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묻다…로봇은 친구? 적?

머니투데이 이경은 기자 2017.10.2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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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아트 축제 '다빈치 크리에이티브2017' 열려…'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로보틱 퍼포먼스 '인페르노(Inferno)'/사진제공=서울문화재단.로보틱 퍼포먼스 '인페르노(Inferno)'/사진제공=서울문화재단.


전선에 매달린 육중한 기계를 어깨에 장착한 채 로봇인 듯 인간인 듯 모호한 형상을 한 사람들이 기계음에 맞춰 춤을 춘다.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기계의 프로그래밍대로 두 팔을 들어올렸다가 내렸다가 고개를 움직이기도 한다. 20킬로그램에 달하는 기계의 무게만큼 강력한 힘에 의해 이들의 상반신은 철저히 통제 당한다. 땅을 지탱하고 서 있는 두 발에만 자유가 있을 뿐이다.

수년간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로보틱 퍼포먼스를 선보여온 예술가 루이 필립 데메르(Louis-Philippe Demers)와 빌 본(Bill Vorn)의 작품 '인페르노(Inferno)'다. 관객 참여형으로 펼쳐지는 이 퍼포먼스에서 한 시간동안 기계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다보면 스스로가 인간인지 기계인지 구분할 수 없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험은 불현듯 공포로 다가왔다가 '진정한 나' '인간의 존재'란 무엇인가 질문하게 한다.



'인페르노'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예술과 기술이 만나는 미디어아트 축제 '다빈치 크리에이티브2017'의 막이 올랐다. '다빈치 크리에이티브'는 서울문화재단과 금천예술공장이 함께 진행하는 미디어아트 창작지원 사업으로, 매년 다른 주제로 국내외 미디어아트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올해 주제는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다. '언캐니 밸리'란 1970년 일본의 로봇 공학자 모리 마사히로가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로봇에 대한 인간의 감정 변화를 골짜기에 비유한 것이다. 로봇에 대한 인간의 호감도는 로봇이 사람의 모습에 가까워질수록 높아지다가 어느 순간 강한 거부감으로 바뀐다. 하지만 로봇의 외모와 행동이 인간과 거의 구별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호감도는 다시 증가해 인간에 대한 감정과 유사해진다.



'다빈치 크리에이티브'는 현 시점이 '언캐니 밸리'에서 인간과 기계를 구별할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나날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기술에 힘입어 기계는 인간의 외형, 지능, 기능에 매우 유사한 수준까지 접근했다. 가까운 미래에 인간과 기계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질 것이다. 이에 앞서 인간에겐 준비가 필요하다. 다가올 미래의 '인간과 기계의 관계', 본연의 '인간다움'에 대한 생각이 '다빈치 크리에이티브'가 관람객들에게 던지는 화두다.

가상현실과 실재, 인간과 인공지능, 우주와 자연 등 인간과 기계를 둘러싼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을 20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서울 금천예술공장에서 무료로 만날 수 있다.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국내 신예 작가들의 8개 작품과 4개의 해외 초청작이 전시된다.

◇ 가상현실과 실재 사이…'인간의 몸'을 생각하다


JF말루앵의 작품 '미의 세 여신'(왼), 이성은·이승민의 작품 '에테리얼:지극히 가볍고 여린'(오)/사진제공=서울문화재단.JF말루앵의 작품 '미의 세 여신'(왼), 이성은·이승민의 작품 '에테리얼:지극히 가볍고 여린'(오)/사진제공=서울문화재단.
퀘백 작가 JF말루앵의 작품 '미의 세 여신'은 관객이 오큘러스(가상현실 체험용 VR기기)를 쓰면 이탈리아 화가 라파엘로의 작품 '미의 세 여신'에서 모티브를 딴 세 여성이 눈 앞에 등장한다. 관객은 조이스틱을 조종해서 세 여자의 몸을 만질 수 있고 이들의 신체를 움직여 포즈를 바꿀 수도 있다. 그때마다 따라 바뀌는 이들의 시선이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동시에 세 여성은 관객의 조이스틱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행위로 대응하기도 하는데, '건드린다'는 행위에 함축된 권력투쟁을 드러낸 것이다. 가상현실 속 타인의 신체에 개입하는 행위를 통해 실재와 가상현실에서의 인간의 몸의 경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국내 예술가 이성은·이승민의 작품 '에테리얼:지극히 가볍고 여린'도 가상현실을 매개로 인간의 몸을 들여다본다. 관객이 방에 들어가 오큘러스 고글을 쓰면 눈앞에 펼쳐지는 가상현실을 통해 관객은 로봇으로 변신, 자신의 뒷모습을 내려다보게 된다. 관객이 자신의 팔을 움직이면 관객 뒤에 설치된 3미터 크기의 거대한 로봇의 팔도 따라 움직인다. 관객의 팔 동작에 연동해 움직이는 로봇이 만지는 것은 바로 관객 자신이다. 우리의 몸, 우리의 존재는 본래 타인의 시선을 통해 인지되듯 로봇의 시선으로 우리의 몸을 다시 바라본다.

◇ 인간·기계·자연의 어울림 3박자

이재형·박정민의 작품 '기계 즉흥곡(왼), 탈 다니노(Tal Danino)의 작품 '마이크로유니버스(Microuniverse)'(오)/사진=이경은 기자.이재형·박정민의 작품 '기계 즉흥곡(왼), 탈 다니노(Tal Danino)의 작품 '마이크로유니버스(Microuniverse)'(오)/사진=이경은 기자.
오선이 그려진 어항은 악보가 되고 그 안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들은 음표가 된다. 물고기의 움직임에 따라 실시간으로 그려지는 악보를 어항과 연동된 피아노가 연주한다. 여기에 베이스가 더해져 그려내는 화음을 인공지능이 인식, 어항 뒤 스크린에 띄워준다. 그야말로 자연과 기계, 인간이 함께 만드는 음악이다. 국내 예술가 이재형·박정민의 작품 '기계 즉흥곡'이다. 늘 우리가 고민하는 '인간과 기계, 자연이 어우러지는 삶' '공생'의 화두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생물학과 공학을 예술에 활용한 작품도 있다. 자연적·유전적으로 재조합된 박테리아가 미디어와 결합해 예술로 탄생했다. 생물학과 공학의 교차점을 탐구해 온 작가 탈 다니노(Tal Danino)의 '마이크로유니버스(Microuniverse)'다. 모바일 앱을 설치해 작품에 화면을 가져다 대면 박테리아들이 살아 움직이듯 움직인다.

이밖에도 인간과 기계를 둘러싼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개막일인 20일과 21일 이틀간 오후 4시~10시에는 '인페르노'를 비롯해 허만 콜겐(Herman Kolgen)의 퍼포먼스 '임팍트', 디제잉, EDM콘서트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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