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메이크업'·'소주 등산' 아시나요…틈새 뚫은 2030

머니투데이 이보라 기자 2017.08.29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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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등산·공예 등 외국인 대상 이색 사업 도전…"취업난에 다양한 시도 긍정적"

박시영씨(31, 맨 오른쪽)가 26일 서울 강남구의 한 화장품가게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한국 화장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이보라 기자 박시영씨(31, 맨 오른쪽)가 26일 서울 강남구의 한 화장품가게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한국 화장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이보라 기자


"If you use it, minus 5 years old" (이 화장품을 쓰면 다섯 살 더 어려 보일 수 있어요.)

26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 대형 화장품가게에서 박시영씨(31)가 한국 제품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스페인 국적 관광객 로라 아카그니씨(26)와 재미교포 조윤진씨(30)는 "Great!"(멋지네요.)라며 박장대소했다.

박씨는 아카그니씨와 조씨에게 한국식 화장법을 알려주며 화장을 해줬다. 서비스를 받은 아카그니씨는 "확실히 다르다"며 놀라워했다. 손가락으로 'V'(브이)자를 그리고 셀카도 찍었다.



박씨는 이날 3시간가량 '메이크업 투어'를 진행하고 8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인원이 많은 날은 30만원도 번다.

계속되는 취업난에 맞서 틈새시장을 뚫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이색 사업이 떠오른다.



8년 차 프리랜서 방송인인 박씨가 화장 투어를 시작한 건 여름 휴가철마다 방송 일감이 줄어들어서다. 박씨는 "화장을 좋아하고 영어를 잘하는 점을 살려 이달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며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많아 외국인의 반응이 뜨겁다"고 말했다.

이상천씨(27)도 올 초부터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서울 인왕산을 등반한 뒤 전통주를 시음하는 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관광은 서울 서대문구 전통시장인 영천시장에서 만나 구경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시장을 둘러본 뒤 인왕산에 올라 갔다 와 소주와 같은 한국 증류주를 시음한다.

이씨는 "즐기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평소 좋아하는 여행과 음식, 운동을 결합해봤다"며 "외국인의 평가도 좋고 벌이도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불안감도 컸다. 홍콩과학기술대 졸업생인 이씨는 "학교 친구들이 취업하는 걸 보면 기분이 이상했다"며 "하지만 돈을 버는 방식이 다양하다는 생각을 하고 이 일에 집중하면서 지금은 불안하지 않다"고 말했다.

도자기 공예가 이정애씨(34, 사진 가운데)가 자신의 공방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도자기 공예를 소개하는 모습./사진제공=이정애씨도자기 공예가 이정애씨(34, 사진 가운데)가 자신의 공방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도자기 공예를 소개하는 모습./사진제공=이정애씨
도자기 공예가 이정애씨(34)도 특기를 살렸다. 이씨는 2월부터 서울 서대문구 작업실에서 외국인 관광객에게 도자기 공예를 가르치며 돈을 번다.

미국에서 7년간 생활한 이씨가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국을 구경시켜주던 게 계기가 됐다. 이씨는 "외국인 친구들을 작업실로 데려와 공예를 체험하게 해주면서 자연스럽게 외국인 대상 수업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통상 이런 이색 투어는 관광객 숫자에 따라 한 회당 10만~30만원 정도 번다. 일주일 2~3회씩 일정을 잡으면 월 평균 200만~300만원대 소득이 가능하다.

관광객 모집은 에어비앤비 '트립' 서비스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중개수수료는 20% 수준이다. 이색 투어 등을 진행하는 우리나라 가이드 숫자는 현재 100여명 정도다.

전문가들은 전통적 취업 문이 좁아지면서 청년들이 다양한 길을 모색한다고 진단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청년(만 15~29세) 고용률은 43.8%, 30대 고용률도 75.5%에 그치고 있다. 고용률은 생산가능인구(만 15~64세) 중에서 특정 시점에 취업해 있는 인구 비율이다.

최병희 K-ICT(정보통신기술) 창업멘토링센터장은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등 좋은 일자리가 갑자기 늘어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일자리는 처우나 복지가 안 좋다보니 청년들이 여러가지 시도를 한다"고 분석했다.

청년들의 유연한 사고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박용호 전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장은 "청년들이 시장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수요를 빨리 알아챈다"며 "중장년층보다 '창직'(직업을 만드는 것)에 개방적 사고로 접근한다"고 말했다.

청년들의 시행착오를 도와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영민 청년유니온 정책팀장은 "다양한 도전에서 실패했을 때 회복할 수 있는 금융 지원과 보험 등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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