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 ICT 거버넌스 '전문성'

머니투데이 진행=성연광 정보미디어과학부장. 정리=류준영 기자, 사진=김휘선 기자 2017.04.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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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좌담회]'4차 산업혁명 시대, 바람직한 ICT 거버넌스는…'컨트롤타워'→'플랫폼 부처' 돼야

인공지능(AI) 기술로 대표되는 4차 산업 혁명 시대가 코앞에 닥쳤다. 산업·경제는 물론 사회·문화에 패러다임 변화가 불가피해지고 있다. 차기 정부에선 행정체계와 정부 역할 역시 전면적인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과거 정보화 시대 ‘IT코리아 신화’를 이뤘던 것처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정부 조직과 정책 방향은 어떤 것일까.



머니투데이는 지난달 23일 본사 회의실에서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도서관장), 이봉규 연세대 정보대학원장(방송통신정책연구소장),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사회과학데이터연구혁신센터소장) 등 ICT정책연구회 소속 전문가들과 함께 ‘4차 산업혁명 시대, 바람직한 ICT·과학 거버넌스’라는 주제로 전문가 좌담회를 진행했다.

[참석자]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도서관장)/이봉규 연세대 정보대학원장(방송통신정책연구소장)/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사회과학데이터연구혁신센터소장), 진행=성연광 정보미디어과학부장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사진=김휘선 기자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사진=김휘선 기자


◇4차 산업혁명발 국제·시장 변화 급물살…“준비 덜 됐다” 한목소리

-‘4차 산업혁명’이 오는 5월 19대 대통령선거 어젠다의 한 축이 됐다. 유력 후보자들이 앞다퉈 4차 산업혁명에 무게를 두고 차기 비전을 말하지만 현실적인 상황은 녹록지 않다. 중국이 4차 산업혁명분야에 앞서 나가면서 자칫 한국이 ‘샌드위치 신세’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을 어떻게 보고 있나.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이하 김) 우리 경제는 ICT(정보통신기술)산업에 수출 드라이브를 거는 형태로 성장했다. 하지만 최근 이 성공공식이 깨졌다. 3~4%대로 예측한 경제성장률은 실제론 2%대, 국민소득은 2만7000달러로 답보 상태다. 실업률은 최고치에 근접했다. 무엇보다 우리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 흐름을 타지 못하고 있다. 경제는 물론 사회 전반을 고려할 때 국가 위기상황이다.


▶(이봉규 연세대 정보대학원장, 이하 이) 소비자 맞춤형 제품·서비스가 중요해지고 로봇이 제조현장에 투입되면서 제조기반이 선진국으로 다시 이동하는 ‘리쇼어링’이 미국, 독일 등에서 나타나고 있다. 성장하는데 일자리는 없는 이른바 ‘고용없는 성장’이나 ‘디커플링’(탈동조화) 문제가 심화하고 비정형적인 노동 플랫폼 기반의 대중노동(crowd work)도 늘고 있다. 라이프 스타일이 바뀌면서 에어비앤비, 우버와 같은 공유경제 서비스 확대로 기존 산업과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특히 사생활 침해를 포함한 다양한 지능정보사회의 역기능, 가령 구글의 자율주행차 사례에서 본 윤리문제, 로봇에 대한 세금부과 이슈 등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우리는 지금 이런 변화에 대한 체계적인 준비나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하 조) 그간 우리나라는 자동차·조선·반도체·휴대폰분야를 이끌며 성장정책 기조를 유지해왔다. 그렇다면 다음 성장 아이템은 뭘까. 고민의 실마리는 4차 산업혁명 화두에 담겨 있다. 4차 산업혁명이 가능하려면 기술발전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선 통신망뿐만 아니라 여러 소프트웨어적인 발전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이 대목에서 국가가 지금까지 운영해온 산업 정책기조를 유지하는 게 옳은가 고민하게 된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이하 윤) 4차 산업혁명은 전세계 주요 국가들이 당면한 새 기회다. 이 기회를 우리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위기가 올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총체적인 삶의 변화를 의미한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가급적 빨리 4차 산업혁명 기류에 올라타야 하고 가능하면 주도해야 한다. 문제는 정치 급변 속에서 많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다. 4차 산업혁명이란 명제가 당리당략에 의해 재단되고 정부부처 개편도 국가적 차원보다는 정치적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사진=김휘선 기자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사진=김휘선 기자
◇“정치적 정부조직 개편 경계해야”…‘전문성’ 갖춘 전담부처가 맡아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할 핵심 동력이 ICT·과학기술이다. 그러나 관련 거버넌스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매번 개편됐다. 5월 대선을 앞두고 또다시 정부 조직개편의 핵으로 거론된다. 바람직한 조직개편과 정부의 역할에 대해 말해달라.

