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구 걸린 아이 보내도, 어린이집 '속수무책'

머니투데이 이동우 기자 2017.08.23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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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양심 부모' 행태에 어린이집·유치원·구청·보건당국 "방법없어"…무더기 감염 속출

지난해 6월 서울 용산구 소화아동병원을 찾은 수족구병 의심 환자들이 보호자들과 함께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스1지난해 6월 서울 용산구 소화아동병원을 찾은 수족구병 의심 환자들이 보호자들과 함께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스1


#서울 신림동 A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들은 분통이 터진다. 이달 중순 한 아이가 수족구병 확진 판정을 받고도 일주일 내내 등원한 것이다. 해당 어린이집은 뒤늦게 사태를 파악했지만 이미 10명 가까운 아이들에게 병을 옮긴 뒤였다. 전염병에 걸린 줄 알고도 아이를 보낸 부모는 22일까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다.



#경기도 구리시에 사는 한모씨(33)는 지난달 내내 물놀이 가자는 아이의 보챔을 미뤄왔다. 혹시 여름철 유행하는 수족구병에 걸릴지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사고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어린이집에서 수족구병을 옮아왔다. 한씨는 어린이집을 바꾸는 방법까지 고민 중이다.

매년 여름마다 극성인 영·유아 수족구병이 일부 부모들의 안일한 인식으로 확산되고 있다. 병에 걸린 아이를 막무가내로 등원시키는 통에 애먼 아이들까지 무차별 피해를 보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런 '나 몰라라 부모'를 누구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제도 개선으로 관리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3일 질병관리본부(질본)에 따르면 올해 6월 말부터 병원을 찾은 외래환자 1000명당 수족구병 환자가 두 자릿수를 넘어섰다. 26주차(6월 25일~7월 1일)에 15.9명을 기록한 데 이어 29주차(7월 16일~22일)에는 29.2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족구병은 콕사키 바이러스나 엔테로 바이러스 감염으로 발생하는데, 영·유아가 90%를 차지한다. 병에 걸리면 손발과 입안에 물집성 발진이 생기고 열과 설사·구토 같은 증세를 보인다.


대체로 7~10일 정도면 자연 치유가 되지만 드물게 수막염 등 합병증을 동반해 사망하는 사례도 발생한다.

백신이 없고 전염성이 매우 강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앞선 사례처럼 멀쩡하던 아이들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다녀온 뒤 병에 걸리는 경우가 계속 생긴다.

수족구병은 지정감염병이지만 이동을 제한할 수 있는 강제성은 없다. 보육에 여력이 없는 부모들은 발병 사실을 숨기고 막무가내식으로 아이를 등원시키기도 한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도 속수무책이다. 서울의 한 어린이집 관계자는 "부모의 협조를 구해서 등원을 자제하도록 유도하지만 무작정 아이를 보내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어린이집 관계자도 "아이의 감염이 의심돼도 부모가 잡아떼면 어린이집 입장에서는 강제할 방법이 없다"며 "등원을 거부하면 부모들이 구청에 민원을 넣는 등 '을의 입장'이라 강하게 말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어린이집에서 문제를 일으킨 아이를 강제로 퇴출 시키는 제도가 있지만 이 역시 무용지물이다. 사고가 터진 A어린이집을 관리하는 관악구청 관계자는 "제도는 있지만 강제 퇴소한 전례가 없다"고 말했다.

보건 당국도 별다른 대책이 없다. 치사율이 높지 않은 전염병 관리에 강제성을 부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를 댄다.

질본 관계자는 "개별 시설에서 적극적으로 등원을 막는 등의 조치를 해야 하고 국민도 사회적인 예의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부모들의 양심에 맡겨놓겠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수족구병처럼 강한 전염성으로 피해가 반복되는 사례에 대해서는 강제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대현 계명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간접흡연을 강제적으로 규제하듯 이런 상황도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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