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예술인들의 142일, 만든 이들은…

머니투데이 구유나 기자 2017.03.28 16:18
글자크기

[기자수첩]

"광화문 천막은 철거하지만 이제 다시 시작합니다."

문화예술인들에게 2016년에서 2017년으로 이어지는 이번 겨울은 특별했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지난해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지원배제명단)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예술가들은 공분했다. 지난해 11월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88개 문화예술단체 소속 예술가 7449명이 참여한 가운데 시국선언이 이뤄졌다. 역대 최대 규모였다. 이튿날 광장에는 텐트가 세워졌다. 다양한 작가들의 설치작품이 들어왔고 '광장극장 블랙텐트'를 중심으로 공연이 열렸다.

광화문 캠핑촌은 직접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운영됐다. 매일 오전 9시에는 캠핑촌에서 노숙하는 예술인 및 노동자 10여명이 모여 '촌민 회의'를 진행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공개토론회를 통해 더 많은 의견을 모았다. 오후에는 공연을 찾는 관객들을 맞았다. 공연에 참여한 한 연출가는 "더 많은 예술인이 직접 참여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면서도 "다시 가능할까 싶은 문화예술인간의 연대 경험이었다"고 평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이후 캠핑촌은 철거 절차에 돌입했다. 지난주를 기점으로 텐트와 전시물이 모두 철거됐다. 예술인들은 철거 당일까지 '블랙텐트 정신'의 계승을 강조하며 "끝이지만 끝이 아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들은 대학로 소극장 등으로 자리를 옮겨 향후 연대 방안과 블랙리스트 관련자 처벌을 비롯한 해결책을 논의하고 있다.

반면 예술인들의 142일이 바쁘게 지날 동안 블랙리스트 관련 기관들은 몇 걸음 못 떼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 중 유일하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정도가 사과문과 후속대책을 발표한 게 고작이다.



문체부는 탄핵심판일 하루 전날 '블랙리스트 후속대책 간담회'를 열었지만 큰 진전은 없었다. 핵심인 '재발방지법' 발의계획에는 처벌방법과 실행 주체가 들어있지 않았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일단은 밑그림으로만 봐달라"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명단길이로만 수십장에 달할 정도로 수백, 수천명에게 딱지를 붙일 때는 그렇게 재빨랐던 그들이 자정과 진상규명의 조항 한 줄을 만들 때는 한없이 굼뜨다. 사퇴요구를 받는 이들의 거취 표명도 그 첫걸음일 수 있다.

블랙리스트 예술인들의 142일, 만든 이들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