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실내인이다 | ② 삶의 질을 높여줄 가정용 아이템 다섯

황효진, 정은지, 김지민, 김영진, 김하나 ize 기자 2017.05.23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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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밖은 위험하다. 하지만 집안에만 있기는 힘들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집안에서의 삶을 즐겁게 해줄 다섯 개의 아이템.
나는 실내인이다 | ② 삶의 질을 높여줄 가정용 아이템 다섯


밀리타 아로마보이 커피메이커
아침에 커피 한 잔을 마시지 않으면 하루 종일 정신이 멍하다. 기분 탓인지 과학적 근거가 있는 현상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모닝커피는 하루를 시작하는 나름의 의식인 셈이다. 그러나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는 자고 일어나 엉망이 된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정돈해야 하고, 밖에 나가도 괜찮은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사람에게는 아무래도 번거로운 과정이다. 외출하지 않고도 커피를 마시기 위해 처음에는 핸드드립 도구들을 샀다. 신선한 원두 위로 물줄기를 천천히 흘려보내면 원두가 부풀어 오르고, 커피 향이 집 안 전체에 은은하게 퍼지고, 비로소 맛있는 커피가 완성… 될 거라는 건 착각이었다. 나처럼 성질 급한 사람에게 핸드드립은 어울리지 않는 취미였다. 매일 맛이 들쑥날쑥한 형편없는 커피에 지겨워지던 어느 날, 밀리타 아로마보이 커피메이커를 들였다. 순전히 귀여운 겉모양 때문에 구입한 것이었지만 의외로 커피 맛도 제법 훌륭하다. 내가 직접 내리는 커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버튼만 누르면 아로마보이가 열심히 커피를 내려주니 그동안 아침식사를 준비하거나 잠깐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 물론 이 작은 커피메이커가 일상을 대단히 드라마틱하게 바꿔줄 수는 없다. 다만 아침에 일어나 제대로 된 커피를 마시면서, 적어도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건 꽤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글. 황효진(프리랜스 에디터)



나는 실내인이다 | ② 삶의 질을 높여줄 가정용 아이템 다섯
롯지 스킬렛 무쇠팬

이불 밖은 위험해! 영원히 침대에서 살고 싶지만 죽기 싫다면 먹어야 한다. 배달 음식을 질색하는 나에게 롯지 스킬렛은 문명의 극치다. 그럴싸한 요리를 쉽고 빠르게 만드는 마법의 아이템이다. 무쇠팬은 코팅팬과 달라서 연기가 자욱하도록 달궈도 끄떡없다. 등심이건 연어건 들입다 구우면 선명한 갈색 크러스트의 근사한 스테이크가 대령된다. 무쇠팬에 구운 피자는 인스타그램에서 존경과 질투를 불러오며, 계란 세 개 값이면 더치 베이비를 즐길 수 있다. 더 좋은 것은 가장자리에 자글자글 레이스가 둘린 계란 프라이나 황금빛 껍질의 스팸구이처럼, 늘 먹던 것도 처음처럼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길이 잘 들면 코팅팬 못지않게 매끄러우며, 녹슬기 쉽다는 통념도 옛날 얘기다. 나의 사랑스러운 팬은 쇠솔에 세제를 듬뿍 묻혀 박박 긁음에도 여전히 까맣게 반들거린다. 단점은 역시 무게고, 그러기에 오히려 1인용이다. 내가 다루기에는 10인치가 한계인데, 스테이크 한 장에 곁다리로 감자나 껍질콩을 굽기 딱 좋은 크기다. 한국인이라면 부침개 때문에라도 무쇠팬을 사야 한다. 김치전에 막걸리, 호박전에 맥주, 부추전에 와인. 코팅팬으로는 불가능한 바삭바삭한 가장자리를 독차지하며 느긋하게 혼자 마시는 시간. 그러고는 다시 침대로 기어올라간다.
글.정은지(번역가)

