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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북 양계 맹주, STX 나눠 재계입성

머니투데이 박준식 기자 2017.03.15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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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김홍국, 전남의 우오현 30년 선의의 경쟁…농업서 시작 해운업 승부, 그룹 매출 10조 육박



"우리 두 사람이 모두 양계장을 키워서 장사 밑천을 마련했어요. 각자 지역에서 장사수완이 있던 터라 농업과 축산업을 기초로 사업을 크게 벌린 것이죠. 술 끊기 전까지는 서로 만나서 작게 나마 동업도 하고 같이 탁주도 마시고 그랬어요. 1978년에 헤어져서 각자 방식으로 사업해 둘 다 성공한 셈인데 아직도 의욕이 넘치니까 어느 선까지 기업을 키울지는 알 수 없네요."

김홍국 하림 (3,480원 15 -0.4%)그룹 회장이 회상한 우오현 SM그룹 회장은 전라도를 남북으로 나눠 각자 상권을 지배하던 남부의 맹주였다. 김 회장 자신은 전라북도를 기반으로 북쪽으로 충청권까지 사업을 넓히던 야망 있는 기업가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존경하면서도 한동안 사업상 크게 맞붙지 않고 자못 경계하면서 사세를 키웠다.

중간과정이 이를 대변한다. 김홍국의 수완을 눈여겨본 우오현은 지역 양계를 더 늘리지 않고 건설업으로 돌아섰다. 우오현의 수비를 지켜본 김홍국은 양계업을 북쪽으로 늘리고 사료업을 더해 업종 다각화를 이뤘다.



전라도 지역의 두 거상은 30년 만에 다시 라이벌로 조명받는다. 특히 재계 순위 10위권에 올랐다가 아쉽게 쇠락한 STX그룹의 유물을 경쟁하듯 나눠 인수하면서 해운·물류·유통업을 아우르는 그룹을 일군 모양새가 닮았다.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에서 다시 맞붙는 라이벌로 진화한 것이다.

◇양계→건설→화학→해운 : 우오현의 SM그룹= SM그룹은 14일 STX 채권단으로부터 ㈜STX (9,900원 40 -0.4%)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우오현 회장이 STX그룹의 마지막 유산이자 이 그룹의 모태가 된 무역상사기업 ㈜STX를 약 1300억원에 인수하겠다고 내놓은 제안을 매각자 채권단이 사실상 받아들인 것이다.

우오현 SM그룹 회장 /= SM그룹 제공우오현 SM그룹 회장 /= SM그룹 제공


우오현 회장은 이와 관련해 "샐러리맨신화를 일궈 재계 10위권까지 올라섰던 STX그룹의 경영 노하우를 최대한 흡수하는데 큰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건설업과 화학업에 국한하지 않고 해운과 조선, 무역 등을 아우르는 기업집단을 구성하겠다는 포부를 나타낸 것이다.

우 회장은 사실 2006년 이전까지 전남에서 삼라마이다스라는 기업명으로 주택건설업을 주로 영위하던 지역 기업가였다. 아파트 분양업으로 광주에서 수도권까지 올라왔지만 2006년 10월 인천 검단 마전지구 사업에서 미분양이 발생하자 건설 호황의 종말을 직감하고 다각화를 시작했다.

롤모델은 외환위기 당시 모기업을 인수해 기업집단을 일군 STX그룹의 강덕수 회장이었다. 우 회장이 벤치마크해 인수한 첫 M&A(인수·합병) 대상은 경남모직. 남들은 섬유업이 사양산업이라고 했지만 부가가치를 높여 옛 브랜드의 가치를 살려낼 의지가 충분했다.

우 회장은 이후 노동조합이나 의기가 꺾인 임직원들의 반발로 기업가치가 쇠락한 법정관리 기업들에 눈을 돌렸다. 2007년 상장사 남선알미늄 (3,645원 5 +0.1%)과 한통엔지니어링을 인수하고 건전지기업 벡셀과 조양을 인수해 정상화시켰다. 자신감이 붙자 경남모직을 통해 배운 화섬업의 재도약을 믿고 10년간 채권단 관리였던 동국무역(현 티케이케미칼 (2,980원 40 +1.4%))에 3000억원을 베팅해 대성공을 거뒀다.

◇양계→곡물→홈쇼핑→해운 = 김홍국의 하림 우 회장이 건설업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때에 김홍국 회장은 양계 사업을 전국화하고 관련 계통이라고 할 수 있는 축산과 곡물 사업에 나서 일종의 밸류체인 확장 전략을 썼다.

