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대한민국 공예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작품 '향의 여운'. /사진=뉴스1
지난 2015년 대한민국공예품대전에 옻칠장 A씨가 문하생 B씨를 위해 대작한 작품은 이 시상식에서 대통령상까지 받았다. 두 사람은 법원에 넘겨져 벌금 500만 원을 각각 선고(전주지법 남원지원)받았다.
무엇보다 자신의 창작물이 아닌데도, 1% 기여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떳떳한 창작자’ 행세를 하는 데서 대작 관행은 시작되고 완성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가수 겸 화가 조영남씨. /사진=이기범 기자
대중음악계에서 ‘대작’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아이돌 그룹이 대중음악계 주류로 부상하면서 창작 수요가 많아지자, 작곡·편곡계에선 조수 작곡가를 두는 협업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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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난 작곡가가 처음에는 혼자 많은 곡을 만들었지만, 손이 바빠지면서 또는 창작 아이템이 떨어지면서 실력 있는 조수 작곡가의 곡을 가로채는 식이다. 조수 작곡가로 일한 적이 있는 A씨는 “유명 작곡가 밑에서 배운다는 도제식 교육 문화가 생기다 보니, 내 곡을 이름 없이 줘도 입봉작처럼 생각하게 됐다”며 “그런 관행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금기”라고 전했다.
대작 형태가 가장 횡행한 곳은 출판계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회고록 '협상의 기술'에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린 토니 슈워츠는 출간 30년 만에 대선 후보가 된 트럼프를 향해 “돼지에게 립스틱을 발라줬다”며 일격을 가했다. 슈워츠는 “책의 모든 내용과 단어를 내가 썼다”며 “트럼프는 빨간 줄만 쳤다”며 대필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이에 대해 “내가 썼다”고 반박했다.
방송인과 쇼핑 호스트, 정치인 등 유명인들이 잇따라 대필 작가를 이용해 자신의 작품인 것처럼 호도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대기업 총수들의 베스트셀러 역시 대필 의혹에 휩싸였다.
대필작가는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출판 계약 조건을 악용한 사례인 셈이다. 생계가 달린 대필작가는 자신의 뛰어난 문장력에도 불구하고 유령작가로 살아야 했고, ‘창작자’로서의 온전한 몫도 보전받지 못했다.
자서전 위주의 대필 관행은 자기계발서, 수필, 동화에까지 번지며 글의 인격이 전반적으로 포장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출판사들은 이익 극대화를 위해 글보다 스타 마케팅을 통한 인지도가 필요했고, 이에 떠밀린 저자들은 대필을 관행처럼 쉽게 받아들인 것이다.
언론인 출신 작가 토니 슈워츠가 대필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회고록 '협상의 기술' /사진=마더 존스 닷컴
사기 혐의 역시 명의상 저작자와 실제 저작자가 다른 경우 이를 사기죄로 다룬 판례가 국내에 별로 없어 난항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법적 처벌이 어려운 상황에서 남겨진 처벌은 윤리적 또는 사회적 비난이지만, 이마저도 쉽게 용인되는 분위기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대필·대작은 힘없는 창작자의 인권을 유리하는 것일 뿐 아니라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기본 원칙에도 어긋나 결국 문화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라며 “법적, 사회적으로 문제시하지 않는 풍토가 대작 분위기를 관행으로 모는 주범이기 때문에 강력한 법적·사회적 책임을 묻는 풍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