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선마다 단일화 시도= 1987년 13대 대선 때 단일화가 시도된다. 김영삼(YS)와 김대중(DJ)의 양김 단일화다. 결과는 실패다. 당시 여당이던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는 ‘어부지리’ 승리를 거뒀다. 군사독재를 끝내고 민주정권을 탄생시켜야 한다는 국민적 열망은 좌절됐다. 이는 이후 진보진영의 ‘단일화’ 시도에 트라우마처럼 작용한다.
‘후보 단일화’의 드라마는 2002년 16대 대선에서 선보인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강한 대세론을 구축한 상태였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21의 정몽준 후보는 대선후보 등록 직전인 11월25일 단일화에 성공했다. 역사상 처음 여론조사 방식을 택한 단일화였다. 하지만 정 후보가 대선을 하루 앞둔 12월 18일, 단일화 공조를 파기하며 반전이 일어나는데 노 후보에 대한 ‘동정론’이 일며 드라마가 완성된다. 실제 득표는 노 후보가 1201만여표, 이 후보는 1144만여 표였다. 57만여 표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19대 대선 흐름은 과거와 사뭇 다르다. 진보 진영은 여유가 있다. 반면 보수 진영은 후보를 만들어내는 것도 버겁다. 하지만 승부는 예단할 수 없다. 사실 진영 논리로 보면 다시 ‘5대5’의 승부를 점칠 수밖에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지만 보수가 희망을 품는 마지막 지점도 여기다.
현 흐름상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국민의당 안철수, 자유한국당 홍준표, 바른정당 유승민, 정의당 심상정 후보 등 5자 구도다. 이중 ‘완주’가 확실한 이는 문 후보와 심 후보 정도다. 중도‧보수는 연대 또는 단일화 얘기가 계속 나온다. 과거 보수에 맞서 중도‧진보가 단일화를 시도했다면 이번엔 진보에 맞서 중도‧보수가 역 단일화를 꾀하는 모습이다. 지지율 쏠림 현상, 반문(반 문재인) 연대 등을 통한 자발적 또는 비자발적 단일화 가능성이 존재한다. 진보 진영의 단일화보다 여러 가정과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말이다. 단일화 성공 후 ‘문재인 대 반 문재인’ 구도는 ‘진보 대 보수’의 변형이자 ‘51대 49’의 재현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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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지형의 변화 '세대간 투표율' 변수 =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당선자를 맞추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투표율 맞추기'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세대별 투표율을 가늠하기 어렵다. 그만큼 세대간 숨은 투표율이 선거 결과를 좌우한다. 더구나 고령층의 증가로 유권자의 투표율에도 변화가 생겼다.
2012년도 대통령 선거 때까지는 40대가 중추적 역할을 했다. 2002년도에는 전체 인구에서 20대와 30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48.3%였다. 50대, 60대는 29.2%밖에 안 됐다. 하지만 2012년으로 가면 거꾸로 역전된다. 2030과 5060 선거인수와 투표인수를 다 합하면 5060이 10%포인트 더 많다. 18대 대선에서 20대와 30대의 투표율은 각각 68.5%와 70%인 반면, 50대와 60대의 투표율은 90%와 79%였다.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50대의 투표율이 무려 82%에 달했다.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주도한 게 50대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이번 대선도 결국 투표율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대통령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2030세대의 투표의지는 90%를 넘고 있는 반면, 5060세대는 80%를 밑돌고 있다. 추세적으로도 2030의 투표율이 높아지는 게 확인된다. 2007년도 대통령 선거에서는 20대의 투표율이 46.6% 인데 2012년에는 68.5%였다. 30대는 2007년도 55.1%에서 2012년에 70%로 투표율이 크게 올랐다.
[인포그래픽]역대 대선결과
우리나라 역사에서 첫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된 것은 1967년 제3대 대선이다. 여당 후보로는 현직인 이승만 대통령이 나섰고 무소속 조봉암, 신민당 신익희 후보가 이에 맞섰다. 3대 대선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야가 맞붙은 대선으로도 평가된다. 민주당은 ‘못살겠다 갈아보자’며 정권교체를 외쳤고 여당인 자유당은 ‘구관이 명관이다’로 맞섰다. 그러나 신 후보가 선거유세 도중 급서하는 바람에 정권교체는 실현되지 못했다. 4대 대통령선거 역시 이승만 대통령이 ‘어부지리’로 승리를 거뒀다. ‘죽나 사나 결판내자’라는 결연한 슬로건을 걸고 출마한 조병옥 민주당 후보는 대선을 한달여 앞두고 신병치료차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때문에 이승만 대통령은 선거도 치르지 않고 당선이 확정됐다.
제5대 대선과 제6대 대선에선 '근대화'라는 시대정신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였다.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후보는 ‘혁명과업 완수, 조국 근대화’라는 구호를 내세웠고 민정당 윤보선 후보는 ‘군정으로 병든 나라 민정으로 바로잡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 선택은 ‘근대화’였다. 1971년 제7대 대선에선 민주공화당 박정희와 신민당의 김대중 후보가 맞붙었다. 신민당은 ‘10년 세도 썩은 정치, 못살겠다 갈아치자’는 슬로건을 내걸었고 장기 집권에 실증을 느낀 국민들의 마음도 조금씩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는 김대중 후보를 불과 94만6000여표 차이로 간신히 이겼다. 박정희 대통령은 당선된지 1년7개월만에 직선제를 폐지하고 10월유신을 선포했다.
