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쿠바음악 ‘댄스’라는 편견 지우고 깊고 높은 경지의 음악 선보일 것”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7.10.19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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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0일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메인무대 오르는 추초 발데스&곤잘로 루발카바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20일 첫날 메인 무대에 오르는 쿠바 출신 재즈 피아니스트 추초 발데스(오른쪽)와 곤잘로 루발카바. 이들은 "20년 차이에서 오는 음악적 차이가 어떤 하모니를 생성하는지 지켜봐 달라"고 했다. /사진=김고금평 기자<br>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20일 첫날 메인 무대에 오르는 쿠바 출신 재즈 피아니스트 추초 발데스(오른쪽)와 곤잘로 루발카바. 이들은 "20년 차이에서 오는 음악적 차이가 어떤 하모니를 생성하는지 지켜봐 달라"고 했다. /사진=김고금평 기자


20~22일 경기도 가평 자라섬 일대에서 열리는 ‘제14회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의 첫날 헤드라이너에 쏠린 관심은 여느 때보다 높다.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나라 쿠바에서 온 세계적 재즈 뮤지션 2인의 협연은 다시 보기 힘든 ‘귀한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9차례나 수상한 추초 발데스(76)와 역시 그래미상 수상자 곤잘로 루발카바(54)가 그 주인공. 이들의 검증된 실력도 실력이지만, 무엇보다 기존 전통 재즈와 확연히 다른 맛깔난 리듬의 재즈 피아노 향연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기대감이 크다.

19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두 거장을 만났다. 194cm의 훤칠한 키를 앞세운 추초 발데스는 여전히 건강한 자태를 뽐냈고, 작은 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길어 보이는 손가락이 유난히 돋보인 곤잘로 루발카바는 '댄디'한 옷차림으로 인터뷰어를 맞았다.



쿠바에서 시작해 뉴욕 등에서 주로 활동한 루발카바는 스페인어와 영어를 동시에 구사했고, 발데스는 “영어는 잘 모른다”며 입을 닫는 시늉을 했다. 인터뷰는 발데스의 스페인어를 루발카바가 듣고 다시 영어로 통역하는 수순으로 이어졌다.

이태리와 중국 등에서 투어를 마치고 한국에 들른 이들은 이번 무대에서 “색다른 음악을 들려줄 것”이라고 했다. 마치 작곡가가 즉흥 선율을 그려내듯, 즉석에서 아프로-쿠반의 독특한 리듬을 통해 기존 곡과 다른 맛과 멋을 전해주겠다는 것이다.

올해 76세인 추초 발데스는 또렷한 기억력과 건강미를 자랑하며 20일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무대에 오른다. 손맛이 일품인 그는 이번 무대에서 듣는 이의 폐부를 찌르는 깊고 강한 선율을 들려줄 예정이다. /사진=김고금평 기자<br>
올해 76세인 추초 발데스는 또렷한 기억력과 건강미를 자랑하며 20일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무대에 오른다. 손맛이 일품인 그는 이번 무대에서 듣는 이의 폐부를 찌르는 깊고 강한 선율을 들려줄 예정이다. /사진=김고금평 기자
“함께 연주하면서 충돌하지 않도록 나아가는 게 중요해요. 두 개의 피아노로 달리지만 경쟁하지 않죠. 서로 어떻게 보완할지 계속 고민도 하고요. 그래서 깊고 높은 경지에 오르는 음악을 추구할 겁니다.”(곤잘로 루발카바)


‘깊고 높은 경지의 음악’이라는 설명이 결코 허언으로 들리지 않은 건 지난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본 한 편의 영화 때문이었다. ‘레쿠오나를 기억하며’라는 제목의 영화에선 발데스와 루발카바, 미셀 카밀로 등 쿠바가 낳은 3대 재즈피아니스트들이 쿠바의 국민 피아니스트 레쿠오나를 기리는 내용인데, 뮤지션 3명이 각각 연주하는 ‘장면’에선 상영 도중 객석의 갈채가 쏟아지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 얘기를 전하자, 루발카바는 “오~”하는 작은 탄성만 내뱉을 뿐, 부연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특히 늘 ‘새로운 음악’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놓지 않아 재즈의 ‘혁신가’로 곧잘 불린다. 발데스는 “음악은 늘 신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양한 것을 시도하려고 하는데, 항상 조심스럽기는 해요. 앞으로 이걸 꼭 하겠다고 단언하는 대신, 지금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가죠. 지금은 피아노 솔로를 확장하거나 쿼텟(4인조) 밴드에서 새로운 소리를 어떻게 발전시키는 것에 관심이 있어요. 항상 더 많이 생각하려고 하고 상상하려고 해요. 아직도 10대 소년 같은 마음으로 음악을 대해요. 하하.”(추초 발데스)

