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휘소 40주기…노벨상에 가장 가까웠던 물리학자

머니투데이 구유나 기자 2017.06.17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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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새책] '이휘소 평전'…한국이 낳은 천재 물리학자

이휘소 40주기…노벨상에 가장 가까웠던 물리학자


"이휘소는 결코 불행하지 않았다. 그를 잃은 세계 물리학계가 불행한 것이다."(19쪽)

1999년 노벨 물리학상 시상식장. 네덜란드의 이론 물리학자인 헤라르뒤스 토프트는 수상 소감으로 "이휘소 박사를 만났던 것은 하늘이 내려준 행운"이라고 말했다. 이휘소 박사는 비가환 게이지(gauge) 연구로 여러 노벨상 수상자들의 이론을 뒷받침한, 한국계 과학자 중 가장 노벨 물리학상에 가까웠던 사람이다.



'이휘소 평전'은 한국이 낳은 천재 물리학자 고(故) 이휘소(미국명 벤저민 리) 박사의 40주기를 기리는 의미에서 복간됐다. 저자인 고(故) 강주상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 박사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다. 유가족 및 학계 동료들의 증언, 어머니와 부인에게 보냈던 100여 통의 편지, 저명한 물리학자들과의 일화 등을 토대로 그의 삶을 조명했다.

이휘소 박사는 1935년 서울 부부 의사 집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유별나게 독서를 좋아하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두각을 드러내 전쟁통에 피난을 다니면서도 학업을 이어갔다. 서울대 화공학과 입학 후에야 관심을 가지게 된 물리학과로 전과가 불가능하자 미국 마이애미대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피츠버그대와 펜실베니아에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휘소 박사는 30세에는 펜실베이니아대 물리학과 정교수로 부임했다. 이후 고등 연구원 회원, 스토니브룩대 교수, 페르미 국립 가속기 연구소 이론 물리학부장 등을 역임하며 '입자물리학 표준모형 완성'이라는 20세기 입자 물리학의 금자탑을 쌓았다. 2012년 발견된 '힉스 입자'의 이름을 처음으로 명명한 것도 이 박사다.

하지만 이휘소 박사를 핵무기를 개발한 '일그러진 영웅'으로 오해하는 시선이 남아있다. 이 박사가 1977년 교통사고로 42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이후 그를 모델로 한 소설과 영화('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나왔다. 1970년대 중반 박정희 정권의 핵무기 개발사업에 박사가 참여했으며 이를 탐탁치 않게 여긴 미국 정보기관에서 사고를 가장해 그를 살해했을지 모른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소설과 영화가 나온 뒤로 여러가지 면에서 진실 논란이 불거지며 이제는 많이 잊혀진 상황이다.

저자는 "(박사는) 박정희 정부를 못마땅하게 여겨 한국과 관련된 행동은 일체 관여하지 않았다"며 "1974년에야 서울대학교의 미국 지원 차관 심사를 계기로 한국의 물리학 발전에 힘을 기울였다"고 정면 반박한다.


이휘소 박사는 미국 국적을 취득했지만 한국 과학 교육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특히 미국 개발도상국 지원기구인 AID의 평가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1980년대 이후 서울대 과학 교육 혁신 발판을 마련했다. 한국 학자들의 활동 무대도 더욱 넓어져 고에너지 실험 물리학 분야에서 국제 공동 연구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이휘소 박사는 인류 문화의 흐름에서 물리학을 이처럼 표현했다. "누가 이러한 지식을 알게 되었는가는 결국 세인의 기억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한 시대, 한 국가가 이룩한 영감과 성취 결과는 영원히 기억에 남는 것입니다."

◇이휘소 평전=강주상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336쪽/1만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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