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창 생보협회장/사진=머니투데이DB
노후파산이란 의식주 모든 면에서 자립 능력을 상실한 노인의 비참한 삶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은퇴 이후 빠듯한 수입에 갑작스러운 병치레로 인한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의 늪에 빠지는 것이 전형적인 패턴이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빈곤율은 49.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부부 기준 적정 노후생활비는 237만원, 최소 생활비는 174만원 수준이다. 국민연금 월평균 수급액은 35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국민연금만으로는 기초적인 생활조차 쉽지 않다는 얘기다. 개인 차원의 노후준비가 불가피하지만 여전히 노인의 절반 이상은 공적연금은 물론 아무런 대책 없이 노후를 맞고 있다.
늘어나는 수명만큼 길어지는 병치레 기간도 부담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82.4세, 유병 기간을 제외한 기대수명 즉 건강수명은 66세다. 평균적으로 16년 이상 병들고 아픈 시간을 보낸다는 뜻이다.
노후의료비 역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2016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진료비는 25조187억원으로 전체 진료비의 38.7%다. 최근 5년 동안 63.6% 이상 증가했다. 특히 70세 이상 1인당 진료비는 연간 428만원이 넘는다. 평균 1인당 진료비의 3.4배에 달한다.
더 큰 문제는 빠르게 늘어나는 의료비를 국가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정부의 '2016~2020년 8대 사회보험 중기재정추계 결과'에 따르면 공적 건강보험은 내년이면 적자로 전환되고 2023년이면 적립금이 완전히 고갈될 것으로 예측된다. 급증하는 의료비 부담에 대해 국가와 개인이 책임을 나누는 노력 없이 현행 체계의 사회안전망은 지속 불가능하다.
세계정책연구소(World Policy Institute) 전 소장인 미셸 부커는 뻔히 보이지만 사람들이 간과하는 거대한 위험을 '회색 코뿔소'(Grey Rhino)에 비유했다. 눈앞에 달려오는 코뿔소를 보고도 두려움에 못 본 체하거나 적절히 대처하지 않아서 맞이하는 엄청난 위기를 경고한 말이다.
소위 '유병장수' 시대에 회색 코뿔소가 보내는 경고신호에 귀 기울여야 한다. 길어진 노후에 대비해 현재의 소비를 줄이고 노후자금을 쌓는 노력이 중요하다. 매월 일정금액을 지급 받는 연금은 빈고를 막는 가장 안전한 소득보장 수단이다.
특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도 나이가 들면서 더해지는 질병의 고통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병고는 빈고를 악화시키고 빈고는 병고를 가중시킨다. 근본적인 노후생활의 안정을 위해 노후의료비에 대한 준비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민영 건강보험은 소득이 부족한 노년기의 의료·간병비용을 보장해주는 유일한 대비책이다.
누구나 아름답고 행복한 노년을 꿈꿀 수 있지만 아무나 행복수명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준비되지 않은 노후는 '사고(四苦)'다. 사고는 미리 대비하면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