“새로운 것을 늘 고대하는 건 맞아요. 다만 아주 간단하고 일상적인 세계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편이에요. 가족, 아이들,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 우리가 무엇을 보고 듣는다는 것은 일반인과는 조금 다른 관점인 것 같아요. 더 예민하게 본다고 할까요. 때론 여행을 하거나 책을 읽는 행위도 제 스피릿을 충만하게 하거나 훈련시키죠. 삶은 과거의 부정적인 것을 반복하지 않는 게 중요해요. 내일의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인생이니까요. 음악도 마찬가지예요.”(곤잘로 루발카바)

음정, 속주, 리듬 등 어떤 요소에서도 빠지지 않고 거의 '완벽함'을 자랑하는 곤잘로 루발카바는 때론 쿠바 원형의 따뜻한 질감을, 때론 스페인 특유의 펄떡뛰는 플라멩코 리듬을 선보인다. /사진=김고금평 기자<br>
음정, 속주, 리듬 등 어떤 요소에서도 빠지지 않고 거의 '완벽함'을 자랑하는 곤잘로 루발카바는 때론 쿠바 원형의 따뜻한 질감을, 때론 스페인 특유의 펄떡뛰는 플라멩코 리듬을 선보인다. /사진=김고금평 기자
쿠바 음악의 원형과 전통을 베어 문 발데스의 아날로그적 스타일과 세련되고 지적인 루발카바의 도회적 스타일이 만들어내는 협연이 궁금했다. 루발카바는 “쿠바 음악의 뿌리가 같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발데스와 나는 다른 시대에 살았고 다른 역사를 경험했다”며 “하지만 20년 차이가 만드는 새로운 하모니를 통해 음악, 사랑, 존경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쿠바 음악은 단조가 많아 흡사 한국의 민요 등 전통 음악과 유사해 쉽고 단순한 음악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연주해보면 미세한 리듬의 차이나 멜로디를 받쳐주는 코드 구성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루발카바도 비슷한 지적을 내놓았다.

“쿠바 음악의 특징을 단순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를테면 춤추기 위한 댄스음악이라든가, 기쁘게 해주는 음악으로 묘사하는데 이보다 훨씬 더 깊고 복잡해요. 처음에 쉽게 다가갔다가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뮤지션을 만나면 다들 ‘복잡하다’는 얘기를 해요. 그러나 쿠바 사람들은 리드미컬한 음악을 듣고 자라서인지 자연스럽게 수용하죠. ‘복잡하다’를 우리는 ‘풍부하다’고 해석하거든요.”

두 사람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발데스는 “지난 세기에 만났다”며 웃었다. 루발카바가 6세 때 피아니스트였던 그의 아버지를 따라 발데스 집에서 드럼을 연주하자, 발데스는 그를 향해 “천재 드러머가 탄생했다”고 칭찬했다. 이후 루발카바 아버지가 발데스에게 “이제 아들은 더 이상 드럼을 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전하자, 발데스는 곧장 “이젠 천재 피아니스트가 나오겠구나”라고 말을 받았다고 한다.

곤잘로 루발카바(왼쪽)가 6세때 아버지를 따라 만난 뮤지션이 추초 발데스다. 당시 루발카바는 드럼을 연주했다. 발데스는 어린 친구의 연주실력을 보고 "천재 드러머"라고 치켜세웠고, 이후 루발카바가 드럼을 포기할 땐 "천재 피아니스트가 탄생할 것"이라며 용기를 북돋웠다. /사진=김고금평 기자<br>
곤잘로 루발카바(왼쪽)가 6세때 아버지를 따라 만난 뮤지션이 추초 발데스다. 당시 루발카바는 드럼을 연주했다. 발데스는 어린 친구의 연주실력을 보고 "천재 드러머"라고 치켜세웠고, 이후 루발카바가 드럼을 포기할 땐 "천재 피아니스트가 탄생할 것"이라며 용기를 북돋웠다. /사진=김고금평 기자
루발카바는 “1980년 17세 때, 우리 집에 너무나 많은 쿠바 음악이 있다는 걸 기억하는데, 정말 그걸 다 ‘먹어치웠’을 정도였다”며 “아프리카에서 온 '바타'라는 타악기를 통해 만들어진 쿠바의 새로운 리듬인 아프로쿠반을 듣고 굉장히 큰 자극을 받았다”고 했다.

루발카바는 발데스의 음악적 평가에 대해 “피아노를 통해 세계를 확장하는 느낌을 주는 뮤지션”이라며 “좋은 자원(뮤지션)이 많아도 이를 실현할 아이디어가 없다면 무용지물인 것처럼 그의 리더십과 편곡력은 역사적인 것”이라고 했다.

발데스는 루발카바에 대해 “현재의 음악을 새로운 방식으로 펼쳐나가는데, 그것이 지속적이면서 매력적이라는 점에서 훌륭한 음악가”라고 칭찬했다.

20일 무대에서 무엇을 보여줄 것이냐고 물었더니, “마냐나”(mañana)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내일’(마냐나) 직접 와서 확인하라는 얘기였다. 거장의 한 마디에 몸은 이미 현장 속에 들어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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