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임청각과 노조의 품격

머니투데이 최석환 기자 2017.08.2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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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72주년 경축사'에서 언급하면서 화제가 된 곳이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인 '임청각' 얘기다.

경북 안동에 있는 임청각은 1519년에 지어진 고성 이씨의 종택으로 500년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장소다.



하지만 석주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이 임청각을 팔아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했다. 물론 대가는 혹독했다. 일제의 보복으로 임청각 마당에 중앙선 철길이 들어서면서 99칸짜리 가옥 중 절반이 잘려나갔다.

반 토막이 된 임청각은 9명의 독립투사를 배출하고도 지금까지 복원되지 않고 있다. 고성 이씨 문중이 모금을 통해 가까스로 소유권만 되찾아온 상태다. 문 대통령이 '노블리스 오블리제(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임청각을 치켜세운 이유다.



임청각의 정신이 재조명될수록 사회 곳곳에 드러나고 있는 특정집단의 이기적 행태도 부각되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게 이미 현실화된 대·내외적인 위기를 외면한 채 6년째 이어가고 있는 현대·기아자동차 노조의 파업이다.

실제로 현대·기아차의 상황은 심각한 수준이다. 우선 영업이익이 2012년 11조9592억원, 2013년 11조4926억원, 2014년 10조1225억원, 2015년 8조7122억원, 2016년 7조6550억원 등으로 눈에 띄게 악화되고 있는 추세다. 특히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788만대를 판매했는데 국제통화기금(IMF)외환위기 이후 18년 만에 첫 마이너스 성장이다.

올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상반기에만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조치로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판매가 47% 급감했다. 영업이익도 지난해 상반기 대비 25% 줄어든 3조3820억원을 기록했다. 여기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 등 악재가 줄줄이 대기 중이다.


그럼에도 지난 10일부터 다섯 차례 부분 파업을 벌여온 현대차에 이어 기아차 노조도 22일부터 부분 파업에 돌입했다. 억대 연봉에 가까운 돈을 받는데도 기본급 인상에 성과급 지급, 정년 65세로 연장,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고용보장 합의 체결 등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를 두고 업계 안팎에선 현대·기아차 노조도 제너럴모터스(GM) 등 미국 자동차 산업의 몰락 과정에서 위기 극복을 위해 사회적으로 요구된 노조의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필요한 시점이라는데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최근 일단락된 한국씨티은행의 노사협상이 한 예다. 대규모 영업점 패쇄로 노사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지만 상호 양보로 합의안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다. 송병준 씨티은행 노조위원장은 "시중은행이 먼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서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보여준 계기"라고 말했다.

현대차 노사는 23일부터 임금 및 단체협상을 진행한다. 새 집행부 선거를 앞두고 있는 만큼 이번 교섭이 파업 장기화의 마지막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기아차는 물론 다른 자동차업체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회사가 한번 망해봐야 정신을 차릴 것"이라는 법정관리 경험을 해본 한 대기업 임원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시대 정신에 맞는 '품격'있는 판단을 해주길 기대해본다.
[우보세]임청각과 노조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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