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우먼 방지법', '사내눈치법' 이겨낼까

머니투데이 양성희 , 김종훈 기자 2017.06.24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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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Law&Life-세상의 빈틈]① "기업에 세금 인센티브 줘야"···'출산휴가 연장' 대안도

워킹맘/삽화=이지혜 디자이너 워킹맘/삽화=이지혜 디자이너


#. 30대 전문직 여성 정민주씨(가명)는 네 살배기 딸을 키우는 워킹맘이다. 시댁의 '둘째 압박'이 시작됐지만 언감생심. 3년 전 출산예정일 2주를 앞두고 출산휴가를 냈는데 손이 모자라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출산일이 임박해 겨우 쉬게 된 민주씨는 출산휴가 3개월만 달랑 쓴 뒤 육아휴직은 꿈도 못 꾸고 복귀했다. 한 선배는 아이 셋을 낳고도 육아휴직 한번 못 썼다. 심지어 셋째는 출산휴가도 미리 못 썼다가 출근길에 산통이 와서 그 길로 병원에 실려가 출산했다. 이런데도 이 회사는 '가족친화인증기업'으로 선정됐다.



#. 돌 갓 지난 아들을 둔 서른살 유지연씨(가명). 육아휴직이 1년씩 주어지는 제도권 금융회사를 다니지만, 이 회사에서 실제로 이 기간을 다 쓰는 사람은 드물다. 육아휴직 1년을 다 쓰고 돌아온 동료는 집에서 1시간 거리의 지점으로 발령받았다. 직원들끼린 이를 '패널티'라고 부른다. 지연씨는 자리를 뺏기지 않으려 3개월 만에 복직했다. 남편도 육아휴직을 고려했지만 금세 마음을 접었다. 육아휴직을 썼던 남편의 회사 동료는 복귀와 동시에 한직으로 발령받았다가 곧 이직했다.

◇"육아휴직 의무신청·기간 연장"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1185만8000개 기혼 가구 가운데 맞벌이는 520만6000가구(43.9%)였다. 또 맞벌이 가구 중 47.3%가 18세 미만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 맞벌이 여성 가운데 약 절반이 이른바 '워킹맘'인 셈이다. 그나마 이들은 '경력단절'의 위기를 넘긴 경우다. 지난해 기준 15~54세 기혼여성 취업자 558만4000명 가운데 경력단절을 경험한 이들은 259만2000명으로 전체의 46.4%에 달했다. 30대의 경우 경력단절 사유 1위가 임신·출산(39.8%)이었다.

워킹맘들의 이 같은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내놓은 법안이 이른바 '슈퍼우먼 방지법'이다. 심 의원의 '대선 1호 공약'으로 '고용보험법 개정안'과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으로 구성된 이 법안 패키지는 △남성의 육아휴직 의무화 △육아휴직 기간 중 급여 현실화 △육아휴직 및 배우자 출산휴가 기간 연장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법과 슈퍼우먼 방지법 비교/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현행법과 슈퍼우먼 방지법 비교/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슈퍼우먼 방지법'에 대한 워킹맘과 전문가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제대로 시행만 된다면 육아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줄고 부부가 육아의 부담을 공동으로 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슈퍼우먼 방지법의 한축인 고용보험법 개정안은 육아휴직 기간 중 월별 지급액을 통상임금의 40%에서 60%으로 인상토록 했다. 또 이 가운데 25%를 육아휴직 종료 후 6개월 이상 근무했을 경우 지급토록 한 규정을 바꿔 매달 전액을 주도록 했다.

슈퍼우먼 방지법의 다른 축인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은 남녀 근로자 모두 육아휴직을 의무적으로 신청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현행 1년 이내로 돼 있는 육아휴직 기간을 1년4개월로 늘리고 근로자가 최소 3개월 이상의 휴직을 신청하도록 했다. 또 법으로 규정하는 배우자 출산휴가를 '5일의 범위에서 3일 이상, 최초 3일은 유급휴가'에서 '30일의 유급휴가'로 고쳤다. 출퇴근 시간 선택제를 제도화하는 내용도 담았다.

세 살배기 아들을 둔 30대 여성 변호사는 "일과 가정의 양립이 쉽지 않아 퇴사의 길목에서 고민하는 여성들이 많은데 남성의 육아휴직도 의무가 된다면 채용 등에 있어 기혼 여성을 '도움도 안 되는 비용 덩어리'로 보는 인식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회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노동 인력을 차별하지 않는 인식의 전환을 불러올 계기가 되고 임신과 출산, 육아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실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있는 법부터 잘 지켜야"

만약 슈퍼우먼 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제대로 지켜질까? 우리나라 기업 문화에 비춰볼 때 쉽지 않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워킹맘과 법률전문가,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기업에 이행을 유도하거나 강제할 수 있는 실효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두 아이를 둔 18년차 법조인은 "국가적 과제를 풀기 위해 사기업에 부담을 전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법을 잘 지키는 기업에 대해 세금을 깎아주는 등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역시 아이 엄마인 한 변호사는 "현행 법 조항과 개정안 모두 사업주가 위반행위를 할 경우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여하도록 돼 있는데 이것으로는 적발과 개선이 쉽지 않다"며 "감독을 철저히 해야 법이 현실성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심상정 의원실 관계자는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중심으로 추가 개정안을 고려 중"이라며 "세제혜택, 재정지원도 방법이 될 수 있고 조달시장에서 인센티브를 부여하거나 근로감독을 면제해주는 방안 등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원책을 썼는데도 지켜지지 않는 경우 그 다음 방법으로 벌칙을 주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법 개정이 능사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사회적 인식 전환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황현숙 서울여성노동자회 부회장은 "법 개정의 방향은 맞지만 이른바 '사내눈치법' 때문에 있는 법도 잘 지켜지지 않는 문제를 먼저 짚고 싶다"며 "육아휴직 등이 법에 명시돼있더라도 실제 사용이 어렵거나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있는 만큼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전제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킹맘들은 육아휴직보다 출산휴가를 늘리는 게 더 현실적이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내놨다. 한 30대 워킹맘은 "임신하면 몸이 너무 힘든데 직장에서 눈치보느라 몸을 추스르기가 어렵다"며 "육아휴직은 육아 목적이 분명하게 전달되지 않으면 그냥 쉬려고 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는 만큼 이유가 좀더 명백한 출산휴가를 6개월 정도로 늘리는 게 더 현실성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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