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첫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스1
최씨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JTBC의 태블릿PC 보도 이후 태도를 일부 바꿨다. 박 전 대통령은 제1차 대국민담화에서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문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며 최씨의 존재를 인정했다. 그 외 재단 운영과 비선실세 의혹에 대해서는 언론보도를 보고서야 알았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구속되기 전 검찰 수사를 받을 때에도 같은 입장을 반복했다. 그러나 법원은 박 전 대통령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뇌물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이 뇌물죄 적용을 피하기 위해 '모르쇠' 전략을 펴다 구속을 자초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해명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변론 방향을 잘못 잡았던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열린 첫 공판에서도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유영하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은 모르는 일임에도 검찰이 박 전 대통령을 무리하게 엮어 기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재단이 설립됐다는 기본 전제부터 틀렸다"며 "(공소장에)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모의 과정과 범행 과정이 설명돼 있지도 않다"고 강조했다. 유 변호사는 또 "기본적으로 박 전 대통령은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어떤 보고를 받은 적도, 지시를 내린 적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도 했다.
한편 박 전 대통령이 이번 재판에서까지 무조건 '모르쇠'로 일관할 경우 본인에게 더욱 불리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것이 법조계 안팎의 분석이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등 국정농단 사건 핵심 관계자들이 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일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 탓이다.
이와 관련,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행위가 법률적으로 어떤 뜻을 갖는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사건 관계자들의 진술과 증언, 객관적 증거들에 의해 혐의가 어느 정도 입증되는데도 계속해서 혐의를 부인하거나 모른다는 입장을 고수할 경우, 향후 유죄가 인정됐을 때 형이 더 무거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