나는 실내인이다 | ② 삶의 질을 높여줄 가정용 아이템 다섯
바디 필로우

보다 쾌적한 와식 생활을 위하여 매트리스에 거금을 투자하는 것은 물론, 계절마다 각종 침구류를 구입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침구류 덕후이자 와식 생활인으로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침구류는 출장지에서 만난 고급 호텔의 베개가 아닌 홈쇼핑 채널에서 충동적으로 주문한 바디 필로우(Body Pillow)다. 바디 필로우를 만든 사람은 아마도 대단한 인도어 퍼슨(Indoor Person)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기에 이 정도로 완벽한 디자인을 만들 순 없다. 제아무리 와식 생활인이라 하여도 너무 누워만 있으면 허리가 아프다. 그럴 땐 이 거대한 베개의 양쪽 다리를 접어 침대 머리맡에 두면 아주 훌륭한 등받이가 된다. 한쪽 다리만 접어 등을 받치고, 다른 한쪽을 몸 위에 올려두면 노트북을 기대어 쓰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렇게 나의 넷플릭싱(Netflixing) 역사는 바디 필로우 전과 후로 나뉘게 됐다. 하지만 바디 필로우의 기능 중 최고는 바로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큼지막한 바디 필로우 사이로 몸을 포개 넣으면 혹시 유아기 시절 정서적 결핍이 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몸과 마음이 동시에 편안해진다. 폭신한 솜을 감싸고 있는 서늘하고 바삭거리는 베갯잇이 하루 동안 일에 시달려 지친 몸에 닿으면, ‘아이고, 좋다’ 하고 탄식이 절로 터져 나온다. 그렇게 바디 필로우를 끌어안고 있자면, 이케아 인기 상품으로 유명한 일명 ‘코끼리 애착 인형’을 어른을 위한 크기로 만든 게 바로 이 바디 필로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 김지민(유니버셜 뮤직 홍보팀)



백색소음 애플리케이션
집이 곧 일터이기도 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고정된 실내에서 보낸다. 때문에 여건에 별다른 기복이 없는 나로서는 뭐든지 시들해지기 쉬워서 사사로운 변화라도 일부러 만드는 편이 낫다. 이때에 적은 힘으로도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 백색소음 애플리케이션이다. 앱스토어에서 백색소음을 검색하면 자연음을 포함해 반복적인 음원들을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들을 여럿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들은 이미 알려진 것처럼 집중력이나 심리적 안정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블루투스 스피커와의 조합이라면 흡사 무드등과도 같은 역할을 해낼 수 있다. 원하는 상황에 맞추어 효과음을 고르거나 조합해보자. 거친 뇌우 소리를 들으며 추리소설을 읽거나, 해저에 가라앉은 기분으로 잠을 청해보는 건 꽤 기분 좋은 일이다. 만일 선택한 음원이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스피커의 위치를 바꾸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특히 기후와 관련된 소리들이 많아, 창가처럼 스스로 납득할 만한 위치에 음원을 둘 수 있다면 그 효과는 배가 될 것이다. 더욱이 이것들이 가지는 마스킹 효과는 적막함을 채우는 동시에 청각적인 방해도 덮어준다. 창을 통해 들려오는 진짜 가래침 소리를 지우고, 가짜 자연의 소리로 안정을 찾자.
글.김정연(작가)

나는 실내인이다 | ② 삶의 질을 높여줄 가정용 아이템 다섯
파자마
아래위 한 벌로 된 반듯한 파자마는 진정한 실내 생활을 위한 수트다. 실내 생활의 정수는 집과 외부의 연결고리를 깔끔히 끊어내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파자마는 바깥세상으로부터의 차단막을 몸에 입는 것과 같다. 입고 외출을 해도 손색이 없으며 활동에 편한 트레이닝복 따위는 오히려 진정한 실내 생활을 방해한다. 여차하면 집 앞 수퍼에 나가 음료를 사 올 수도 있고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수도 있는 옷이라니. 그것은 외부와 연결되어 있는 차림이다. 그러나 본격 파자마는 오로지 휴식과 집 안 생활만을 위한 복식이므로 택배 아저씨가 벨을 눌러도 그 차림으론 나설 수가 없어 숨을 죽이고 아저씨가 문 앞에 물건을 두고 가기를 기다려야 한다. 한 벌로 된 파자마는 나름의 격을 갖추고 있어 집 안에서의 생활을 가지런하게 한다. 궁상맞음 없이, 편안하고도 단정한 매무새를 집 안에서 유지하는 것은 꽤나 기분 좋은 일이다.
글.김하나(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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