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아난티 코브'의 메인 수영장. 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인피니티 풀에서 수영을 즐길 수 있다. /부산=김고금평 기자
주차장을 지나 엘리베이터 문을 여니, 이번엔 공기청정과 환기시스템이 적용된 스마트 에어컨 화면이 시선을 강탈한다. 웬만한 5성급 호텔은 죄다 돌아다니며 으쓱 젠체하려던 이들의 태도를 단 몇 가지 상황만으로 꺾는 이곳은 부산 ‘아난티 코브’다.
부산 '아난티 코브'의 모든 객실에선 바다를 볼 수 있다. 사진은 아난티 코브의 펜트하우스. /부산=김고금평 기자
아난티 코브는 푸르고 싱그러운 바다를 함부로 보여주지 않는다. 힐튼 호텔 입구로 가든, 아난티 리조트로 향하는 바다는 아직 볼 수 없다. 힐튼 호텔 입구 1층에는 입체형으로 투영된 나선형 천장이 먼저 방문자를 반긴다. 탄성을 부르는 몇 개의 장식을 만난 뒤 10층에 올라가면 통유리창 너머 시원한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10층 프론트가 꾸민 장식의 미학은 ‘영원한 거주’를 떠올리게 할 만큼 매력적이다. 리셉션 창구 건너편에 나란히 마련된 바에선 바다를 감상하며 음료를 즐길 수 있고, 사이사이 구비된 안락한 의자 앞엔 작은 책장이 멋스럽게 서 있다. 복도 끝에 따로 준비된 바에선 프랑스 바텐더가 대접하는 맛있는 칵테일도 맛볼 수 있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사생활이 더 보장된 아난티 리조트 쪽은 고즈넉한 휴식의 끝을 맛보고 싶은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프라이빗 레지던스는 침실과 욕실의 크기를 똑같이 나눌 만큼 욕실의 비중이 일반 호텔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욕조에 누워 유리 너머 흔들리는 바다 소리와 냄새를 한꺼번에 즐길 기회가 얼마나 될까.
바다를 보며 반신욕을 즐길 수 있는 '아난티 코브'의 욕조. /부산=김고금평 기자
아난티 코브가 방문객과 투숙객의 정신을 쏙 빼놓는 가장 큰 배경은 흔치 않은 소재와 구성으로 가꾼 낯섦과 이질이다. 천장에 매달린 조명, 라탄과 가죽의 이색 조합으로 꾸민 의자, 미로인 듯 미로 같지 않은 통행로 등이 모두 한번 보고 지나칠 수 없게 만든 ‘호기심 천국’이다.
힐튼 호텔 바로 앞 축구장 크기만 한 수영장을 비롯해 구석구석 비치된 4개 수영장은 잔재미를 배가시킨다. 18세 이상 ‘그들만의 리그’를 즐기고 싶은 연인은 아난티 리조트 옥상에 마련된 수영장으로, 가족 단위 아기자기한 물놀이를 즐기고 싶은 이들은 온천이 달린 수영장으로 직행할 수 있다.
아난티 코브의 가장 핵심적 만족도는 공간 거리 구성이다. 어떤 객실도, 어떤 식당도, 어떤 공간에서도 서로 부대낌이 없다. 투숙객이 아무리 많아도 옹기종기 붙어있는 협소한 공간으로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거의 없어 어느 공간에서도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아난티 코브'의 힐튼 호텔 입구는 입체감을 강조한 나선형 천장이 방문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부산=김고금평 기자
이만규 에머슨퍼시픽 대표는 “건축의 여유로움, 유려함, 아름다움 같은 미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결국에 ‘껍질’에 불과할 뿐”이라며 “핵심은 건축 사이로 파고든 콘텐츠의 질과 가치이며, 아난티 코브의 정체성과 이미지 역시 콘텐츠라는 속살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구조물은 껍질, 콘텐츠가 핵심”…머물지 않고 살고 싶은 ‘새로움’
500평 규모에 자리한 서점 ‘이터널 저니’(Eternal Journey)는 아난티 코브의 핵심이자 상징이다. 이 서점엔 대형 서점에서 흔히 보듯, 베스트셀러나 신간 책들을 내세우지 않는다.
'아난티 코브'가 가장 핵심적인 상징으로 내세우는 500평 규모의 서점 '이터널 저니'. 일반 대형 서점과 달리, 독특한 주제의 깊은 지식을 엿볼 수 있는 책들이 진열돼 있다. /부산=김고금평 기자
아난티 코브의 아난티 타운에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위한 경험의 현장들이 즐비하다. 100% 천연 온천수로 사계절 이용할 수 있는 ‘워터 하우스’, 브런치와 비스트로를 결합한 레스토랑 ‘더 오버랩’, 로마 3대 카페 중 하나로 알려진 ‘산 에우스타키오 일’ 카페, 외국 디자이너의 핸드메이드 리빙 소품을 선보이는 ‘런빠뉴’ 등 14개 상점은 생소하지만 한 번 쯤 들르고 싶은, 유혹의 공간이다.
하지만 ‘공개된’ 호텔과 ‘사적인’ 리조트의 경계를 의식하다 보면, 이동에 불편함이 따르는 건 피할 수 없다. 그래도 바다가 제 것 같고, 묵는 곳이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다.
'아난티 코브'는 바다를 '함부로' 보여주지 않는다. 힐튼 호텔 10층 로비에 이르러서야 통유리창 너머로 시원한 바다를 볼 수 있다. 로비 앞엔 음료를 즐길 수 있는 바가 마련돼 있다. /부산=김고금평 기자
이 이질적이고 이국적인 감성이 매일, 아니 매시간 소용돌이칠 때, ‘스테잉’(staying)보다 ‘리빙’(living)에 대한 간절한 욕심이 절로 솟아난다. 럭셔리를 내세우며 은밀히 대중과 소통하는 곳. 그곳에 다시 가고 싶어졌다.
'아난티 코브'의 야외 수영장. /사진제공=에머슨퍼시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