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oT 주스착즙기'에 1500억 투자했더니…4년만 '폐업'

머니투데이 조성은 기자 2017.12.0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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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로 착즙기 '주세로 프레스'/사진제공=블룸버그주세로 착즙기 '주세로 프레스'/사진제공=블룸버그


미국 스타트업 '주세로'(Juicero)는 2013년 'IoT(사물인터넷)를 도입한 혁신적인 주스착즙기' 아이디어를 갖고 건강음료 시장에 뛰어 들었다.

주세로의 주스착즙기는 2분 안에 주스를 말끔히 짜내며 와이파이를 연결하면 스마트폰으로 주스팩의 내용물과 유통기한도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이 내재된 '스마트 키친'의 대명사로 뭇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순식간에 입소문을 탔다.



또한 주스착즙기 뿐만 아니라 과일과 채소를 담은 주스팩도 함께 판매하려는 수익모델은 실리콘밸리 VC(벤처캐피털)을 관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몇몇 투자자들은 주세로의 창업자 도그 에반스(Doug Evans)를 "모든 가정에서 신선한 주스를 마시게 하자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전념하는 훌륭한 기업가"라 치켜 세웠다.

여기에 주세로측도 언론과 SNS를 통한 제품 홍보활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 주세로의 인지도는 더욱 높아졌다.



그 결과 주세로는 제품이 출시되기도 전에 구글벤처스(Google Ventures), 클라이너 퍼킨스 코필드 앤 바이어(Kleiner Perkins Caufield & Byers), 아티스 벤처스(Artis Ventures) 등의 거물급 실리콘밸리 VC들과 미국프로농구(NBA)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Kobe Bryant)같은 유명인들로부터 총 1억3400만달러(1500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투자받을 수 있었다.

자금 유치에 성공한 주세로는 주스착즙기 개발을 완료하고 2016년 3월부터 대대적인 시판에 나섰다. 당시 주세로의 주스착즙기 '주세로 프레스'(Juicero Press)의 대당 가격은 699달러(77만원)으로 책정됐다.

그러던 주세로가 지난 9월 1일 공개적으로 폐업을 선언했고, VC들은 1500억원을 고스란히 날릴 처지에 놓이게 됐다.


갑작스러워 보이는 주세로의 폐업은 사실 어느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그동안 여기저기서 주세로의 위기를 알리는 적신호를 감지할 수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실제로 주세로 프레스 출시 이후 시장에서는 주세로의 착즙기 사용법이 너무 복잡하고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신선한 과일과 채소의 냉동파우치 제조비용을 감당하기 버겁다는 이사회의 평가도 있었고, 회사 내부에서는 직원들에게 완전채식과 생식을 강요한 창업자의 기이한 행동도 구설수에 올랐다.

설상가상으로 주세로 프레스의 효능에 의혹을 제기한 블룸버그의 보도가 나오면서 주세로는 치명타를 입었다.

블룸버그는 지난 4월 주세로의 착즙기 없이 맨손으로도 충분히 주스팩을 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실험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는 주세로 프레스를 둘러싼 세간의 논란들을 증폭시킨 기폭제가 됐다.

블룸버그 기자가 직접 실험에 착수해 착즙기와 맨손으로 각각 주스팩을 짠 후 그 결과를 비교했는데 두 경우 모두 비슷한 양의 주스가 착즙됐고, 심지어 주스를 짜는데 걸리는 시간은 맨손이 더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 보도의 여파는 컸다. UBS China의 5500만달러(599억)짜리 투자협상이 중단됐으며 착즙기 구매자의 환불 요청이 쇄도했다.

여기에 다른 언론들까지 줄줄이 주세로 때리기에 가세하면서 여론은 더욱 악화됐고, 기존 투자자들마저 주세로에 등을 돌리면서 급기야 5월 들어 유동성 위기를 맞으며 심각한 경영난에 빠지고 말았다.

추가 자금조달에 실패한 주세로는 결국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지난 8월 23일 폐업을 결정했다. 주세로는 9월 1일 공식적으로 폐업소식을 알리면서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뜻으로 착즙기를 구입한 모든 고객에게 환불을 약속했다.

이로써 실리콘밸리 VC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주세로는 창업 4년 만에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일각에서는 주세로 사태가 VC들의 신중하지 못한 투자행태에 기인했다고 주장한다. 벤처투자자들이 애초에 면밀하고 엄격하게 주세로를 심사했더라면 1500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돈을 날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실리콘밸리 VC들이 'IoT를 도입한 스마트 키친'이라는 그럴싸한 IR에 혹해 철저한 검증 없이 지갑을 열었다고 꼬집었다.

유독 변화와 트렌드에 민감한 실리콘밸리 VC들은 언론의 호의적인 보도와 유명인사들이 주세로 창업가의 SNS 계정에 쓴 글을 보고 솔깃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게보려 해도 'IoT를 도입한 착즙기'라는 이유로 1500억원씩이나 쏟아부은 투자자들의 행동은 쉽사리 이해하기 어렵다.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머리를 긁적이지 않을 수 없다.

유망한 기업을 발견하는 뛰어난 안목을 지닌 투자의 귀재들도 가끔은 치명적인 실수를 한다. 주세로에 거액을 투자했다 낭패를 본 실리콘밸리 VC들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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