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훈의 스테레오마인드]비둘기는 하늘의 쥐

머니투데이 한지훈 도서출판 스테레오마인드 대표 2017.06.24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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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훈의 스테레오마인드]비둘기는 하늘의 쥐


어느 날 갑자기 집에 불법 세입자가 들어왔다. 전세 계약서도, 월세 계약서도 없이 이삿짐부터 옮겨놓다니! 어느새 1층 창문의 처마와 2층 창문의 차양은 그들의 가재도구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그 불법 세입자는 다름 아닌 비둘기 가족.



처음에는 ‘그래, 다 같이 없이 사니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지’ 하는 심정으로 그들의 입주를 허락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 밤낮없이 시끄럽게 노래를 불러대고 아무데나 똥을 싸놓고는 치우지도 않는 게 아닌가? 더 큰 문제는 집에서 키우는 삽살개 두 마리 중 한 녀석이 비둘기 가족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지 식음을 전폐하고 하루 종일 비둘기만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 좋아하는 누나도, 심지어는 꺼내기만 하면 아버지 옷에 구멍을 낼 정도로 펄쩍펄쩍 뛰며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도 안중에 없이 오로지 비둘기 가족에게만 온 신경이 가 있는 모양이라니.

강아지에 대한 섭섭함과 층간 소음의 고통, 청소의 압박 등으로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비둘기 가족과 대화를 시도했다.



“어이 비둘기 씨. 이건 좀 너무 경우가 없는 거 아닌가? 힘들게 사는 것 같아 계약서도 쓰기 전에 살게 해 줬는데 말이야. 이건 좀 너무 경우가 없다고 생각되지 않아? 같이 사는데 우리 서로 기본적인 매너는 지킵시다.” 당연히 비둘기는 말이 없고 이 광경을 지켜본 이는 “아저씨, 어제 못 주무셨어요?”라며 측은한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이야기를 하면 그 뜻이 통한다고 말을 한다. 그런데 통하기는 개뿔? 이 비둘기 가족은 오히려 친척들까지 데리고 온 것이 아닌가? 1층 차양과 2층 차양은 물론 2층 난간과 심지어는 빗물 홈통까지 온 집안이 순식간에 새장이 되었다. 안 되겠다. 이제부터는 실력 행사다!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보니 비둘기는 바람개비를 무서워한단다. 그래? 바람개비? 그까짓 거 크게 만들면 되겠네. 열심히 바람개비를 만들었다. 이제 비둘기가 이사 가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 바람개비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니 가족, 친척도 모자라 이제는 이웃 비둘기까지 마실을 와서는 그 바람개비 위에 앉아서 자기네들끼리 담소를 나누는 것이 아닌가? 실패.


다시 검색을 해보니 차양 위를 박스로 채워서 비둘기들이 앉을 자리를 없애면 된단다. 그래, 아무리 새라도 하늘 위에 계속 떠 있을 수는 없겠지. 더구나 우리 집에 살림을 차린 놈들은 살이 쪄서 잘 날지도 못하는 놈들이니 이게 좋겠네. 박스 당첨.

난 정말 기타를 사고 싶어서 산 게 아니다. 기타의 크고 긴 박스가 필요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난 진심으로 자연산 감성돔 같은 건 먹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다. 다만 차양 높이에 딱 맞을 것 같은 스티로폼 박스가 필요했을 뿐이고, 그 스티로폼 박스 안에 자연산 감성돔이 포장되어 왔을 뿐이다. 주치의가 먹지 말라는 라면이 먹고 싶어서 라면을 박스째로 산 게 아니다. 라면 박스가 차양을 가리기에 딱 좋을 뿐이다. 이래도 안 나갈 테냐, 비둘기?

언니네 이발관의 데뷔 앨범 제목이 ‘비둘기는 하늘의 쥐’였다. 어디 제목학원이라도 다녔는지 정말 기가 막힌 작명 센스다. 우리 집에 이사 온 비둘기는 쥐의 번식력에 바퀴벌레의 생명력을 더한 것 같다. 나가라고 채워놓은 박스의 옆을 뚫고는 그 곳을 보금자리로 정한 뒤, 알까지 까놓고 오손도손 사는 게 아닌가?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잘못 돼도 한참이 잘못되었다.

마지막 수단이다. 마침 겨울 담요를 여름 담요로 바꿀 때도 되고 해서 담요를 돌돌 말아 비닐 봉투 안에 넣고 그걸로 차양을 채웠다. 이건 내가 지금까지 덮었던 담요가 지겨워서, 이번 겨울에는 거위털 담요를 사고 싶어서 그런 게 절대 아니다. 난 그저 비둘기 가족과 이별하고 싶었을 뿐이다.

간절한 마음이 전해졌는지 일주일째 비둘기 가족은 소식이 없다. 아직 기타 앰프를 바꾸지 못했는데 말이다. 가끔은 비둘기 가족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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