▶(김) 4차 산업혁명 시대 ICT·과학은 선택이 아닌 필수과목이다. 우리는 ICT 영역에서도 일정 부분에서만 잘해왔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선수(기업)도 부족하다. 4차 산업혁명 환경에 적응하면서 일정한 우리 몫을 차지하려면 판을 바꿔야 한다. 제도가 발목을 잡거나 제도가 바뀌지 않아서 진도가 나가지 못한 경우도 있다. 지금의 정부와 판이하게 다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정부 조직 개편의 완성도가 높았다면 조직이란 하드웨어는 그대로 두고, 그 안에 일할 사람들만 새롭게 채웠을 것이다. 항상 불안정한 통합 또는 분리돼온 탓에 조직 개편 얘기가 나오는 것 아닌가.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번만큼은 완성도 높은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ICT·과학 관련 정부조직이 일관성 없이 개편되고 정책 추진체계가 분산되면서 정부정책의 효율성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평가다. 역동적으로 끌고 나가야 할 시간에 1~2년을 긴장과 갈등으로 소비하곤 한다. 이런 형태는 반드시 지양돼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정부의 정책적 시장 개입 근거가 설령 시장 정책이 실패했거나 인프라, 역량, 제도, 네트워크 실패의 경우에도 확대 적용돼야 한다고 본다. 5G(세대) 이동통신이나 자율주행차 분야 등은 정부주도의 선도자(First Mover) 전략을, 나머지 분야는 민간주도의 빠른 추격자(Fast Follow) 전략을 병행하는 것도 필요하다.

▶(조)4차 산업혁명은 국민의 전 생활분야와 관련이 깊다. 기술육성 측면에서 본다면 국제 기술과 서비스 표준을 아우를 수 있는 다층적 접근이 필요하다. 차기 정부에선 ICT·과학기술을 한 부처가 전담해서 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실 전 세계 어느 곳과 비교해봐도 ICT·과학분야를 맡고 있는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기술에 대한 이해도는 뛰어나다. 4차 산업혁명은 관료들의 전문성이 중요하다. 때문에 지금까지 ICT와 과학분야의 맥을 잡아온 전문 관료들에게 맡는 게 맞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전담부처가) 어떤 역할을 할 지다. 규제적 관점에서 벗어나 코디네이터 역할을 어떻게 할 지가 고려돼야 한다. 다만, 국가 발전을 위해 그들이 갖고 있는 전문성을 투입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 지도 되묻고 싶다.

