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에 젖던 관객이 피아노 한음에 일제히 멈췄다

머니투데이 가평(경기)=김고금평 기자 2017.10.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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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20일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첫날 무대 장식한 ‘추초 발데스&곤잘로 루발카바’ 협연

20일 첫날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추초 발데스(왼쪽)와 곤잘로 루발카바. /사진제공=노승환<br>
20일 첫날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추초 발데스(왼쪽)와 곤잘로 루발카바. /사진제공=노승환


두 사람이 무대 위로 걸어 나올 때만 하더라도 객석은 나들이 온 관객답게 약간 소란스러운 파티 분위기였다. 하지만 곤잘로 루발카바의 피아노 음이 4마디 정도 이어지자, 객석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대화는 끊겼고, 마시던 음료나 먹던 음식도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분위기는 정적이었다. 야외에서 이렇게 조용한 객석을 만나보긴 처음이었다.



루발카바 건너편에 앉은 추초 발데스도 낮은 음으로 정적 분위기에 힘을 실었다. 쿠바의 재즈 뮤지션 2명은 국내 인지도와 상관없이 시작부터 단 몇 음으로 관객을 휘어잡았다.

단 4마디에서 관객을 집중시킨 힘은 두 거장의 타건이었다. 2억 원이 훌쩍 넘는 최고급 피아노 스타인웨이만 고집하던 이들은 이 악기 대신 투입된 야마하 앞에서 손가락만으로 엮은 깊고 굵은 소리를 관객 심장에 직격탄으로 내리꽂았다.



20일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첫날 메인 무대. 루발카바는 멋있었고, 발데스는 예뻤다. 두 사람은 첫 곡으로 ‘Joao’(루발카바가 자신의 아들에게 바치는 곡)를 골랐다. 첫 곡이 빠른 쿠바 리듬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발데스는 낮은 베이스 음에서 리듬 반주 역할에 충실했고, 루발카바는 솔로 선율을 맡았다.

추초 발데스. /사진제공=노승환<br>
추초 발데스. /사진제공=노승환
구름 위를 사뿐히 걸어가는 듯한 서정적 분위기에 취한 첫 3분이 어느새 지나가자, 이번에는 화염 속 격렬한 몸부림을 연상하듯 음 하나하나가 불타올랐다. 그렇게 10분간 이어진 첫 곡은 탄성 속에서 금세 끝났다. 객석의 정적은 깨졌다. 박수 소리와 휘파람 소리가 묘하게 부딪힌 현장이 이들의 등장을 반기는 신호였다.

다시 정적으로 뒤덮인 객석 분위기를 안주 삼아 두 거장은 추초 발데스의 곡 ‘mambo influenciado’를 연주했다. 주로 반주를 맡은 발데스는 이 곡에서 피아노를 때론 베이스로, 때론 퍼커션으로 활용하는 타악 연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루발카바의 속도를 따라갔다.


두 거장은 정박자로 가는 리듬의 길목을 모두 차단하고, 정박자 사이로 난 엇박자에 자신의 음을 포개 서로 만났다 헤어지길 반복했다. 이 장면이 너무 진풍경이어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리듬의 향연에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들은 1시간가량 앙코르곡을 포함, 6곡을 연주했는데 어떤 곡도 대중의 귀를 대충 스치는 법이 없었다. 기존 정통 재즈 연주자들이 난해함과 자기 세계에 빠진 프레이즈를 구사하다가 어떤 특정한 부분에서 대중과 한 마음이 되는 연주를 선보이는 보편적 공식은 이들 연주에서 전혀 찾기 어려웠다.

곤잘로 루발카바. /사진제공=노승환<br>
곤잘로 루발카바. /사진제공=노승환
루발카바와 발데스는 친근한 리프(riff·반복선율)로 대중의 눈높이를 맞춘 뒤 지루함이 생길 듯한 마디에선 어김없이 호기심과 신비함을 자극하는 독특한 아프로쿠반 리듬으로 귀를 자극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인터플레이는 듣는 이의 귀가 쉴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관객의 함성과 박수는 곡이 끝날 때마다 갑절로 커졌다. 발데스의 따뜻하면서도 탄탄한 리듬의 연주, 셋잇단음표를 스타카토 식으로 끊어 연주하는 루발카바의 독특한 선율은 ‘음악은 어디까지 우리를 전율시키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

예정에도 없던 앙코르곡 ‘caravan’까지 끝나자, 관객은 기립 박수로 ‘깊고 높은’ 경지의 음악에 화답했다. 관객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음악에 취해 사진 한 장 못 건진 게 내내 후회로 남았다.

‘파티’에 젖던 관객이 피아노 한음에 일제히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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