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가는 부자들 급증…"돈 있으면 이민 간다"

머니투데이 강상규 소장 2017.07.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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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재무학]<188>부자들이 이민 가는 이유

편집자주 행동재무학(Behavioral Finance)은 시장 참여자들의 비이성적 행태를 잘 파악하면 소위 알파(alpha)라 불리는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돈만 있으면 이민 가겠다” vs “돈 있으면 왜 이민 가냐?”

외국으로 이민을 가려는 사람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이유가 있다. 어떤 이는 자식 교육 문제로, 또 다른 이는 정치적 이유 때문에 혹은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찾으려고 이민을 고려한다.

하지만 상당수가 돈이 없어서 감히 이민을 떠나지 못한다. 돈을 많이 가지고 투자이민을 가는 경우를 제외하고 오늘날 해외 이민은 극히 힘들어졌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무슬림국가 입국 제한 조치와 시리아 난민 문제 등으로 유럽 국가들의 반(反)이민 정서가 고조되면서 최근 해외 이민의 문은 더 좁아지고 있다.

하지만 부자들은 예외다. 부자들에겐 해외 이민의 문은 언제든지 크게 열려 있다. 미국, 캐나다, 호주 등에선 부자들을 위한 특별 투자이민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돈이 많으면 정말로 이민을 떠날까? 이에 대한 대답은 “예스”(Yes)다.

전 세계 부자들의 이민 상황을 조사해온 ‘뉴월드웰스’(New World Wealth)의 2017년 보고서에 따르면, 순재산(거주주택 제외)이 100만 달러(11억원) 이상인 슈퍼리치들의 해외 이민 행렬은 해마다 두 자릿수의 증가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외국으로 이주한 슈퍼리치들은 약 8만2000명으로 전년 대비 28%가 늘어났다. 2013년과 비교하면 약 60%가 늘어난 수치로 지난 4년간 연 평균 17%씩 증가한 셈이다.


2016년에 슈퍼리치가 가장 많이 떠난 나라는 프랑스로 약 1만2000명의 부자가 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 다음은 중국(9000명)과 브라질(8000명), 인도(6000명), 터키(6000명) 순이었다.

프랑스는 2015년에도 1만 명의 슈퍼리치가 대거 이민을 떠나 부자 유출 국가 1위에 올랐다.

하지만 2000년부터 2016년까지 슈퍼리치가 가장 많이 떠난 나라는 중국이다. 17년간 중국에서는 누적으로 총 10만9000명의 슈퍼리치가 중국을 떠나 호주, 캐나다, 미국 등으로 이민을 갔다.

중국 상해 소재 리서치회사인 후룬(Hurun)의 2017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순재산이 150만 달러(16억원) 이상인 중국의 슈퍼리치 가운데 절반가량이 해외 이민을 준비 중이거나 고려하고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후룬의 2014년도 설문조사에서도 중국 슈퍼리치의 64%가 이렇게 답했다.

그 다음은 인도로 2000년부터 약 7만1000명(누적)의 슈퍼리치가 인도를 떠나 외국으로 이민 길에 올랐다.

반면 2016년 슈퍼리치가 가장 많이 이주한 나라는 호주로 약 1만1000명의 슈퍼리치가 호주로 국적을 옮겼다. 그 다음은 미국(1만명), 캐나다(8000명), 아랍에미레이트(5000명), 뉴질랜드(4000명) 순이다.

호주는 2015년에도 8000명의 슈퍼리치가 새로 이민을 와 2년 연속 슈퍼리치가 가장 많이 이주한 국가로 뽑혔다.

그러나 2000년부터 2016년까지 슈퍼리치가 가장 많이 이주한 국가는 영국으로 약 12만8000명(누적)의 슈퍼리치가 영국을 새로운 국가로 선택했다.

그 다음으로 슈퍼리치들이 많이 유입된 국가는 미국으로 2000년 이후 약 6만9000명(누적)의 슈퍼리치들이 세계 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런데 부자들은 왜 외국으로 이민을 갈까? 돈이 많으면 뭣하러 이민을 가느냐고 머리를 갸우뚱하는 사람들도 많다.

뉴월드웰스 보고서에 나타난 슈퍼리치들의 이민 이유는 국가마다 조금씩 달랐다.

우선 지난 17년간 가장 많은 슈퍼리치들이 이민을 떠난 중국의 경우엔, 이민을 가는 첫 번째 이유로 자식 교육 문제를 꼽았다. 중국 슈퍼리치들은 자식에게 보다 좋은 교육환경과 인적 네트워크를 제공해 주기 위해 미국이나 호주 등지로 이민을 떠났다.

반면 최근 2년간 대규모의 슈퍼리치들이 떠난 프랑스의 경우엔, 무슬림 이민자들과 극우 세력 간의 종교적 갈등이 심화되면서 슈퍼리치들의 이탈이 크게 증가했다.

영국의 경우엔 2015년부터 영국으로 이주하는 슈퍼리치가 급감했는데, 이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인 브렉시트(Brexit)의 영향 탓이었다.

호주는 2015년부터 2년 연속으로 슈퍼리치들이 가장 많이 이주한 국가인데, 슈퍼리치들은 최고의 건강의료서비스, 안전성, 낮은 상속세율, 아시아국가와 비즈니스 인접성 등을 호주 이민의 사유로 들었다.

브라질 등 남미국가의 슈퍼리치들은 범죄나 납치의 불안감 때문에 안전한 국가로 이민을 가기를 선호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세금 문제가 해외 이민을 결정하는데 있어 점점 덜 중요해지고 있다는 데 있다.

과거에는 슈퍼리치들이 세금 회피를 위해 모나코나 케이만군도와 같은 조세피난처로 국적을 옮기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세금을 많이 내도 사회적·경제적 안정성이 높은 국가를 선호하는 추세가 늘었다.

이처럼 오늘날 부자들은 어느 한 국가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rootless), 국경이 없는(borderless) 새로운 계층으로 자리잡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기업을 경영하고 또 이러한 글로벌 기업에 투자하는 부자들이 늘어나면서 비즈니스 목적 때문에 자연스레 외국으로 이주하는 부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기술 발전과 시장 및 투자의 글로벌화 덕분에 부자들의 국가에 대한 인식 자체도 크게 변하고 있다.

슈퍼리치의 이민 업무를 전문으로 하고 있는 뉴욕 소재 법무법인 위더즈 월드와이드(Withers Worldwide)의 리즈 자프리(Reaz Jafri) 변호사는 이런 슈퍼리치들을 두고 “오늘날 부자들에게는 (소속) 국가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자신이 태어난 곳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국가를 선택할 수 있다고 여기는 부자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부자들에게 국가란 태어난 곳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곳이란 개념으로 빠르게 변모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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