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시내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사진=이호준 여행작가
<감자 먹는 사람들> <침실> <해바라기> 등 작품 하나하나가 감동스럽지 않은 게 없었지만, 내게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은 <자화상>이었다. 반 고흐 미술관에는 여러 점의 자화상을 한 자리에 전시해 놓았기 때문에 좀 더 다양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약간 벗겨진 머리에 강한 눈매, 매부리코, 홀쭉한 하관 그리고 아무렇게나 기른 붉은 수염. 그림에 따라 모자를 쓰기도 하고 벗기도 하고 파이프를 물기도 했다. 일관되게 찌푸린 표정 속에서 내가 읽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자기애(自己愛)’다. 과격하고 상처를 잘 입는 성격에다 말년에는 정신병까지 앓다가 비극적으로 갔다지만, 끝내 놓지 않은 것은 자신에 대한 연민이었구나. 오로지 그림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구나. 물론 혼자만의 해석일 뿐이었다.
/사진=이호준 여행작가
테오에게
이 사랑이 시작될 때부터, 내 존재를 주저 없이 내던지지 않는다면 아무런 승산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나를 던진다 해도 승산은 아주 희박하지. 주어진 기회 크거나 작은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 아니겠니. 사랑에 빠질 때 그것을 이룰 가능성을 미리 헤아려야 하는 걸까? 이 문제를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그래서는 안 되겠지. 어떤 계산도 있을 수 없지.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거니까.
-《반 고흐, 영혼의 편지》(예담) 중에서
반 고흐 미술관을 관람하는 동안 또 하나 인상 깊은 것이 있었다. 미술관을 활용한 교육이었다. 미술관에는 아이들이 많이 찾아왔다. 유치원에서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아이들까지.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그림 앞에 앉혀놓고 열성적으로 강의를 했다. 미리 준비한 그림 카드를 하나씩 보여주면 질문을 하고 아이들이 대답하는 식이었다. 공부하는 그림의 원화가 눈앞에 있으니 그보다 실감나는 교육이 어디 있을까. 아이들은 이런 교육에 익숙한 듯 집중도가 높아 보였다. 일종의 소음일 수도 있었지만, 관람객들도 눈살 한번 찌푸리는 법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현장에서 습득한 예술적 감각과 소양은 창의적 사고의 기틀이 되겠지. 또 다른 반 고흐를 낳는 씨앗이 될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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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나와 암스테르담 거리를 걷는 중에도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이름이 내내 뒤를 따랐다. 위대한 화가를 낳은 네덜란드가 부러웠고, 그가 그린 그림 앞에서 현장교육에 몰입할 수 있는 아이들이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