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다나 디자이너
최근 한국의 주요 경제 지표는 호황인데 내수 소비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겉으로 나타나는 경기 지표와 현장의 체감 경기 괴리 현상이 갈수록 뚜렷해지는 것이다. 실제로 경제성장 지표를 견인한 주역은 반도체, 화학, 자동차 등 수출산업이다. 내수 민간소비와 직결되는 일자리·가구소득 상황은 기대치를 밑돌다 보니 백화점 등 유통업계 매출은 마이너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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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같은 경제 지표가 내수 소비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다양한 대규모 할인행사와 풍성한 경품 이벤트에도 고객들은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았다. 롯데·현대·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 3사도 매출 부진을 면치 못했다. 롯데백화점은 올 1분기 -4.3%, -5.6%, -3.6%로 3분기 연속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감소했다. 현대백화점은 올 1분기 8% 성장에서 2분기 -3%, 3분기 -0.3%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올 2분기까지 증가세였던 신세계백화점도 3분기 감소세(-0.7%)로 돌아섰다.
백화점 업체 한 임원은 "경기 회복 가늠자인 의류, 화장품, 명품 등 매출이 꺾여서 회복될 기미가 없다"며 "식당가에만 손님이 몰리니 백화점마다 맛집 유치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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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호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허리띠를 졸라 매고 돈을 아끼는 것을 창피해 하지 않는 사회가 됐다"며 "절약이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당장 먹고 살기 위한 생존 문제가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최근 일부 젊은층의 소비 트렌드는 단순히 절약을 넘어 절벽에 직면했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라며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당장 살아야 하기 때문에 싫어도 줄여야 하는 생존 문제가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년째 소비시장 트렌드로 자리잡은 '가성비'도 한 요인이다. 유통기업이 내놓은 PB(자체브랜드)를 비롯해 유니클로, 다이소 등 저렴한 제품만 인기를 끌고, 백화점 매장에서 제품을 보고 온라인이나 모바일이나 가격을 비교해 제품을 구매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막연한 불안감에 돈을 쓰지 못하는 일본식 장기불황의 그늘이 시작되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고용·소득 등 사정이 좋지 않은 것도 소비 침체와 직결된 문제다. 국내 취업자수는 2016년 2623만5000명에서 올 상반기 2686만명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매달 들쭉날쭉 불안한 고용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 실제로 양질의 일자리로 분류하는 제조업 취업자는 9월 감소했다. 실업률은 2016년 3.7%에서 올 상반기 3.8%로 되레 높아졌다.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지난해말 486만7817원에서 올 상반기 470만8183원으로 줄었다. 서용주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요 소비계층인 30~50대 인구가 줄고 있는데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 돈을 못 쓰는 트렌드가 굳어지고 있다"며 "젊은 세대는 취직이 안돼서 돈이 없고, 중년층은 자녀 교육비 부담, 베이비부머는 노후에 대한 불안 때문에 소비에 적극 나서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이어 "경제지표가 좋은 것을 실제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경기와 동일시해서는 안된다"며 "금리인상 등 후속조치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