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 전시에 1시간 줄서"…SNS에는 경쟁하듯 '인증샷'

머니투데이 이슈팀 남궁민 기자 2017.04.2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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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음란을 지우다]<3>전시회 북적, 누드화 소재 가방·배지도 인기…"자연스러운 문화" 인식 확산

편집자주 몰래 보고 가슴졸이며 얘기하던 '성(性)'이 달라졌다. 청년들이 당당하고 유쾌하게 얘기하는 '섹스토크' 동영상은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어두침침하던 성인용품 매장은 캐릭터용품숍처럼 예쁜 놀이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누드화가 그려진 가방을 둘러메고 누드 작품 전시장 인증샷을 SNS에 올리는 젊은이도 더이상 낯설지 않다. 우리 사회를 짓누르던 성 인식에 가해지는 균열을 3회에 걸쳐 만나보고, 흐름의 선두에 선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요즘 가장 '핫'하다는 전시를 함께 가자는 친구를 따라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대학생 A씨는 얼굴이 붉어졌다. 친구 손에 이끌려 들어간 곳은 온통 누드 작품으로 가득했다. '이게 제일 핫한 전시 맞아?'라며 갸우뚱해하는 그에게 친구는 "사진 좀 찍워줘"라며 누드 작품 옆에 두 팔 벌리고 섰다. 찍어준 사진을 바로 SNS에 올리는 친구에게 A씨가 "너무 야하지 않냐"고 묻자 친구는 "지금이 고조선이냐"라며 핀잔을 줬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다양한 누드 전시 인증샷들. /사진=인스타그램 캡처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다양한 누드 전시 인증샷들. /사진=인스타그램 캡처


부끄러움에 공개적 장소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누드를 보는 시선이 바뀌고 있다. 누드 작품이 가득한 전시는 관람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고 SNS에는 관련 인증샷이 넘쳐난다.

지난 주말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디뮤지엄에서 열린 'Youth' 전시회. '청춘의 열병, 그 못다한 이야기'를 주제로 누드 등 다양한 사진을 내건 전시회에 청소년부터 노년층까지 다양한 관객층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날 1시간 줄을 서 입장했다는 대학생 남지현씨(24)는 "이전에도 누드 작품 전시가 있었지만 청소년 입장이 제한되거나 전시장 한 켠에 칸막이를 만들어 그 뒤에 별도 전시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최근 전시들은 누드를 다뤄도 '수위가 높다'기 보다 자유롭고 생기있는 분위기여서 친구들과 관련 전시를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인증샷'은 더 과감하다. 누드 작품은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고 대부분 사진촬영을 허용하기 때문에 '인증샷'의 좋은 피사체가 된다. 인스타그램에는 '#youth청춘의열병그못다한이야기'라는 해시태그를 단 인증샷 게시물이 24일 현재 1만1307장 올라와있다. 직장인 김지현씨(28)는 "예전에 전시에 오면 사진은 찍어도 SNS에 올리거나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해놓기는 부끄러웠다"라며 "하지만 요즘은 주위 사람들도 인증샷을 많이 올려서 특별히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씨의 SNS 프로필 사진도 전시회에서 찍은 누드 작품 사진이다.

연인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활동을 하는 민조킹 작가의 작품들./사진=인스타그램 캡처연인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활동을 하는 민조킹 작가의 작품들./사진=인스타그램 캡처
SNS에서 '누드' 그림도 인기다. 2012년 초부터 인스타그램을 통해 연인의 애정 행위 등 다소 '수위 높은' 그림을 게시해온 민조킹(필명) 작가는 팔로워가 3만5000명이다. 작가는 "제 팔로워분들은 대부분 20~30대 여성분"이라며 "연인 간 사랑하는 모습을 그린 '19금'(19세 이상이 보기에 적절한 게시물을 이르는 은어) 작품이 대부분이지만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작품 활동에 대해 응원해주는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누드의 잠재력은 출판, 웹툰 업계도 주목하고 있다. 민조킹 작가는 지난해 말 사랑 이야기에 여러 그림을 함께 담아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그는 "최근엔 웹툰 제작을 제안받아 연재 시작을 앞두고 있다"고 말했다.

민조킹 작가의 누드 작품을 활용한 가방. /사진=민조킹 홈페이지 캡처민조킹 작가의 누드 작품을 활용한 가방. /사진=민조킹 홈페이지 캡처
민조킹 작가의 누드 작품을 활용한 수건 /사진=민조킹 홈페이지 캡처민조킹 작가의 누드 작품을 활용한 수건 /사진=민조킹 홈페이지 캡처
누드 그림을 활용한 상품도 진화하고 있다. 인테리어에 쓰이는 포스터부터 수건, 배지, 가방까지 누드가 활용된 상품들은 입소문을 타고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 누드 캐릭터 가방을 메고 다닌다는 대학생 박지민씨(23)는 "단순히 야한 그림과 누드는 다르다"며 "아름다운 모습을 담은 사진과 그림이 그려진 물건을 일상에서 쓰고 싶은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민조킹 작가는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와 달리 최근엔 성과 누드에 대한 편견이 많이 깨지고 변화가 일어난걸 체감한다"며 "좋은 음악을 듣고 맛있는 밥을 먹고 싶은 것처럼 누드나 섹스가 음지의 문화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욕구이자 문화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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