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왼쪽 세번째)이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대국민 사과와 혁신안 발표에 앞서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우선 130여년 역사의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와의 차별점이 애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전경련은 대기업(회원사 약 500개사)을, 대한상의는 대·중소기업(17만여개사)을 망라한 단체의 특성상 같은 경제단체면서도 현안에 대한 입장이 사뭇 달랐다.
기업 입장에선 비슷한 성격의 단체 2곳에 굳이 회비를 이중납부해야 할 상황이 된 셈이다. 재계 일각에서 먼저 전경련 무용론이 나오는 이유다. 한 중견그룹 관계자는 "다다익선이라면 모를까 전경련과 대한상의의 차이점을 체감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조직 위상이 심각하게 훼손된 데다 대대적인 조직 축소까지 공언한 상황에서 재계 대표성을 회복할 방법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 주관 회의는 물론, 민간 행사에서도 전경련이 명함을 내밀기 쉽지 않다.
그나마 내세울 부분이 수십년 동안 쌓아온 민간경제외교 네트워크지만 5월 대선 이후 새 정부에서 전경련이 경제사절단 역할을 맡을 수 있겠냐는 얘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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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주한미국상의와 주한유럽상의 등을 신규 회원사로 들인 걸 보면 국제협력업무를 강화하겠다는 것 같은데 해외에서 파트너로 인정해줄지 의문"이라며 "차기 정부에서 대통령 순방에나 동행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정경유착 근절 선언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도 넘어야 할 산이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과 보수단체 어버이연합 지원을 주도한 사회본부를 폐지하겠다고 밝혔지만 미봉책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과 2002년 대선자금 사건 당시 뒤따랐던 대대적인 조직개편과 쇄신선언도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과의 통합 등 싱크탱크 전환을 통한 발전적 해체론이 끊이지 않는 게 이런 전력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정경유착이라는 게 공식적으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은밀한 뒷거래로 진행되는 건데 이 정도 시스템 개편으로 해소할 수 있다는 말을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고 말했다.
내부적으로는 인력 구조조정도 쉽지 않은 문제다. 연간 회비의 70% 이상을 담당했던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이 탈퇴하면서 그동안 사용하던 서울 여의도 회관 4개층 중 2개층을 비워 외부에 임대하기로 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기로 했지만 추가 인력조정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권태신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지난 27일 임직원과의 간담회에서 1998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을 언급하면서 "10명 중 3명은 조직을 떠나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직원 사이에선 임원진이 져야 할 책임을 아래 직원들에게 떠넘기는 게 아니냐는 반발 기류도 엿보인다. 전경련 한 직원은 "희망퇴직 등 여러 가지 방안이 나올 수 있지만 구조조정이라는 게 한 집안의 가장이자 가족 구성원들의 생계가 걸린 일이고 쉽게 진행할 수 있는 건 아니잖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