류를 이어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적 교류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세대가 스스로 통일 필요성을 느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역사적으로도 보면 교류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동독과 서독은 통일 이전에도 대학생이나 청소년이 제도적으로 교류를 많이 했고 그런 접촉 과정에서 젊은 세대가 스스로 통일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남북한 접촉을 통일 문제로만 보기보다는 평화의 중요성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왜 남북이 만나고 접촉하는 것이 중요한지를 깨닫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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