김홍국 하림 회장 /=이동훈 기자 photoguy@김홍국 하림 회장 /=이동훈 기자 photoguy@
김 회장은 세상을 에너지의 회귀 사이클로 바라본다. 독실한 크리스찬인 그는 태양을 통해 곡물이 자라면 그를 가축이 먹고, 그 가축을 사람이 식량으로 섭취해 다른 에너지원을 만들어낸다고 이해한다. 그래서 하림은 국내뿐만 아니라 거대한 중국 시장을 염두에 두고 선진(곡물업) 등 식량 산업 위주의 사세 확장에 몰입해 왔다.

하지만 사업 도중에 주요 기지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전염병 등에 의해 가축들이 순식간에 도살처분 되는 등 위기를 겪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리스크 분산 차원의 다각화가 필요하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하림은 2001년 한국농수산방송에 주요주주로 참여해 지분을 18%에서 수년간 과반으로 늘리면서 이종사업을 자연스럽게 거느리게 됐다.

크고 작은 M&A로 서로를 지켜보던 김홍국 회장과 우오현 회장이 최근 크게 맞붙은 계기는 2015년 팬오션 (5,010원 100 +2.0%) 인수전이었다. 당시 STX에 관심을 기울이며 인수전에 의지를 가졌던 이는 우 회장이었다. 우 회장은 2013년 한계기업 상태이던 대한해운을 인수해 이미 해운업에 진출해 있었다. 벌크선 중심의 대한해운에 국내 1위인 팬오션을 더하면 막강한 시너지를 낼 수 있던 터였다. 하지만 수차례의 M&A로 자금여력이 바닥났던 상황이라 우 회장은 김 회장에게 팬오션 공동 인수를 제안해 사업을 함께 키우자고 했다.

김홍국 회장은 당시 나름대로 팬오션을 분석하고 있었다. 우 회장의 해운업 진출을 눈여겨 보며 해운업과 곡물 운송업의 시너지를 계산하기도 했다. 당시 농수산홈쇼핑(현 NS쇼핑)의 성장과 기업공개(IPO) 가능성으로 인해 수천억원대 자금 여력이 생길 것이란 전망은 단독 베팅을 꿈꾸게 했다.

우 회장의 팬오션 공동 인수 제안에 김 회장이 가타부타 답을 하지 않은 까닭은 하림이 단독 인수가 가능하다고 보고 더 이상 소통을 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인수전에서 SM은 중도 포기를 선언했고 하림은 1조원을 베팅해 KKR 등 외국계 사모펀드(PEF)를 제쳤다.

◇한진해운과 STX 유산으로 해운업 승부= 우오현 회장은 팬오션 인수전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이후 2년간 권토중래했다. 지난해 한진해운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알토란 같은 컨테이너선 분야의 사업을 인수해 SM상선을 만들고 벌크선 위주의 대한해운과 함께 종합 해운업 영위 구조를 확보했다.

여기에 STX의 모태인 ㈜STX를 인수하면 정기선과 부정기선을 운영할 해운업 컨트롤타워를 확보하게 되고 더불어 이들 글로벌 유통업에 일감을 따낼 상사 기능을 갖추게 된다.

하림은 약 2000억원의 자기자금으로 인수한 팬오션이 지난해 1679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강한 사업적 시너지를 내고 있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지난해 1조원대를 호가하던 양재동 파이시티 부지를 반값인 4500억원대에 사들여 수도권 최대의 종합물류 유통기지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림은 ㈜STX 인수전에서 SM그룹과 경쟁을 벌이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지만 일단 파이시티 등의 기존 프로젝트에 자금을 집중해 여력을 분산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하림은 팬오션과 NS쇼핑, 파이시티를 아울러 육해공 물류시스템을 완비할 태세다.


하림은 제일홀딩스와 하림홀딩스를 양대 지주사로 팬오션과 하림, 선진, 팜스코, NS쇼핑 등 58개 계열사를 통해 올해 자산규모가 1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SM그룹은 티케이케미칼과 대한해운, 남선알미늄 등을 중심으로 32개 계열사 선대를 키웠고 올해 말 자산 규모는 5조원이 넘을 것으로 집계된다.

재계 관계자는 "하림과 SM이 최근 10년간 선의의 경쟁을 펼치면서 수십 차례의 M&A로 비슷한 형태와 속도로 기업집단을 일궈냈다"며 "두 기업 모두 그룹 자산규모가 조만간 10조원에 육박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주시하는 대기업 집단에 포함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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