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보다 설사로 죽은 군인 더 많아”…전쟁에서 빛난 ‘과학의 힘’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7.08.19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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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새책] ‘전쟁에서 살아남기’…사람을 살리기 위한 전쟁의 과학

“전투보다 설사로 죽은 군인 더 많아”…전쟁에서 빛난 ‘과학의 힘’


군사과학은 대개 ‘죽이는’ 것에만 몰두한다. 적을 없애기 위해 첨단 전투기를 개발하고, 더 좋은 성능의 핵폭탄을 만든다. 제압을 위한 비정한 과학은 전쟁에서 불가피한 장치이자 수순이다.



하지만 전쟁의 당사자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폼’ 나는 기술의 대리전으로만 취급하기엔 작지만 복잡한 상황이 수시로 얽혀있다. 전쟁의 결과가 아닌 과정을 생각하면 죽음과 생존의 비율은 51대 49 또는 49대 51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오가기 때문이다.

저자 메리 로치는 전쟁 중 벌어질 수 있는 아주 사소한 변수에 주목한다. 죽이기 위한 전쟁이 아닌 살리기 위한 전쟁으로서의 과학적 해법이 투영된 사례나 사건이 없었는지 추적한 것도 ‘인간의 일’이어서다. 그래서 그녀가 좇는 인간 중심의 전쟁터는 대부분 더럽고 거북하다.



상상의 출발은 가령 이런 식이다.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일보 직전, 병사가 설사로 낭패를 본다면 어떻게 될까.(이 경우 설사를 막는 치료제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웃픈’ 상상력으로 출발한 문제의식은 아주 의미 있는 결과로 도출되기도 한다. 현대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오슬러는 1892년 “이질이 병사들에게 화약과 총알보다 더 치명적”이라고 썼다. 1848년 멕시코 전쟁 때 미국인 1명이 전투로 사망할 때마다 7명이 병으로 죽었는데, 대부분은 설사로 죽었다. 미국 남북 전쟁 때 이질로 죽은 병사는 9만 5000명이었다.

군 설사는 흔히 ‘여행자 설사’로 통한다. 마시고 싶지 않은 물이 있는 곳으로 군인들이 복무하기 때문이다. 미 해군 의료 연구센터의 리들과 데이비드 트리블이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라크 전쟁 당시 전투원 중 77%가, 아프가니스탄 전투원 55%가 설사병에 걸렸다.


해군 대령 로버트 필립스의 발견이 아니었다면 사상자는 더 늘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는 재수화액에 포도당을 첨가하면 물 흡수력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수액 대신 재수화액을 마시는 방법을 고안했다.

파리의 몸 안팎에 사는 세균들은 온갖 감염의 주인공이다. 전쟁터는 파리에게 풍요의 낙원으로, 감염에 노출된 병사들이 적지 않았다. 베트남 전쟁 땐 시신에 구더기가 들끓어 살충제까지 뿌릴 정도였다.

미국 원정군 외과 의사 윌리엄 베어는 상처에 구더기들이 도움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죽었거나 죽어가는 조직을 제거하는 구더기들의 놀라운 치유 활동을 눈여겨본 것이다.

베어는 전쟁이 끝난 1928년 소독제와 수술로 완치시키기 어려운 민간인을 대상으로 실험을 단행했다. 89건 사례 중 환자가 감염에 굴복한 사례는 3건에 불과했다. FDA(미국 식품의약청)는 2007년 살아있는 구리금파리 구더기를 의료 기구로 정식 승인했다.

미국 해병대가 착용하는 귀마개는 소음을 30dB(데시벨)쯤 줄여준다. 고속도로 소음이 85dB, 록 콘서트 무대 소음은 115dB 정도지만, AT4 대전차 화기가 뿜는 소음은 187dB이다. 화기 소음은 1초밖에 견딜 수 없어 청력은 금세 손실되기 십상이다. 소음은 차단하고 소리는 증폭할 수 있는 소머즈 같은 능력이 비로소 탄생한 것은 티캡스(TCAPS)의 발명 덕이다.

저자는 전쟁의 진정한 영웅은 첨단 무기를 개발하는 과학자가 아니라, 작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과학자라고 정의했다.

면역력이 생기는지 알아보기 위해 자기 몸에 직접 코브라 독을 주사한 육군 의학 연구소의 허셜 플라워스 대위의 행동이나 팔다리에 이어 생식기도 잃은 군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의학계 노력들이 모두 인간을 향한 작은 용기들이다.

저자는 “순응이 미덕인 사회에서 그들이 자신의 의지를 발휘하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용감한 행위”라며 “군사 영역에서 묵묵히 일하는 수많은 과학자는 군인의 목숨뿐 아니라, 전역 후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 지대한 기여를 하고 있는 영웅”이라고 강조했다.

◇전쟁에서 살아남기=메리 로치 지음. 이한음 옮김. 열린책들 펴냄. 352쪽/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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