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그룹 만난 김상조, 재계를 '정책 파트너'로

머니투데이 민동훈 기자 2017.06.23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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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기업정책 방향 설명, 이해 구해…'재벌' 대신 '기업·그룹' 호칭, 정책 대화 파트너 인정

박정호 SK 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장,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정진행 현대자동차 사장, 하현회 LG 사장,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왼쪽부터)이 23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정책간담회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박정호 SK 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장,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정진행 현대자동차 사장, 하현회 LG 사장,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왼쪽부터)이 23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정책간담회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주초(19일)에 삼성·현대차·SK·LG 등 4대그룹과의 만남을 만남을 제안했을 때 재계는 긴급하게 준비하면서도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재벌개혁 전도사'로 불리우며 재계와 각을 세웠던 시민운동가 출신인 김 위원장의 호출인 만큼 새 정부의 재벌개혁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김 위원장은 23일 4대그룹과의 정책간담회 시작 전 모두 발언을 통해 “한국경제의 소중한 자산인 대규모기업집단이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했음에도 다수 국민의 삶이 오히려 팍팍해 진 것은 뭔가 큰 문제”라며 “공정위원장으로서 최대한의 인내심을 가지고 기업인들의 자발적인 변화를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또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자에게 정확하고도 충분한 정보가 전달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정보는 전달됐는데 적기에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데 장애가 되는 요인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며 “공정위원장이 이런 오해와 조급증을 갖고 있다면 그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모든 경제주체의 대화와 협력, 배려, 양보를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처럼 나도 새로운 사전규제 법률을 만들어 기업의 경영판단에 부담을 주거나 행정력을 동원해 기업을 제재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공정위의 정책 내용을 설명하고 나아가 새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한 이해를 구하겠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간담회에선 주로 김 위원장이 일감몰아주기 등 현안에 대해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성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 김 위원장은 일방적인 규제로 기업의 불확실성을 주거나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새로운 사전규제 법률을 만들어 기업의 경영판단에 부담을 주거나 행정력을 동원해 기업을 제재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라며 “신중하고 합리적인, 지속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기업 정책을 펴나가겠다”고도 했다. 그런 만큼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자율적인 모범사례를 만들어 줬으면 한다”는 얘기도 거듭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간담회가 끝난 뒤 “4~5명과 만나보니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30대그룹 경영자와 국무위원 18명이 한꺼번에 참석하는 모임보다 정말로 진솔한 말씀을 나눌 수 있었다”며 “앞으로 이런 대화를 계속 이어나갈텐데 오늘은 그 시작”이라며 흡족감을 표시했다.


아울러 “청와대가 오늘 모임에 대해 굉장히 큰 관심을 가지고 있고 문재인 대통령께 보고를 할 예정”이라고 해 간담회에서 오간 대화를 참고로 해 향후 국정과제의 방향성을 보다 가다듬고 정책도 정교하게 설계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 입장에서 이날 만남은 정부와 재계 간 불확실성을 일정 정도 줄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원장이 4대그룹 소속 주요 경영진을 만난 게 2008년 이후 9년 만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동안 공정위와는 접점이 크지 않았던 것. 게다가 문재인 정부가 ‘재벌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시점이었고 김 위원장은 특히 4대 그룹에 대해 “법을 어기지 말라”는 사전경고도 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유익한 대화였다”고 말했고,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저자 직강을 들어서 아주 감사한 시간이었는데 자주 만나서 서로의 어려움과 발전방향을 풀어 가면 좋은 결과가 많을 것“이라고 화답해 분위기에 다소 변화가 생긴 셈이다.

특히 김 위원장은 간담회 내내 '재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동안 '재벌개혁'을 주장하며 재계와 각을 세워온 시민운동가 출신 김 위원장이 '재벌'이라는 부정적 표현 대신 '기업', '그룹'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재계를 경제주체이자 경제정책 파트너로 대하겠다는 변화로 읽힌다.

김 위원장은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그룹 등을 비롯한 대규모기업집단들은 한국경제가 이룩한 놀라운 성공의 증거이며, 미래에도 한국경제의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며 "빈말이 이니다"라고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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