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과 해양 등 영토로 규정지었던 국가의 정체성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한 개념이 아니다. 구분이 또렷한 지리적 환경으로 인류 문명과 역사, 국가의 흥망을 결정짓는 방식은 21세기에선 퇴보의 수순일 뿐이다.
그가 보는 21세기 최우선 관심사는 시장과 자원에 대한 접근성이다. 그는 이를 ‘연결성’(CONNECTIVITY)이라고 명명하고, 이 시대 패권의 핵심이 재해권에서 공급망으로 바뀌어 ‘공급망 세계’가 될 것이라고 역설한다.
과거의 지도는 면과 면으로 이뤄졌다. 거대한 대륙과 대륙을 가르는 산맥이나 육지와 해양이 만나는 해안선을 중심으로 한 면과 면의 직조된 세계가 그것이다. 지금은 도시라는 점과 공급망이라는 선으로 연결된 새로운 지도가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각 지역에 놓여 있는 에너지의 이동, 제품생산연계 근로자 이주 등 산업의 모든 과정이 평범한 지도에선 나타나지 않는 새로운 경제적 지도를 구축하는 셈이다.
정치·외교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저자는 정치, 군사, 외교라는 삼각 꼭짓점을 중심으로 세워진 국제 관계의 주체가 미래에 더 이상 쓸모없다고 말한다. 대표적 사례가 미국의 대중국 전략이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맹국에 군사자원과 시설을 배치하는 포위 전략을 쓰고 있는데, 한국에 ‘사드 배치’ 같은 견제 전략은 실패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포위 전략 구상 자체가 연결성과 공급망의 중요성을 간과한 국경 중심의 과거 패러다임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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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등장으로 인한 관계의 파열음,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무기력한 안보 정책 등 미국의 잇따른 실패는 연결에 대한 이해 부족이 큰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중국은 러시아, 인도양 주변의 에너지 자원과 기반시설 투자를 바탕으로 미국의 전략을 무력화한다고 저자는 지적했다. 물과 에너지 부족에 시달리는 중국이 잠재적 경쟁 관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극동 지대를 흡수하는 태도는 연결망의 관점에서 ‘성공적’이라고 본 것이다.
2012년 북한을 방문한 저자는 연결의 흐름을 거스르지만 연결의 내부적 열망이 존재하는 폐쇄적 국가인 북한을 공급망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이야말로 도발과 전쟁 위협을 막는 가장 효과적이 방법이라고 역설했다.
하지만 연결이 거역할 수 없는 추세라도 현실에서 연결의 집중화로 ‘부의 역설’이 나타나는 부작용은 어떻게 설명할까. 저자는 뉴욕 등 일부 도시가 부의 집중화 현상이 나타나지만 세계적 현상은 아니라며 “롤모델인 독일의 경우 중견 도시들이 계속 성장하고 있고, 특정 도시로의 집중화를 막기 위해 투자가 계속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자는 “지정학적 경쟁의 본질은 영토 전쟁에서 연결을 위한 전쟁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각 국가는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 같은 정치체제 전쟁이 아니라 에너지 시장, 금융, 기술, 인재 등 집단 공급체계의 내부 전쟁으로 주도권 쟁탈을 벌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커넥토그래피 혁명=파라그 카나 지음. 고영태 옮김. 사회평론 펴냄. 624쪽/2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