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 불확실한 내일에 대한 루틴의 언어

머니투데이 김정수 시인 2017.10.2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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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안숭범 시인 ‘무한으로 가는 순간들’

[시인의 집] 불확실한 내일에 대한 루틴의 언어


과거를 기억하는 방법은 단순하게 뇌에 저장하거나 글과 사진 혹은 영상으로 기록하는 것이다. 뇌에 저장하는 방법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오히려 또렷해지는 기억도 있다. 그런 기억은 엄청난 충격을 겪고 난 이후에 지속적인 고통과 슬픔의 후유증을 수반한다. 2005년 ‘문학수첩’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안숭범(1979~)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무한으로 가는 순간들’은 오랫동안 몸 안에 있던 ‘비정규직 슬픔’과 고통이 몸 밖으로 향하는 기호 같다.

어둠과 상태



이른 저녁이 세탁소 장씨와 청과물 노점 할머니의 그늘을 수거해 간다, 머리 누일 곳 없었던 예수처럼 오는 초저녁, 내 쓸개를 쓸어 본다, 하루 치 근심을 늘어뜨리는가 싶던 마로니에도 비로소 얌전해진다, 유리창이 더 멀어지는 빛의 서자들을 산란한다, 투명에 가까울수록 슬픔이라지만, 그날의 초저녁은 우리의 그림자를 수거해 가지 않았다, 다만 우린 서로를 가여워하던 손을 밀어내지 않았다, 식어 가는 눈길에 익숙할 수 없는 마음이었고, 이제야 부드럽게 따듯해지는 능선의 시절이 왔다, 뒤늦게 기우는 것들이 우는 것들과 몸을 부빈다,

냄새와 윤곽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면, ‘떨어졌습니다’라는 말이 연습이라도 했다는 듯 정갈하게 발음되고 나면, 침묵의 낱장 하나 천천히 내려올 것이다, 이런 때에 생각나는 노래들은 반복적으로 나를 사랑하고, 익숙한 후렴처럼 다시 이 느낌 앞으로 불려 나온 이는 절대 내가 아니다, 일몰을 안에 숨기기 위해 먼저 어둑해진 에스프레소를 마셨고, 나와 커피잔은 파문을 보듬는 세계의 윤곽이었음을 고백했다, 사랑을 해내는 마음을 알 것 같다, 내가 있는 화폭 안에 들어와 삼삼오오 쓰라린 것들, 나를 나에게서 결국 구할 수 있을까,

성장과 공포



훈훈한 결말이라 해서 본 영화가 진짜 무서워졌다
어른이 되었다
- ‘루틴한 생활’ 전문


루틴(routine)은 단순한 습관일 수도 있겠지만 몸 안의 지문, 혹은 기도문 같은 것이다. 내 안에 감추고 있던 속내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 밖으로 표출하는 행위다. 상대방에게 나를 드러내기 때문에 위험한 행동일 수도 있겠지만, 의도적으로 내 약점을 드러내 상대방이 오판하도록 유도, 결국 내가 쳐놓은 덫으로 상대방을 끌어들이는 노련한 트릭이기도 하다.

시 ‘루틴한 생활’ 1연 ‘어둠과 상태’는 ‘일상적인, 일과, 정기적인, 일반적인, 반복적인’과 같은 사전적 의미에서의 루틴의 일상사를 초저녁 풍경을 통해 보여준다. 하지만 2연 ‘냄새와 윤곽’에서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고도의 트릭으로 변모한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떨어졌습니다”라고 습관적으로 말하는 것은 이미 나의 덫으로 아버지를 끌어들인 것과 다름없다. 나의 침묵은 미안함, 죄송함에 대한 것이지만 아버지의 침묵은 실망을 넘은 절망의 다른 표현이다. 서로가 서로의 덫에 걸려 신음한다. 이에 따른 ‘파문’을 수습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어둠과 노래 그리고 속으로 썩어가는 냄새를 감춰주는 커피 향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랑도 사치인지라 “사랑을 해내는 마음을 알 것 같다”며 수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3연에서는 성장하는 것은 공포라는 걸 영화에 비유하고 있다. 내가 주인공인 영화에서 성장은 진짜 무서웠다고 고백한다. 공포와 같은 성장을 하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어른이 되었다”는 말은 앞날도 공포일지도 모른다는 무서움이 내포되어 있다. 다만 1·2연에서 쉼표를 찍었다면 3연에서는 쉼표나 마침표를 찍지 않아 무언가 달라질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음을 암시한다.

