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남북은 한민족? 부모와 다른 2030 "통일보다 평화"

머니투데이 이동우 기자, 이영민 기자, 김영상 기자, 이예은 인턴기자 2018.02.22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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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애프터]⑩가치관의 변화…당위보다 실리, "접근법 달리해야"

편집자주 '하나된 열정'으로 세계인의 가슴을 울린 2018 평창올림픽이 3일후인 25일 막을 내린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기가 최고조에 달한 가운데 성사시킨 '평화올림픽'이지만, 그만큼 '평창 이후'에 기다리고 있는 숙제의 무게도 크다. 스포츠를 넘어 '평창'이 우리 사회에 던지게 될 울림을 짚어본다.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기자삽화=임종철 디자이너 기자


#1989년 11월 9일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거대한 벽을 사이에 두고 살았던 동독과 서독의 사람들은 마침내 서로를 부둥켜안고 기쁨을 나눴다. 그로부터 1년 뒤 독일은 통일 국가가 됐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한반도에 다가올 통일 한국의 벅찬 미래를 꿈꾸기도 했다.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0분쯤 인천 연평도에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기습적으로 북에서 날아온 포탄에 연평도 곳곳은 불타고 무너졌다. 휴전 협정 이후 처음으로 대한민국 영토에 가해진 직접 타격이었다. 군인 2명, 민간인 2명이 사망한 이 포격은 TV에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2030 세대는 기성세대와 생각이 다르다. 한 핏줄이라는 동질감 아래 감성적 경험보다는 북핵과 미사일 등 실존하는 공포감으로 북한을 느껴온 경우가 많다. 한민족이라는 당위성만으로 통일을 추진하는 데 더는 동의하지도 않는다. 통일이라는 거대 담론보다는 개개인의 실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때문에 현 체제를 평화적으로 유지할 수만 있다면 통일이 필요 없다고까지 말한다.

머니투데이가 이달 1일부터 3일까지 20~30대 남녀 100명을 인터뷰한 결과 '남북의 평화적 공존이 가능하다면 통일이 필요 없다'는 의견이 71.4%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통일연구원에서 일반인 1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도 같은 응답은 20대와 30대가 각각 55%, 42%로 집계됐다. 40대 이상 연령층의 대답보다 최소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2030 세대가 북한에 느끼는 민족적 동질감은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남과 북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인 이산가족의 존재도 고령화로 점차 그 수가 줄고 있다.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올해 1월 말 기준 남북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13만1344명 가운데 생존자는 5만8685명(44.6%)에 불과하다. 새해 들어서만 한 달 사이에 352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이처럼 매년 고향을 밟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는 이산가족은 3000여명에 달한다.


결국 시간이 좀더 흘러 남아있는 이산가족마저 사라지면 2030 세대는 '남북한은 한민족'이라는 기본 전제조차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독일 통일을 비롯해 김일성 전 주석 사망, 금강산 관광 등을 지켜보며 통일 한반도를 그려온 기성세대와는 사고의 토대가 다르다고 진단한다.

[MT리포트]남북은 한민족? 부모와 다른 2030 "통일보다 평화"
김병조 국방대 교수는 2015년 내놓은 '한국인의 통일의식, 세대별 격차와 세대 내 분화' 논문에서 2030 세대를 '신자유주의통일세대'(당시 22~37세)로 규정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들은 통일에 회의적이고 북한을 '한국 사회를 보다 어렵게 만드는 존재'로 인식한다.

대학생 장서현씨(24)는 "자신들을 중국인으로 여기는 조선족을 보면 북한에 한민족이라고 동질감을 느끼는 것도 일방적인 생각이 아닌가 싶다"며 "남북한은 이미 오랜 시간 분리돼 다른 점이 너무 많아져 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김태영씨(26)도 "이산가족 관련 기사를 보면 코끝이 찡해지지만 같은 민족이라는 자각은 사실 없다"며 "북한이 지금까지 해 온 만행들이 동질감보다는 적대감을 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전체보단 개인을 우선하는 경향과 명분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2030 세대의 특성도 통일 담론을 어렵게 만든다. 이들은 아무리 통일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개인이 불행하다면 단호히 거부한다. 40대 이상의 기성세대에게 익숙한 '대(大)를 위한 소(小)의 희생'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의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에서 나온 2030 세대의 불만이 단적인 예다. 정부는 모처럼 북한과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가속 페달을 밟았지만 2030 세대는 그 안에서 '기회의 평등,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가 실종됐다고 봤다.

직장인 전주영씨(33)는 "통일을 위한 평화와 대화도 중요하지만,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막무가내로 추진되는 과정을 보고 실망이 컸다"며 "'우리의 소원'이나 '단일민족' 같은 강압이나 세뇌에 기대기보다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와 이점,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상세히 설명하고 국민들이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2030 세대의 찬성과 지지를 위해서는 기성세대와 다른 접근 방식의 통일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2030 세대의 정체성인 자존심을 지켜주는 것"이라며 "소통을 우선하는 정책을 펼쳐야 민주주의 절차를 중시하는 2030 세대의 통일 인식도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중장년층은 통일을 유토피아로 접근하지만 젊은 세대는 통일을 디스토피아로 접근한다"며 "통일 교육은 젊은 세대의 눈높이에 맞게 일방적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 성찰하고 깨달아 나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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