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성’에 집착 말고, ‘모호함’을 견뎌라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7.03.25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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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새책] ‘난센스’…불확실한 미래를 통제하는 법

‘확실성’에 집착 말고, ‘모호함’을 견뎌라


1970년 미디스커트의 유행을 예감한 의류 제조업체가 엄청난 재고를 준비했고, 투자자는 수백만 달러를 쏟아부었다. 예상은 빗나갔다. 승리는 미니스커트에 돌아갔다. 보수적인 시대 상황, 언론의 편들기, 전통 디자이너들의 단결에도 미니스커트의 유입은 막을 수 없었다.

미니스커트인가, 미디스커트인가. 예측하기 힘든 복잡하고 모호한 상황에서 인간이 쉽게 끌리는 욕구는 빨리 결정하는 것이다. 어떻게? 자신이 지금껏 알아왔던 믿음에 기대는 것이다. 정보가 방대할수록 사고를 단순화해 닥친 대상에 적용하는 이론을 만든 뒤 그에 따르는 일은 인간의 보편적 심리이기도 하다.



어떤 주제에 대한 확실한 대답, 즉 혼란과 모호성을 없애주는 답변을 원하는 욕구를 심리학에서 종결욕구라고 부른다. 혼란은 불편함을 야기하기 때문에 이해가 가지 않으면 마음을 닫고 비정상적인 것을 배제하려는 특징이 있다. 불편한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은 욕구인 셈이다. 종결욕구가 강하면 최선이라고 할 수 없는 첫 번째 해답을 고수하는 오류에도 쉽게 빠진다.

‘스커트 예측’ 40년이 지난 후, 아만시오 오르테가 가오나는 일찌감치 수요를 예측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 패션계에서 흔히 그렇듯, 유행을 예감하고 미리 준비하는 확실성으로 마음을 안정시키는 일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의류를 생선처럼 부패하기 쉬운 상품으로 보고 “다섯 손가락을 공장에, 나머지 다섯 손가락을 고객 쪽에 두는 방식”에 귀 기울이며 수요에 즉각 반응했다. 재고를 쌓아두지 않고 필요한 수요에 맞춰 생산했으며 부족한 공급은 다른 스타일로 변형해 몇 주안에 내놓았다.

소량 생산과 빠른 회전 덕분에 오르테가 매장은 트렌드에 보다 유연하게 대처했고, 안 팔리는 제품에 대한 위험도 적었다. ‘패스트 패션’의 선구자 ‘자라’(ZARA) 얘기다.

자라의 성공에는 가까운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오르테가가 노골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빅데이터가 있어도 수요자의 반응을 예측하기 더 어려워진 시대에 종결욕구는 최악의 선택에 종종 이른다. 가장 흔한 예로 직장에서 어려운 문제에 처했을 때 가장 빠른 종결욕구는 ‘퇴사’이고, 연애에 혼란이 가중될 땐 ‘이별’이다.


이스라엘이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에서 이집트와 시리아의 공격을 받았을 때, 무방비 상태였던 것은 두 명의 이스라엘 핵심 군부 인사가 (공격에 대한) 방대한 정보가 주는 혼란을 빨리 없애기 위해 공격 자체를 고려하지 않은 자신만의 지나친 자신감과 확신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은 이로 인해 2000명의 군사를 잃었다. 종결욕구는 때론 편견이나 선입견과도 깊이 연관된다.

언어학자 미셸 토머스는 1996년 선생님도 포기한 프랑스어 낙제생들을 대상으로 색다른 실험을 감행한다. 토머스는 가장 먼저 강의실을 새로 바꿨다. 안락의자에 쿠션, 화분으로 온화한 분위기를 조성한 뒤 수업 중 책상이나 칠판, 종이를 모두 없앴다. 학생들이 배운 걸 기억하지 못하면 그건 자신의 문제라고 했다.

토머스는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이해하며 실수를 다그치지 않았다. BBC 다큐멘터리를 통해 소개된 이 5일간의 특강으로 학생들은 프랑스를 5년 배운 것처럼 변해있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천천히, 그러나 면밀히 지켜본 결과였다.

혼란스럽고 불편한 상태인 ‘난센스’를 잘 다스리는 법으로 저자는 ‘소극적 수용력’을 제시한다. 종결욕구를 다스리고 불확실성을 통제하는 방법이다. 뛰어난 협상가들은 양면성의 역할을 잘 이해하며 서로 상충하는 정보에서 섣불리 결론 내지 않는다. 불확실하고 의심스러운 상황에서도 성급하게 사실과 이유를 추궁하지 않고 견딜 수 있는 능력, 즉 소극적 수용력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는 얘기다. 우유부단과 구별되는 이 능력은 특별한 형태의 자제력으로 통한다.

모호성을 견뎌내는 CEO의 능력은 기업의 성공과도 밀접하다. 1990년대 후반 스웨덴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모호성을 견뎌내는 능력은 뛰어난 재무 성과로도 이어졌다. 연구 결과 자신감이 높은 CEO는 고객 만족도를 다소 향상하는 효과는 나타났지만, 기업의 수익성과 생산성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저자는 “전 세계 데이터의 90%가 지난 5년 동안 생성될 정도로 우리는 정보의 바다에 빠져 있지만 정작 가장 간단한 선택조차 버거워하는 게 현실”이라며 “우리의 과제는 모호성의 뿌리 깊은 감정적 본질을 확인해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해야할 일을 파악해 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난센스=제이미 홈스 지음. 구계원 옮김. 문학동네 펴냄. 404쪽/1만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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