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국민연금에 경고함

머니투데이 박준식 기자 2017.03.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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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월급명세서를 보면서 화가 치밀었다. 세금과 함께 빠져나가는 국민연금 납입금을 보면 풍요한 노후보단 불안함이 엄습해서다. 경제기자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행태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니 분노가 차오르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일종의 미필적 직업병이다.

일단 기금운용본부를 총괄하는 사령탑 인사에 번번이 실망했다. 2013년말 하나금융그룹에서 퇴임해 사실상 1년 이상의 취업공백이 있던 홍완선씨를 본부장에 앉혔을 때가 대표적이다. 나중에 그가 정권의 실세이자 아직도 친박(친박근혜) 좌장인 최경환 국회의원의 고교 절친이었다는 걸 알고 씁쓸했다.



소란이 잦아들고 2015년 말에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뜬금없이 산하 국민연금 이사장으로 하향(?) 임명됐다. 두 달 넘게 공석이던 기금운용본부장 자리에는 이듬해 2월 강면욱 메리츠자산운용 전 고문이 선택됐다.

십수 명의 쟁쟁한 지원자가 나섰다는데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잘 알지 못하는, 역시나 2년 공백이 있던 인물이 들어섰다. 다시 따져보니 그는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의 대구 계성고, 성균관대 1년 후배로 가까운 사이였단다.



최근 다시 부아가 치밀 이슈가 생겼다. 국민연금이 4000억원쯤 투자해둔 대우조선해양 회사채에 조기상환 청구를 할 수도 있었는데 이를 KDB산업은행의 요구로 행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채권자인 국민연금은 대우조선이 약정한 부채비율이 초과한 것을 이유로 채권 원리금 상환이 가능했는데 이를 두고 본 셈이다.

금융위원회와 그 산하인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은 지금 국민연금을 두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있다. 대우조선 회사채 1조3500억원과 기업어음 2000억원을 가진 채권자들에 고통을 분담해달라며 절반은 상환유예를, 절반은 주식전환을 바라는 것이다. 그것이 불가하다면 법정관리(P플랜) 형태로 90%의 원금을 날릴 수도 있다고 벼랑 끝 전술을 쓰고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이 선택 이전에 대우조선 회사채를 인수할 당시 이 회사에 분식회계 이슈가 있던 터라 소송으로 투자액 상환이 가능하다. 이 권리를 포기하면서 동시에 사채권자 집회에서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는 주식전환을 용인한다면 국민의 노후자금으로 대우조선의 도덕적 해이를 막아주는 꼴인 셈이다.


지금 아이러니한 문제는 RG(선수금환급보증) 등을 포함해 무려 57조원의 뇌관을 만들어놓은 금융위-산은-수은-대우조선이 이를 무기로 민간은행 금융사들과 국민연금을 겁박하는 것이다. 책임은 대우조선뿐만 아니라 동일인 여신한도를 어긴 국책은행과 그를 부실하게 감독한 공직자들에게 있다. 이들이 오히려 국가 경제를 운운하며 당당히 국민들의 노후자금에 양보하라니 기가 막힐 뿐이다.

대우조선 문제는 현재진행형이고 앞으로 국민연금이 어떻게 이런 이슈를 감당할지 판단할 만한 시금석이다. 회사채 투자원리금 4000억원을 어떻게 회수할지 두 눈으로 감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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