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자 18년 전 예언 "행동재무학의 끝"

머니투데이 강상규 소장 2017.10.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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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재무학]<197>행동재무학이 '비주류' 꼬리표를 떼기까지

편집자주 행동재무학(Behavioral Finance)은 시장 참여자들의 비이성적 행태를 잘 파악하면 소위 알파(alpha)라 불리는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행동재무학’의 끝이 온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은 행동재무학 연구에 한 평생을 바친 리차드 세일러(Richard Thaler) 시카고대학 교수에게 돌아갔다.

세일러 교수는 행동재무학 분야의 시조로 인정 받는다. 하지만 그가 노벨상을 받은 첫 번째 행동재무학자는 아니다. 로버트 쉴러(Robert Shiller) 예일대 교수가 2013년에 먼저 수상했다.



2010년대에 들어서 두 명의 행동재무학자에게 노벨상이 수여된 사실은 행동재무학이 이제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이 아님을 입증한다.

특히 2013년에는 쉴러 교수 외에 전통 재무학의 대가인 유진 파머(Eugene Fama) 시카고대학 교수에게도 노벨상을 주면서 두 학파 간에 서로 견제와 균형을 맞췄다면, 올해엔 세일러 교수를 단독으로 선정하면서 행동재무학이 이제는 더 이상 학계에서 비주류가 아님을 분명히 인정했다.



그렇다고 행동재무학이 학계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는 건 아니고 최소한 비주류라는 꼬리표는 확실히 떼어버렸다고 말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세일러 교수가 18년 전 자신이 노벨상을 수상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을 했다는 점이다.

'행동재무학의 끝'(The End of Behavioral Finance)


1999년 세일러 교수는 ‘행동재무학의 끝’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그는 머지않아 행동재무학이 주류로 인정받는 날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당시만 해도 행동재무학이 학계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던 터라 세일러 교수의 주장 저변에는 외로운 행동재무학자의 울분과 절규가 깔려 있었다.

그런데 그가 ‘끝’(The End)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점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논문의 제목만 보면 ‘행동재무학은 끝났다’는 의미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일러 교수의 ‘끝’이라는 단어는 당시 주류를 차지하고 있던 전통 재무학자들에 대한 일종의 풍자라 할 수 있다.

세일러 교수가 1985년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들의 과잉반응(overreaction)이라는 비이성적인 행동을 분석한 행동재무학 논문을 발표했을 당시 대다수의 재무학자들은 세일러 교수의 결과를 의심했다.

일부는 세일러 교수가 통계 프로그래밍에 오류를 범했을 거라고 의심했고, 또 일부는 데이터마이닝(data mining)의 결과일 뿐(즉, 데이터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다 보면 뭔가 얻어낼 수 있다는 비판)이라고 폄하했다.

또 다른 이들은 세일러 교수가 인간의 비이성적 행동이 아닌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위험요소를 발견한 것일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주류 재무학자들은 행동재무학은 곧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다.

그러나 행동재무학은 죽은 학문이 되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발전해 나갔고, 급기야 세일러 교수는 1999년 ‘끝’이라는 단어를 써서 행동재무학이 죽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전통 재무학이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일대 반격을 가했다.

그가 ‘끝’이라고 말한 의미는 행동재무학이 사라져 버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훗날 재무학은 인간의 (비이성적) 행동을 연구하는 게 당연한 것이 돼 굳이 ‘재무학’ 앞에 ‘행동’이라는 단어를 붙일 필요가 없다는 의미였다.

즉 훗날에는 ‘재무학=행동재무학’의 시대가 오기 때문에 전통 재무학은 설 자리를 잃고 없어져 버릴 것이라는 예언이다.

또한 행동재무학이 학계에서 주류로 인정받게 되는 순간 행동재무학의 시조인 자신이 노벨상을 수상하게 될 것이라는 또 다른 속뜻(?)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18년이 지난 뒤 올해 노벨상을 수상함으로써 그의 18년 전 예언은 마침내 실현됐다.

그러나 아직도 학계에선 전통 재무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최고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도 전통 재무학이 압도적으로 많다. 행동재무학자 두 명이 노벨상을 수상했다고 해서 세일러 교수의 예언대로 전통 재무학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다.

2013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파머 교수는 행동재무학의 여러 주장들에 대해 이론이 없는 상태에서 겉으로 드러난 현상에 꿰어 맞춘 것일 뿐이라고 일갈한 것으로 유명하다. 파머 교수의 주장은 여전히 행동재무학자들의 연구에 비수를 꽂는 말로 통하고 있다.

그럼에도 세일러 교수는 행동재무학의 위상을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았다는 점에서 그의 노벨상 수상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그리고 필자 개인적으로도 세일러 교수의 눈부신 연구 덕분에 [행동재무학] 칼럼을 4년 넘게 써 오고 있고 200회에 가까운 칼럼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재무학자가 바로 세일러 교수라는 점에서 그의 노벨상 수상 소식은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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