▶(이)차기 정부는 ICT에 대한 정부조직은 ‘C·P·N·D’(콘텐츠·플랫폼·네트워크·디바이스) 구조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디바이스 분야에선 글로벌 경쟁력이 있지만 나머진 내수시장에 만족하는 정도다. 디바이스마저 중국의 맹추격에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4차 산업혁명을 맞아 플랫폼의 선두주자가 인터넷이나 모바일 플랫폼 사업자에서 자동차와 안경 고글 제조사로 바뀔 수도 있다.. 여기에 부합하는 콘텐츠와 네트워크분야도 엄청난 변화가 수반될 것이다. 바람직한 정부조직은 지금까지 산재한 정책 및 규제 추진체계가 아닌 C·P·N·D 모든 분야를 효율적으로 아우르는 지속적인 조직이 돼야 할 것이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사진=김휘선 기자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사진=김휘선 기자
▶(김) ‘컨트롤타워’란 말을 이젠 안 쓰면 좋겠다. 더이상 정부가 주연을 할 수 없고 해서도 안된다. 조연·심판 역할 정도로 낮춰야 한다. 컨트롤타워는 구시대적 용어다. 앞으로는 ‘플랫폼 부처’가 돼야 한다. 산업관련 부처 중 하나(One of Them)가 아닌, 모든 부처를 아우르고 기반이 되는 4차 산업혁명 전담 플랫폼 부처로 바뀌어야 한다. 농업, 금융 등 각 분야가 수평하게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모든 부처를 지원하는 코디네이터 역할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종’(縱)보단 ‘횡’(橫)으로 가는 부처를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윤)4차 산업 혁명의 병목은 기술보다는 제도일 가능성이 8~9할이다. 이 때문에 기존 제도를 살펴보고 새로운 기술 발전에 부응하는 새 제도 발전을 준비하는 작업이 관건이다. 로봇 등을 통한 육아나 간병 등을 예로 들어보자. 영유아 보호법상 관련 기관에는 CCTV(폐쇄회로TV)를 설치하게 돼 있다. 로봇이 육아를 대신하는 상황에선 불필요한 것이다. 기존의 영유아보호법, 노인요양보호법 등 이런 것이 다 장벽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논의가 핵심이다.

▶(조)조직도 중요하지만 운영 방식이 더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기업과 사회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정부, 시민 사회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메타거버넌스(Meta-Governance)적인 운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기업, 소비자, 국제사회와 협의채널을 더 많이 가져가야 한다. 사실 이제껏 정부가 운영하는 것 중에는 무늬만 위원회, 무늬만 공청회인 것이 많다. 전문가 의견이 얼마나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운영방식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한 이유다.

▶(윤)차기 ICT 정부조직이 정치에 휘말리는 일을 최소화돼야 한다. 이건 정치 영역이 아니다. 합리성·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조직 형태로 가는 게 타당하다. 적어도 여야가 합의를 절충하는 형태는 피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이 정책을 맡을 실질적인 일선 관료들은 정치적 결론에 휘둘리지 말고 정책 지속성을 담보하는 원칙이 필요하다.

◇메타 거버넌스‘ 신정부 역할론 대두…‘컨트롤타워’→‘플랫폼 부처’ 돼야

-혹시 19대 대선에서 ICT·과학기술 공약으로 반드시 고려돼야 할 사항은.
이봉규 연세대 정보대학원장/사진=김휘선 기자이봉규 연세대 정보대학원장/사진=김휘선 기자
▶(김)가장 불만스러운 건 후보들의 공약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검증이 될 것 같으니까 애매모호하게 얘기를 하고 있다. 투표일까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공약을 구체화하고 투명하게 내놔 주면 좋겠다. 그리고 정부 조직 개편에 관해선 조직 자체 보다는 운영이나 사람의 문제에 대해 더 강조해 줬으면 좋겠다.

▶(윤) 4차 산업혁명 관련해 대통령 후보 진영들이 내놓은 공약이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이 있긴 하지만 앞으로 투표 전까지 얼마나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을 수 있겠나.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정부조직 개편은 이 일을 서두르면 안된다. 누가 당선되든지 간에 당선 첫날 청사진을 내놓는 일이 없길 바란다.(대선 출마 후보들이) 준비가 안 돼 있다는 것을 우린 너무 잘 알고 있다. 공약으로 보고 싶은 게 있다면 4차 산업혁명 제도와 정책을 연구할 싱크탱크 조직을 만들자는 제안이다. 이런 기관을 6개월 정도 운영하면 차기 정권의 시행착오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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