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 ‘영혼 없는 공무원’의 민낯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7.08.24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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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국립고궁박물관 기자 간담회 자리. 2년 전 미국에서 기증받은 덕종어보가 ‘1471년 제작의 진품’이라는 당시 홍보 문구와 달리, ‘1924년 재제작된 모조품’이라는 새로운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명’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국립고궁박물관과 상급조직인 문화재청 관계자가 일제히 모였다. 박물관 측은 지난해 말 1924년 분실 사건을 다룬 신문 기록을 발견하고 성분 조사를 통해 재제작본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 올해 1월 문화재청에 보고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이를 인지하고도 지금까지 ‘쉬쉬’해 왔다.

가장 큰 책임자가 문화재청인데도, 이날 간담회에서 ‘해명’은 김연수 고궁박물관장이 맡아야 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불구경하듯’ 뒤로 빠져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더 황당한 일은 '봉안'과 관련된 김 관장과 문화재청의 해명도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이다.



김 관장은 “덕종어보가 조선미술품제작소에서 다시 만들어진 우리의 환수 유물"이라고 했고 문화재청 역시 “어보 재제작은 순종의 지시로 이뤄진 왕실이 인정한 어보”라고 거들었다.

하지만 ‘종묘일기’에는 친일파 이완용의 차남 이항구가 덕종어보를 봉안한 것으로 기록돼 순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고 제작에서 봉안까지 친일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정부 관계자들은 ‘종묘일기’를 확인하기는커녕, 덕종어보와 관련된 사실 자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듯했다.


앞서 기자가 문화재청에 ‘봉안한 주체가 누구인가’를 묻자, 문화재청 관계자는 “봉안한 주체가 누구인지가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 않다”는 다소 황당한 답변을 내놨다. 그리고 ‘종묘일기’가 ‘증거’로 나올 때까지 “정사 기록이 남아 있는 게 없어 누가 봉안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기까지 했다.

박물관과 문화재청은 상황이 이 지경까지 왔는데도 ‘다시 찾은 조선왕실의 어보’ 특별전을 당장 멈춰야 한다는 학계와 시민단체의 의견을 묵살하고 계속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문화재에 대한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문화재청은 최근 잇따른 실수나 결함에 대해 ‘제멋대로 해석’과 ‘방관자적 입장’에 머물렀다. 조선왕조실록과 훈민정음 해례본의 경우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지정서 원본을 잃어버린 사실도 몰랐다가 뒤늦게 확인하고서야 “직원의 실수로 잃어버렸고 분실 시기나 장소도 모른다”고 ‘해명’했다. 게다가 인증서 유실은 2건이 아닌 7건이나 더 있었는데, 이 소재도 파악하지 못했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공무원을 향해 취임사로 내뱉은 첫 일성은 “영혼이 있는 공무원이 돼 달라”였다. 문재인 대통령도 “정권 뜻 맞추는 영혼 없는 공직자가 돼선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문화재청은 최근 문 대통령이 언급한 ‘임청각’ 얘기 한마디에 복원·정비에 나서겠다고 의지를 불태우면서 정작 자신이 해야 할 일에는 ‘뒷짐’으로 일관했다. 문화재청은 아직도 자신의 ‘영혼’이 오로지 ‘정권의 뜻’에 따라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 대통령이 ‘문화재청’을 언급할 시기가 된 듯하다.

[우보세] ‘영혼 없는 공무원’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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