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발언' 주진형 "재벌개혁이 사법개혁, 그것만 잘해도 문 대통령 100점"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7.05.19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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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새책 '경제, 알아야 바꾼다' 낸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 "눈치없어 생각하는 대로 뱉는 게 내 특징"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 /사진=김휘선 기자<br>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 /사진=김휘선 기자


그의 존재감은 지난해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재벌의 전횡을 ‘조폭’에 비유하는 사이다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엉뚱한 질문을 하는 국회의원에겐 논리적으로 따지며 ‘대들’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반대 보고서를 유일하게 작성해 안팎으로 압력을 받았을 때, 그는 “언론과 증권사가 말도 안 되는 일에 눈감고 입 닫는 걸 보고 한국인으로 창피했다”고 말했다.



금융계 대표들이 흔히 보여주는 보수적 이미지를 고려하면, 그의 말과 행동은 ‘이단’이거나 ‘밉상’이었다.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는 그렇게 나름 소신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증권계 풀뿌리 정서에선 그가 대표 시절, 직원 3분의 1을 감축한 사건으로 비난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의 태도는 완강했다.



주 전 대표는 “감축 과정에서 나가는 사람은 아프겠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이 더 위험해지니 적자 나는 회사가 규모를 줄이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청문회 이후 그가 다시 주목받은 건 한 권의 책과 한 편의 라이브 방송이었다. 베스트셀러 순위 톱10 안에 안착한 그의 저서 ‘경제, 알아야 바꾼다’는 일자리, 부동산, 교육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귀에 감기는, 쉽지만 단호한 논리로 독자의 이목을 끌었다. 페이스북 라이브방송 ‘경제알바’에서 보여준 한국 경제에 대한 예리한 분석은 방송 3개월 만에 1600만 조회 수를 기록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인기 비결을 조심스레 물어보니, 그는 “눈치가 없어서”라고 했다. “글쎄요. 권력 출세에 별로 관심이 없으니 눈치를 안 보죠. 생각하는 대로 대답하는 경향도 있고요.”


신간 '경제, 알아야 바꾼다'와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 '경제알바'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 그는 지난해 국정감사 청문회에서 '재벌=조폭'이라는 소신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사진=김휘선 기자<br>
신간 '경제, 알아야 바꾼다'와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 '경제알바'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 그는 지난해 국정감사 청문회에서 '재벌=조폭'이라는 소신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사진=김휘선 기자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속이 허허롭다 해서 그에겐 ‘공(空) 선생’이란 별칭이 붙었다. 주 전 대표에게 ‘이럴 수도 저럴 수도…’ 같은 모호하거나 포용하는 듯한 답변은 어울리지 않는 옷 같았다. 이를테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하마평에 오르는 것과 관련해 그는 “근거없는 낭설”이라고 일축했다.

“역대 정권을 보면, ‘모피아’(재무부 출신 관료의 마피아적 행태)에서 벗어난 인사를 임명한 적이 별로 없어요. 권력자가 특히 금융을 잘 모를 땐 개혁보다 현상을 잘 관리하는 사람이 필요한 법이죠. 지금까지 선거에서 금융에 대한 공약이 있었나요? 가난한 사람에게 싸게 대출을 해주는 정도의 공약이었을 뿐, 금융정책에 관한 건 관심 밖이었어요. 특히 저처럼 주관이 강한 스타일은 현상 관리를 원하는 정권에선 입맛에 맞지 않을 겁니다.”

금융인으로서, 또 경제학자로서 그는 실물경제에 대한 이론이나 수치로 득실을 따지는 효용에 집착하지 않는다. 대신 구조적으로 더 큰 그림을 본다. 대기업, 공무원, 공기업을 원청으로, 나머지는 하청으로 보는 이분화한 구조에서 하청이라는 이유로 능력 있는 노동자가 정당한 대우(보수)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일자리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꼬집는 식이다.

그는 보수든 진보든 허언에 가까운 공약이나 정책에 대해선 거침없는 비수를 아끼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81만 개 일자리 공약에 대해서도 “공적 부분 고용을 늘리는 건 말이 되지만, 원청과 하청 사이의 계급구조를 방기한 채 실행하는 건 아전인수 격 숫자만 만드는 꼴”이라고 했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총선정책공약단 부단장을 맡았던 그는 ‘기초연금 30만원’, ‘경쟁력없는 사립대 자연도태, 지방거점 국립대 투자’, ‘실업보험 증액’ 등의 정책을 내놓았고, 이 중 일부는 선거 공약으로 채택됐다.

대기업이 자기 몸무게를 이용해 모든 사회에 영향을 주는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가 제안하는 진정한 재벌개혁은 ‘재벌’이 아닌 ‘사법’을 개혁하는 것이다. 주 전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사법개혁만 잘해도 대통령으로서 100점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는 최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보수, 진보 상관없이 생각하는대로 내뱉는 말 때문에 '공(空) 선생'이란 별명이 붙었다"면서 "문재인 정부의 81만개 일자리 공약은 무리하다고 보지만, '사람통한 성장' 구호는 꽤 마음에 든다"고 했다. /사진=김휘선 기자<br>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는 최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보수, 진보 상관없이 생각하는대로 내뱉는 말 때문에 '공(空) 선생'이란 별명이 붙었다"면서 "문재인 정부의 81만개 일자리 공약은 무리하다고 보지만, '사람통한 성장' 구호는 꽤 마음에 든다"고 했다. /사진=김휘선 기자
“금융산업의 특징은 계약에서 출발해요. 우리가 은행에 예금할 때 처음 하는 일은 계약서를 쓰는 일이죠. 계약이 유지되기 위해 법치주의가 굉장히 중요해요. 계약 안 지키는 사람에 대한 처벌이 있어야 금융산업이 사는 거예요. 이 산업이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계약 불이행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이에요.”

주 전 대표는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역대 정권의 경제 정책을 날 선 어조로 비판했다. 왕정 시대 사고방식으로 일본식 경제 모델을 지키려고 했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세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사고는 왕정 시대를, 운영체계는 일본식 모델을, 디자인은 미국식 문양을 좇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어요. 아직 자생적 발전 모델을 갖추지 못한 셈이죠.”

이를 위해 그가 책에서 줄곧 강조한 것이 ‘깨우친 시민’의 역할이다. 자유주의적 시민의 수가 늘지 않는 한 해묵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가장 큰 문제는 함께 추구하는 비전을 같이 노력해서 만들자는 연대의식의 부재”라며 “마침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타이틀이 ‘사람을 통한 성장’인데, 이 부분만큼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수는 원청의 가치를 부풀려 서민과 위화감을 조성하고, 진보는 ‘자본 대 노동’의 대립으로만 보는 이분법적 사고에 얽매여 있다며 양 진영 모두 싸잡아 비난하는 주 전 대표. 속 비운 ‘공(空) 선생’이 어느새 ‘공(公) 선생’으로 대중 앞에 성큼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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