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동상이몽 2030…"통일은 꿈, 대출이자·육아는 현실"

머니투데이 이동우 기자, 이영민 기자, 김영상 기자, 이예은 인턴기자 2018.02.22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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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애프터]⑨N포세대 "통일? 왜 굳이"…신경쓸 힘도 시간도 없다

편집자주 '하나된 열정'으로 세계인의 가슴을 울린 2018 평창올림픽이 3일후인 25일 막을 내린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기가 최고조에 달한 가운데 성사시킨 '평화올림픽'이지만, 그만큼 '평창 이후'에 기다리고 있는 숙제의 무게도 크다. 스포츠를 넘어 '평창'이 우리 사회에 던지게 될 울림을 짚어본다.

 남북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선수들이 이달 4일 오후 인천 선학국제빙상장에서 스웨덴 대표팀과 경기를 앞두고 있다. / 사진=뉴스1 남북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선수들이 이달 4일 오후 인천 선학국제빙상장에서 스웨덴 대표팀과 경기를 앞두고 있다. / 사진=뉴스1


'동상이몽'(同床異夢)이다. 기성세대와 2030 젊은 층의 통일을 바라보는 시각이 뚜렷이 갈리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남·북한이 단일팀을 이뤄 참가하면서 오랜만에 '통일'이 관심사로 떠올랐지만, 인식차이가 적잖다. 당장 정부는 올림픽을 남북한 대화 국면의 열쇠로 활용할 생각이지만 2030 내에서는 냉소적 분위기가 읽힌다.

현재 2030 세대는 1980~1990년대 태어났다. 산업화시대 고속성장의 혜택을 받아 배고픔을 겪지는 않았지만, 양극화와 고용불안 등 구조적 문제를 겪으며 성장기를 보냈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 부모의 실직을 경험하고 2007년 이후 글로벌금융위기 파고 속에 청년기를 맞이했다. 이들은 어느 순간 'N포 세대'(취업·결혼·출산 등 수많은 것을 포기한 세대)가 됐다.



당장 눈앞에 하루하루가 팍팍한 2030 세대의 삶에 통일이라는 거대 담론이 끼어들기는 만만치 않아 보인다.

머니투데이가 이달 1일부터 3일까지 수도권을 중심으로 20~30대 남녀 100명을 인터뷰(서면 인터뷰 등)한 결과 '통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한 응답자는 전체의 37.4%에 불과했다. 그 외 62.6%는 통일이 꼭 필요한 것인지에 의문을 품었다.



지난해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실시한 '2017 통일 의식 조사'에서도 20대는 41.4%, 30대는 39.6% 만이 '통일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무엇보다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고용 한파는 젊은 세대가 통일에 대해 고민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자기 앞가림도 힘든 현실에 나라의 미래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는 셈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역대 최고인 9.9%를 기록했다. 일거리가 없어 시간제로 근무하며 더 나은 일자리를 찾는 청년을 포함한 체감 청년실업률은 22.7%나 된다.

2030 세대는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통일에 대한 관심이 적은 이유로 '현실적 체감이 안 돼서'(45.5%), '취업, 결혼 등 개인사 때문에'(38.4%)를 꼽았다. 500조~5000조원으로 추산되는 막대한 통일비용도 젊은 세대들에게는 부담이다.


취업준비생 김태영씨(26)는 "예전에 '통일 대박'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도 그렇고 너무 막연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특정 세대는 통일 비용을 오랜 시간 감당해야 하는데 '왜 하필 내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 박지연씨(가명·25)는 "윗세대가 처리 못 한 걸 우리 세대에서 하려고 하니까 너무나 막막하다"며 "엄청난 경제적 부담이 되고 사회문제도 커질 텐데 과연 그걸 버텨낼 준비가 되어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MT리포트]동상이몽 2030…"통일은 꿈, 대출이자·육아는 현실"
취업에 성공한 2030 세대도 통일에 신경 쓸 여력은 없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가계부채는 1400조원에 달하고 출산율은 1.05~1.06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최저 수준이다. 잦은 야근 등 과중한 업무에 치이는 탓에 간신히 결혼하더라도 출산과 육아라는 거대한 산 앞에 좌절한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조차 꿈과 같은데 통일이라니 언감생심이라는 반응이다.

회사원 김현정씨(29)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구호는 너무 막연하게 느껴진다"며 "하루하루 회사에서 버티는 내 삶 자체도 힘든데 통일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주부 최모씨(35)도 "통일은 꿈같은 이야기고 눈앞에 놓인 현실은 전세대출 이자와 10분에 한 번씩 우는 아이를 돌보는 일"이라며 "만약 통일된다고 해도 세금이 높아지거나 경제적 타격이 상당할 텐데 그걸 감당해 낼 자신도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통일 자체가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지 않기를 바란다는 응답이 많았다. 머니투데이 자체 인터뷰에서 '통일을 위해 삶의 질이 떨어져도 괜찮냐'는 물음에 전체의 70.7%가 '아니다'고 답했다.

달라진 2030 세대의 인식은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논란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젊은 층이 갑작스러운 단일팀 논의로 기회가 박탈당할 위기에 놓인 우리 선수들에게 자신의 고달픈 처지를 투영해 분노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2030 세대가 통일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도록 현실적인 조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병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는 "2030 세대의 통일 인식을 개선하려면 일단 통일이 가져올 긍정적 효과와 함께 분단 상태 때문에 우리가 치르고 있는 비용 등을 합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며 "왜 이렇게 한국이 분단 체제로 살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계속해서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40대 이상은 통일을 당위적으로 접근하는 반면에 젊은 세대는 훨씬 더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접근한다"며 "유토피아적 접근보다는 통일이 젊은 세대에게 경제적으로 어떤 이익이 있을지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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