군사독재의 기나긴 터널을 지나 직선제가 다시 실시된 것은 1987년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6·29선언으로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다. 당시 대선의 시대정신은 ‘민주화’였다. 국민들은 군사정권 종식’을 염원했지만 대선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야권 성향의 김영삼, 김대중 후보가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표가 분산돼 결국 군부 출신의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1997년 제 15대 대선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진 선거였다. ‘깨끗한 정치 튼튼한 경제’를 내세운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와, ‘준비된 대통령’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가 맞붙었다. 신한국당을 뛰쳐나온 이인제 후보와 국민승리 21의 권영길 후보도 대선에 출마했다. IMF 사태이후 국민들은 변화를 원했다. 여기에 이인제 후보가 표를 분산해주면서 김대중 후보가 승리를 거뒀다.
2002년 9월 당시 대선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노무현 민주당 후보, 정몽준 무소속 후보의 3파전이었다. 이회창 후보와 정몽준 후보가 1위자리를 놓고 경합하고 있었고 노무현 후보는 3위로 추격하던 상황이었다. 판세를 뒤집은 건 11월말 노무현-정몽준의 후보단일화였다. 노 후보는 정 후보의 지지층 상당부분을 흡수해 단일화 효과를 톡톡히 봤고 대선에 승리했다.
2007년 대선은 역대 대선 중 가장 싱겁게 승부가 갈렸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내세운 ‘실천하는 경제대통령’의 슬로건은 국민의 마음을 흔들었고 대선 당일까지 단 한 번의 역전을 허용하지 않은 채 48.7%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2012년 대선은 '박정희 vs 노무현'의 대리전 양상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근대화 향수와 함께 '퍼스트 레이디를 경험해본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점이 국민의 마음을 파고들어 박근혜 후보가 당선됐다.
정치원로 박찬종 "이번 대선, 제2 박근혜정부 가능성 있어"
5선 국회의원을 지내고 제14대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던 정치권의 원로 박찬종 전 의원(78)은 현 시대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정치9단 3김(金)씨에 맞섰던 박 전 의원은 현 정국을 가장 예리하게 분석하는 정치평론가 중 하나로 꼽힌다. 사법·행정고시를 모두 합격하고 공인회계사 시험에도 합격한 이력이 말해주듯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분야에 능통하다.
이런 박 전 의원은 이번 대선 정국을 보면서 '국민의 불행'을 이야기 했다. 그는 "지난 대선이 주는 교훈은 후보검증의 한계"라며 "정책은 남이 써주는대로하니 후보들간에 전부 비슷해졌고 인격과 직무수행능력을 검증해야하는데 지역주의가 작동하면서 분위기가 휩쓸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대선역시 정권교체라는 바람을 타고 후보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제2의 박근혜정부가 나올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대로된 후보검증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대통령 탄핵사태같은 현대사의 비극이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특히 "이번 선거의 시대정신이 부패종식과 정치개혁"이라며 "지금 출마한 후보들 중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해 제대로 공약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적폐청산’을 주장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부패청산을 얘기하지 않아 국민이 불행해 질 것이라는 그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문재인의 적폐청산은 무엇이 적폐이고 무엇을 어떻게 청산하겠다는 것인지 말하고 있지 않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대선후보들 모두 부패종식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수행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라고 했다. 또 "문재인은 자기가 모시던 노무현 전 대통령 때문에 부패추방을 세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안희정은 정치자금수수법으로 감옥에 갔다왔다"며 "이재명은 이 부분에 있어 큰소리치는데 당선가능성이 없으니 그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당 홍준표는 정치자금법 위반죄인데 대법원 판결도 받기 전에 대선출마하는 것 자체가 웃긴상황"이라며 "유승민은 유약하다"고 평가했다.
결국 시대가 요구하는 '부패청산'과 '정치개혁'을 선점한 이들이 대선정국을 주도하고 있지만 제대로된 검증 없이는 국민들이 또 속을 수 있다는 게 박 전 의원의 생각이다. 그가 말하는 부패추방, 정치개혁은 검찰개혁, 중앙당 해체, 기초자치단체 폐지 등이다.
박 전 의원은 "국민이 스스로 손발을 묶은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패청산, 정치개혁이 추동력을 얻으려면 국민들도 지역주의에서 벗어나 그것에 주목해줘야 하는데 여전히 '우리가 남이가'식으로 묻지마 투표를 한다"고 비판했다.
박 전 의원은 이번 선거 국면이 "정권교체라는 화두를 타고 박근혜 지지세력에서 문재인 지지세력으로 교체되야한다는 목소리가 압도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라며 "그러나 부패청산·정치개혁을 내세우며 국민에게 감동을 준고 지지세를 모은다면 결과는 알수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후보단일화·연대의 성공조건은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이번 대선이 문재인, 안철수, 홍준표, 유승민 구도로 가겠지만 (연대를 통해) 51대 49의 구도가 재현될 가능성도 아주 없지는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