어머니는 유학도 보내 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데리다는 세 문장을 읽으면 시를 쓸 시간을 준다, 혼자 사는 열대어처럼, 고요하게 늙는 촛대처럼, 느리게 커피가 시간을 젓자 밤이 잔 안에서 잔잔해진다, 어둠들이 삐걱대는 소리를 적을 수 있게 됐다, 거실로 출근하고 안방으로 퇴근하는 날들 동안, 웃자란 아가는 아버지 대신 정규적으로 밥을 먹었다, 저녁밥을 건너뛰고 내뱉는 농담은 월급보다 재미가 없었고, 포기되지 않는 것들 때문에 석양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이런 시간들로 나를 당기는 힘을 지울 수 있을까, 가령 고시원 끝 방에 두고 온 휴대폰에선 첫사랑 연락처가, 함부로 쌓아 둔 책 어느 페이지에선 첫 직장 약도가, 살아 있어서 기쁘다와 살수록 슬프다 사이에 서 있는데, 다가갈 수 없는 반대편은 쉬이 휘발된다는데, 아들이 코와 자기 생애를 곯기 시작한다, 반환된 서류 상자를 던져 놓자 어느덧 데리다의 세 문장 길이로 새치가 자라 있다, 베란다의 선인장은 집 안 공기와 익숙한 여자의 완숙한 연민을 찔러 댄다, 어제 받은 부고를 떠올리자 받지 못한 사랑의 남은 몫이 울어 댄다, 읽던 페이지를 서쪽으로 접는다, 안방에서 먼저 잠든 여자가 그쪽으로 따라 눕는다, 진짜 날카로운 풍경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밤에서 숨죽이고, 거실 TV는 무음으로 예의를 갖춘다, 오디션 프로에서 탈락한 소녀가 자기 울음에 뼈마디를 세운다, 안방이 너무 멀다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까, 바람의 정권이 겨울에서 실각하는 내일이 오면
- ‘비정규적 슬픔’ 전문


“떨어졌습니다”에 이어 결국 “어른이 되었”지만 ‘루틴한 생활’은 현재진행형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슬픔마저 비정규직이다. 이 모든 것의 근원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지 못한 “유산의 질량”(이하 ‘非行記’) 때문이다. “유학도 보내 주지 못했다”는 어머니의 말에서는 유학을 보내주지 못해 자식의 앞길을 막았다는 자책이 읽힌다. “학위를 받지 못”하고 “보조원”으로 취직한 아내는 아이보다 먼저 안방에 잠들어 있다. 겨우 아이를 재우고 미처 하지 못한 공부를 하는 ‘비정규직 가장’은 “포기되지 않는 것들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살아 있어서 기쁘다와 살수록 슬프다 사이”에서는 진한 비애가 느껴진다. 그런데 “진짜 날카로운 풍경은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다. 그나마 ‘안방’은 시인이 몸을 누일 수 있는 공간이지만 그마저도 “너무 멀”리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그나마 기댈 곳은 ‘어머니’이므로 늦은 밤에 전화라도 걸어 하소연하고 싶은 마음이다. 금방이라도 폭풍우가 몰아칠 것 같은 분위기다.

‘낙오’, ‘해고’, ‘하차’, ‘유해’, ‘청승’ 같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시는 희망보다는 절망, 기쁨보다는 슬픔, 생성보다는 소멸의 양상을 보여준다. “잘 모르는 일에 괜스레 미안해”(‘희극적인 세월’) 하는 죄의식도 담겨 있다. 또한 그는 객석에 앉아 무대 위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있다. 현재의 내가 우울한 과거의 나를 바라보고 있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쓰다 보니 자꾸 감추려 한다. 수사는 화려해지고 능동은 어느새 수동이 된다.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데 자꾸 쉼표를 찍는다.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난한 시인에게는 망명할 곳도, 낙원도 없다. “이정표는 녹슬었고 길은 지워졌”(‘귀지’)으며, 내일은 “비밀번호 같”(‘그맘때’)기만 하다. 그런 상황에서도 시인은 “책상으로 오는 문장을 사랑”(‘우담바라’)하고, “시를 쓸 수 있을 것 같아 행복”(‘길게 오는 새벽’)하기만 하다. 그래서 그는 그냥 시인이다.

◇무한으로 가는 순간들=안숭범 지음. 시인수첩 펴냄. 144쪽/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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