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파업 참회록

신주현(KBS 대구방송총국 보도국 기자) ize 기자 2017.12.1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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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파업 참회록


부끄럽지만, 나의 KBS는 ‘부끄러움’으로 시작했다. 누구도 잊을 수 없는 2014년 4월. 나는 KBS에 입사를 했다. 오래도록 꿈꾸던 방송기자가 됐다. 신입사원 연수 한 달을 마치기도 전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경기도 안산과 서울을 오고 가며 수습기자 교육을 받았다. 마음 깊이 애도할 경황도 없이 취재 지시를 받으며 뛰어다녔다. 어느 날, 안산에서 어렵게 세월호 유가족에게 인터뷰 허락을 맡게 됐다. 하지만 끝내 인터뷰는 거절당했다. KBS의 보도를 믿지 못하겠다는 이유에서였다. 결정적 오보, 참사 원인과 책임을 숨기기 급급한 정부의 발표를 받아쓰는 보도…. KBS와 언론을 향한 비난 앞에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의 영정사진을 들고 본사를 찾아 온 유가족들의 분노를 마주한 날도 있었다. 길환영 전 사장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뒤돌아서던 그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혼란의 입사 3개월이 지나자 ‘수습’ 딱지는 떨어졌다. 하지만 ‘부끄러움’은 채 떨치지 못했다.

나는 대구총국 소속 취재 기자다. 지역 기자의 가장 큰 역할은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내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기자가 취재한 현장의 목소리가 본사의 지시에 의해 왜곡되는 일이 지난 9년 두 정권 동안 비일비재했다. 대구에서는 지난해 사드 관련 보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경북 성주 사드 배치 발표 당시 주민들은 크게 반대했다. 공청회 한 번 없는 일방적 발표와 안전 위협에 대한 투쟁이었다. 연일 항의가 이어지다 급기야 성주를 방문한 국무총리를 향해 계란 투척 등 폭력 행위가 발생했다. 본사에서는 일부에서 옛 통합진보당 소속 인사 등 ‘외부 세력’이 개입해 이 폭력 시위를 주도했다는 의혹을 주제로 기사 작성을 요구했다. 집회 주최 측과 경찰, 주민 등 다방면에 걸친 취재에도 ‘외부 세력’ 개입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묵살당했다. 결국 ‘외부 세력’ 리포트는 ‘경찰발(發)’로 전국에 보도됐다. 보도국의 한 선배는 부당한 지시에 항의하는 성명서를 썼지만, 결과는 징계 회부였다. 더 큰 안타까움은 현장에 있었다. 많은 성주 주민들이 KBS를 외면했다. 우리의 취재가, 인터뷰가 왜곡된 채 보도될 거란 불신이 팽배했다. 이들에게 KBS는 ‘나쁜 언론’이었다. 또 부끄러움을 느꼈다. 무기력함과 분노도 함께 왔다. 지역 기자들이 취재한 현장이 왜곡되는 상황, 항의하는 기자들에 대한 보복성 징계와 인사를 지켜봐야만 하는 게 답답했다.



‘언론 같지도 않으니까 귀찮게 하지 마라.’ 한 시민은 내게 이런 박한 말을 했다. 그렇게 촛불 시위가 이어지던 지난해 겨울은 유난히 더 추웠다. 오랫동안 공영방송 기자가 되고자 했던 이유와 사명감, 모든 것이 흔들리던 때였다. 하지만 촛불이 승리하면 KBS가, 우리의 보도가 바뀔 수 있다는 생각에 나 역시 촛불을 들었다. 그러나 촛불로 시민들의 생각이 바뀌고 대통령도 바뀌었지만, KBS는 바뀌지 않았다. 내가, KBS 새노조 조합원들이 지금 현재 100일이 넘는 긴 기간 동안 파업을 이어가는 이유다. 그리고 내게 파업은, 입사 이후 4년 동안 줄곧 느껴왔던 부끄러움을 떨쳐내기 위한 반성이며 무력감을 이겨내기 위한 투쟁이다. 지역민들에게 공영방송 기자로서 떳떳하게 나아가기 위한 다짐이다.

파업 기간에도 대구총국 새노조 조합원들은 피케팅을 하며 출근길을 지켰다.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동료들에게 호소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우리가 왜 방송을 하지 않는지 알리기 위해서였다. 야구 경기가 대구에서 열리는 날에는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동성로에서 ‘아직 파업 중’인 우리를 잊지 말아주기를 부탁했다. 무관심한 시민들도 많았지만, 박대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응원한다’, ‘힘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 말들 하나하나가 긴 파업 기간 동안 큰 힘이 됐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다시 파업 이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고대영 사장 한 명이 해임되는 것만으로 KBS가 완전히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에도 긴 파업을 겪었던 선배들은 이번에도 KBS 내부에 켜켜이 쌓인 문제들이 다시 반복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때문에 이번 파업은 고대영 사장, 이인호 KBS 이사장 등 몇몇을 끌어내리기 위한 단순한 싸움이 아니다. 끊임없이 고민하고자 한다. 특히 지역 기자는 지역 현장의 독립성 등 숙제가 더 많다. 우리는 파업이 승리한 이후에도 ‘부끄러움’을 떨치기 위한 싸움을 계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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