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눈에도 끔찍스러운 이 고통은 기록하고 공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 ‘무엇’이었다. 저자는 “1981년부터 원폭의 피해 실태를 취재하다가 만난 위안부 피해 여성들은 추정치만 20만 명이 넘는다”며 “위안부 할머니들을 취재하면서 내게 여성이나 타민족에 대한 차별 의식이 있는지 자문하게 됐고 일본의 과거를 일본인이 직접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나보다 조금 나이가 든 여자는 ‘그 짓’을 거절하다 장교와 심하게 싸우기도 했어요. 이 벌거벗은 여자는 성기에 권총을 맞고 죽었습니다.”(황금주 할머니)
“아직도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합니다. 어떤 광경이 너무도 생생하게 되살아나서 울면서 깨는 일도 많아요. 랑군에서 자살한 여자의 시체를 태울 때입니다. 잘 타도록 막대기로 쑤셨는데 시체에서 기름이 흘러나왔어요. 귀국해서 2년 정도는 불고기를 먹지 못했지요.”(문옥주 할머니)
“여자 두 명이 병사를 상대하는 걸 거부했어요. 병사들은 우리를 불러 모으더니 두 여자를 높은 나무에 매달았어요. 그들은 병사에게 ‘개 같은 너희들의 말 따위는 듣지 않겠다’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놈들은 칼로 여자들의 유방을 도려내고 머리를 잘라 끓는 물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에게 마시라고 강요했습니다. 거부하면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마셨습니다.”(리복녀 할머니)
일본 정부가 ‘강제로 동원한 증거가 없다’고 사실을 은폐할 때마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내 존재가 가장 확실한 증거가 아니냐”며 반박했다. 책은 그렇게 구체적인 기억을 증거 삼아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한다.
저자는 심미자 할머니를 인터뷰하면서 “지금 이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되받을 때마다 “가담하지 않았지만, 가해에 대한 일본인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지난 2015년 12월 28일 발표된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한일합의는 일본 정부가 10억 엔을 출연하고 한국정부가 이것을 피해 여성과 유족에게 지급하는 재단을 설립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해 7월 28일 발족한 ‘화해치유재단’은 돈을 지급할 때 아베 총리의 사죄 편지를 첨부하도록 요청했지만, 아베 총리는 “털끝만치도 생각이 없다”고 거부했다. 한일합의에 반대하는 평화의 소녀상 설치는 그런 일본의 문제의식에 대한 ‘소리없는 아우성’이었다.
피해자 대부분이 사망하면서 가해의 역사는 갈수록 왜곡되고, 피해의 증언은 희미해지고 있다. 저자는 “성노예 피해자 문제는 오래전에 끝나야 하는 문제였다”며 “가해의 역사가 왜곡되지 않도록 일본의 만행을 널리 알리는 저널리스트의 의무는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기억하겠습니다=이토 다카시 지음. 안해룡·이은 옮김. 알마 펴냄. 332쪽/2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