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을 수상한 이건혁의 '피코'는 인류의 1차 종말 이후 인공지능이 철저히 관리, 통제되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제목인 '피코'는 반려 인공지능을 부르는 단어로, 자의식을 지닌 인격체로 성장하지 못하도록 7년마다 교체돼야 하는 운명이다. 주인공 제타는 피코를 수거해 기억을 폐기하고 초기화하는 일을 한다. 소설은 우연히 '인간의 모습을 한' 피코를 수거하게 되면서 예기치 못한 일을 겪는 제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코로니스를 구해줘'는 과학스릴러 소설로, 주인공인 BJ주노가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VR(가상현실) 게임에 출연하면서 발생하는 일을 그린다. '1인 미디어'와 'VR게임' 등 현실을 반영한 배경과 10대 소녀 사이의 질투와 우정 등의 요소를 긴장감 있게 결합했다. 개인의 기억 속에 있는 근원적인 공포감을 속도감 있게 풀어내며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 강점. "끝까지 읽게 만드는 스토리의 힘이 있다"는 평을 받으며 우수상을 수상했다.
가작 수상작 '네번째 세계'는 과학이론을 바탕으로 한 하드SF소설이다. 우주의 잔해를 수거하는 일을 하는 함선이 '시아'라고 불리는 특별한 물체를 발견하고 좌초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선원들은 거대한 종기 덩어리 같은 괴생명체나 빛이 반사되지 않고 메아리도 없는 검은 벽 '블랙필드'를 마주한다. 소설의 묘미는 과학이론을 통해 정체불명의 물체들을 규명하고 사건의 경위를 밝히는 과정에 있다. 과학을 전공한 작가는 스티븐 호킹 '시간의 역사'와 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착안해 소설을 풀어냈다. "국내 SF공모전에서는 흔하게 접하기 힘든 독창성이 있다"는 평을 받았다.
이번 작품집에는 두 편의 초청작이 함께 수록됐다. 작가 김보영의 '고요한 시대'와 김창규의 '삼사라'다. '고요한 시대'는 인터넷을 대체하는 '마인드넷'을 이용하게 된 가까운 미래에 대통령 선거를 앞둔 한국의 상황을 그린다. '삼사라'는 인류가 사라진 뒤 기계인 '코어'들이 살아가는 우주를 배경으로 학대와 차별을 받는 전염병 '주마병' 보균자와의 만남을 다룬다.
'SF'는 오랜 시간 동안 '공상과학'이란 오역에 짓눌려 왔다. 'SF적 상상력'은 사실 합리적인 의심을 품고 세상을 바라보는데서 출발한다. 다른 어떤 장르보다 '지금, 여기'를 흥미롭게 재해석하는 장르다. 동시에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세계에 대해 창조적인 질문을 던진다. 수상작에선 젊은 신진 작가들이 과감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공모전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박상준 SF아카이브 대표는 "치기 어린 습작이 거의 없던 것이 20여 년 간 경험한 여러 공모전과 달랐던 점"이라고 평했다. 올해 열리는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엔 1000만원 고료의 장편 분야가 신설되고 중·단편 분야에서는 가작이 5편으로 늘어 총 2500만원의 상금을 수여한다. 모집은 6월 15일부터 30일까지다. 작품집은 과학책 전문 출판사 '동아시아'가 새롭게 만든 SF전문브랜드 '허블'에서 펴낸 첫 책이다.
◇ 제1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이건혁·박지혜·이영인·김보영·김창규 지음. 허블 펴냄. 328쪽/1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