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건프라'에 빠진 40대 아재들

머니투데이 최성근 이코노미스트 2017.08.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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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랜딩]건담 프라모델이 세대를 넘어 인기를 누리는 비결

편집자주 복잡한 경제 이슈에 대해 단순한 해법을 모색해 봅니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흔히 로봇 프라모델은 남자 아이들이 갖고 노는 유치한 장난감으로 치부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건담 프라모델(이하 건프라)만큼은 아이들 못지않게 어른들까지 열광하는 독보적인 제품이다.



실제로 YG 양현석 대표나 영화배우 이시영, 1세대 아이돌 가수 강타 등 유명 연예인들이 건프라를 진열해 둔 모습이 TV 프로그램을 통해 나올 정도다.

그리고 지난 8월 3~6일 강남 코엑스 전시장에서 열린 ‘건프라엑스포 2017’ 행사장엔 한정판 모델을 구입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40대 건담 마니아(이하 건덕후)들로 새벽부터 장사진을 이뤘다. 그리고 이들 덕분에 한정판 모델은 대부분 조기 완판됐다.



본래 건프라는 1979년 방영된 일본 TV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에 등장하는 로봇을 소재로 만들어진 조립식 장난감이다.

지난 35년여 동안 건담 애니매이션은 꾸준히 시리즈물로 제작되면서 건프라도 함께 출시되었다. 그동안 판매된 건프라의 종류만 약 1700여 종에 이르고, 전세계 약 4억5000만개가 출하됐다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이러한 선풍적인 건프라의 인기에 힘입어 제조사인 반다이남코(BANDAI-NAMCO)사는 2017년 회계기준으로 1년 순매출 추정액이 무려 6000억엔, 우리 돈으로 약 6조4000억원에 달해 심지어 한국의 1위 IT기업인 네이버(4조226억원)를 크게 능가할 정도다.


국내 자회사인 반다이남코코리아는 전국 11개 주요 도시에 '건담베이스'라는 공식 판매점을 운영하고 있다. 건담베이스에 가보면 수많은 종류의 건프라가 판매되고 있을 뿐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구매해 조립할 수 있는 조립공간도 있다.

그래서 건담베이스를 방문해 보면 아이들을 데리고 와 함께 건프라를 조립하는 40대 아빠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40대 직장인 A씨도 어린 시절 건프라를 좋아했고, 어른이 돼서도 유튜브 등을 통해 최근 종영된 '철혈의 오펀스'나 방영 중에 있는 '건담 디 오리진' 등의 건담 애니매이션 시리즈를 즐겨보고 있다.

그리고 초등생인 A씨의 아들도 요즘 건프라 조립에 푹 빠져 있다. 개당 3~5만원에 달하는 건프라를 사주는 것이 때론 부담스럽지만, A씨도 건담을 좋아하는 탓에 아들에게 건프라를 사주는 것에 대해서 큰 거부감이 없다. 더욱이 건프라에 대해 아들에게 설명을 해주다보면 건프라는 아빠와 아들을 연결해 주는 좋은 소통의 도구가 된다.

A씨와 같은 40대를 넘어선 아재들이 아직도 로봇 프라모델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지 어린시절의 향수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40대 아저씨 팬들에게 있어서 건프라의 인기 비결은 로봇 애니매이션임에도 불구하고 현실감이 높은 인물과 배경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이라는 소재와 더불어 로봇이라는 첨단 병기의 활약상 그리고 식민지 독립을 둘러싼 인물들의 가치관 대립과 전쟁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애 등이 함께 녹아있는 건담의 스토리는 여타 황당한 만화들과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 즉 건담은 성인 남성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소재와 배경을 갖춘 매력적인 애니매이션이다.

또한 건프라는 그 자체로 훌륭한 장식품이 된다. 매년 개최되는 건프라 엑스포에서는 건프라 조립 실력을 겨루는 건담 빌더즈 월드컵 행사가 동시에 진행되는데, 조립의 완성도 뿐 아니라 컨셉트, 디자인, 배경까지 잘 꾸며진 건프라 모형은 하나의 예술작품에 가까울 정도다.

해를 거듭할수록 정교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갖춘 건프라는 메카닉 전쟁 병기에 열광하는 40대 아재들의 마음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한정판으로 판매되는 건프라의 경우에는 적잖은 웃돈까지 주고 팔리고 있어 '건덕후'로 불리는 일부 마니아들 사이에서 건프라는 이미 재테크 수단으로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실제 인기높은 모델 중 하나인 유니콘 건담(PG)의 경우 일반 모델 가격이 16만원이지만, LED에 금색으로 치장한 한정판 모델 가격은 3배가 넘는 50만원에 육박한다.

여기에 반다이남코사의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도 한 몫을 한다. 기존 업체들이 애니매이션 자체에서 수익 창출을 추구했다면, 반다이남코사는 애니매이션을 대부분 공짜로 제공하고 여기에 열광한 팬들이 건프라를 구입하도록 하는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또한 반다이남코사는 건프라를 고객의 수준에 따라 하이그레이드(HG), 마스터그레이드(MG), 리얼그레이드(RG), 퍼팩트그레이드(PG)로 나누어 선택의 폭을 크게 넓혔다. 이로써 초보자에서부터 고급 단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객들이 건프라를 즐길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건프라 엑스포 역시 이러한 반다이남코사의 훌륭한 마케팅 전략 중 하나이다. 건프라 엑스포는 한정판 모델을 통해 마니아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동시에 아빠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와서 부담없이 즐길 수 있도록 엑스포 입장료를 모두 무료로 책정하고 있다.

이쯤돼면 건프라가 왜 세대를 넘어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A씨 같은 40대 아빠들이 아직도 건프라에 열광하는 것은 그냥 철이 없어서가 아닌 것이다.

현재 많은 아이들은 국산 애니매이션인 '터닝메카드'나 '또봇'에 열광하고 있는데, 이들이 다 자라 40대 아재가 돼서도 과연 '터닝 덕후'나 '또봇 덕후'가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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