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주식고수의 조언…"좋은주식 헐값이면 몰빵"

머니투데이 오정은 기자 2017.03.2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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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재야고수 시리즈 인터뷰(2)]'밸류타이머' 신진오 밸류리더스 회장

신진오 밸류리더스 회장 신진오 밸류리더스 회장


"일본이 2차대전 당시 진주만을 공격했습니다. 당일 일본 증시는 하한가를 맞습니다. 이날 한 증권사에서 하한가 주식을 대거 매입했고, 거래소는 문을 닫습니다. 패전 후 증시가 개장하자 주식이 폭등했고 하한가에 주식을 매집했던 증권사는 돈을 벌어 최고의 증권사가 되었는데 바로 노무라입니다."

2003년 마흔다섯에 홀연히 회사를 그만두고 재야로 들어가 주식 고수가 된 신진오 밸류리더스 회장의 투자철학은 단순하다. 좋은 주식이 싼값이 되면 '몰빵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좋은 주식은 태평성대에는 절대로 싼 값에 거래되지 않는다. 오직 위기가 도래했을 때만 헐값에 출회되며 도매급으로 하락한다. 그는 "특정한 사건으로 좋은 주식이 급락한다면 '인정사정없이 주식을 사라"고 강조했다.



◇엉덩이 깔고 앉으면 시장 이긴다=신 회장은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신영증권 주식운용팀장으로 재직했다. 1998년 외환위기 때 코스피 350포인트 수준에서 핵심 블루칩을 대량 매집, 1000포인트 이상에서 매도해 회사 수익에 크게 기여했다. 공을 바탕으로 임원이 됐지만 2003년 회사를 그만두고 '밸류타이머'라는 필명으로 재야 주식고수로 활동해왔다. 그는 자산규모와 투자 수익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가치투자의 고수'로 정평이 나 있다.

필명인 밸류타이머는 '핵심 우량주를 보유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유리해진다'는 뜻이다. 좋은 주식이 싼값이면 몰빵하겠지만 태평성대에는 싼값에 좋은 매물이 별로 없기 때문에 엉덩이 깔고 앉아서 오랜 세월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강세장이 온 다음 주식을 사는 것이 아니라 강세장 전에 좋은 주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철학이다.



신 회장은 대형주를 ETF(상장지수펀드)로 깔고 전략적 가치주에 분산하는 방식으로 투자한다. ETF 안에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형주가 편입돼 있으니 지수가 급등하는 강세장이 와도 시장에서 크게 소외되지 않는다. 그는 "아무리 가치투자라고 해도 시장 위험을 방어해야 한다"며 "트레이더처럼 대형주 장세가 오면 대형주를 사고, 중소형주 장세가 오면 중소형주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둘 다 투자하되 비중을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올 들어 코스피가 2150선을 돌파했지만 삼성전자 등 대형주만 급등하면서 중소형주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의 소외가 심화됐다. 그는 "대형주 장세를 못 견뎌 중소형주를 팔고 대형주로 갈아탄다면 최악"이라며 "지금은 힘들어도 대형주 장세가 지나고 나면 또다시 수익 기회가 오기 때문에 어떤 장세에서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도권 16년, 재야 14년=1987년부터 30년간 수차례의 강세장과 약세장을 겪으며 살아남은 그는 "개인 투자자들이 자기 자신을 먼저 알고, 공부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자의 세계는 정말 평등합니다. 바둑은 프로끼리 두지만, 주식시장은 초급하고 프로가 같이 겨루는 세계입니다. 초급이 이길 가능성이 정말 적기 때문에 반드시 겸손해야 합니다. 사방이 선수인데 선수 사이에서 돈을 벌려면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공부도 하지 않고 주식시장에서 돈을 벌겠다는 사람은 무면허로 도로를 주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제도권에서 16년, 재야에서 14년을 지낸 그는 제도권에서 주식을 한다는 것과 재야에서 주식을 하는 것은 180도 다르다고 말했다. 제도권에서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주식을 운용하기 때문에 제약이 많다. 하지만 재야에서는 내 돈을 소수 종목에 투자했기 때문에 관심과 분석의 깊이가 차원이 달랐다. 신 회장은 "몇십 억원을 한 종목에 투자한 사람의 기업을 보는 안목은 어쩌다 한 번 기업탐방 다녀와서 보고서 내는 애널리스트와 같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가치 투자시 필수 덕목으로 강조되는 기업 탐방에 대해서도 "필수가 아니다"라는 이례적 견해를 제시했다. 공시 제도가 정비된 요즘은 기업 탐방에서 주식담당자를 만나도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없고 최고경영자(CEO)를 만나는 것은 투자에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CEO들은 자수성가한 신념에 찬 사람들이므로 만난 지 30분만 지나도 설득당하게 된다"며 "이는 사이비 종교를 믿으러 찾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투자 경험이 적은 투자자는 기업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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