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아내와 저는 30년 전 결혼했는데 결혼한 지 10년 정도 되었을 때 아내가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아내와 저는 결혼 초기부터 별로 사이가 좋지 못했습니다. 서로 성격이 잘 안 맞는데다가 장남인 저는 아내가 저희 부모님을 자기 부모님처럼 섬겨주기를 바랬는데 아내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아내 역시 제 벌이가 시원치 않다고 불만이 많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가 사업에 실패해서 경제적으로 힘들게 되자 더 다툼이 잦았고, 제가 아내를 때린 적도 몇 번 있습니다. 어느 날 술을 많이 마시고 들어가 부부싸움을 크게 하고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아내가 없었습니다. 그게 아내와의 마지막입니다.
아내가 집을 나가고 한동안은 돌아오려니 해서 기다리고 처가 식구들한테 사정했지만 아내는 결국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집 나갈 때 초등학생이었던 아들은 저희 어머니가 키워주셨는데 아내는 아들을 보러오지 않았고 물론 양육비도 전혀 안줬습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는 가끔 이혼하자고 연락이 오긴 했는데 제가 모른 척 했습니다. 누구 때문에 이 지경이 됐나 싶어서 아내의 말을 들어주기가 싫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20년이 훌쩍 지나가고 어느덧 환갑이 코 앞입니다. 처음에는 소장을 받고 화가 났지만, 너무 오래 전에 헤어진 사람과의 인연을 남겨두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서 저도 이제는 정리를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네요. 아내가 보낸 이혼소장에는 이혼해달라는 말 밖에 없었는데, 주변에서 누군가가 제가 이혼하게 되면 아내가 제가 받을 국민연금의 반을 받아간다고 합니다. 제가 얼마 전까지 일을 해서 국민연금을 계속 냈기 때문에 조금 있으면 70만원 정도 연금을 받을 수 있거든요. 결혼해서 실제 같이 산 기간보다 떨어져 있는 기간이 더 길어서 아내가 제 연금에 보탬이 된 건 별로 없는데도 아내가 제 연금의 반을 가져간다면 이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요? 아내가 제 국민연금을 가져가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국민연금법에 보면 결혼기간 5년 이상이 되면 이혼한 배우자가 받는 노령연금(가입기간 10년이상 가입자가 60세부터 받는 연금) 중 혼인기간에 해당하는 연금액을 균등하게 분할받을 수 있다는 규정이 있습니다(배우자의 분할연금수급권, 국민연금법 제64조 제1항). 이 규정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선생님의 노령연금을 아내가 절반 정도 가져갈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선생님처럼 실제 혼인기간과 명목상의 혼인기간이 다른 경우는 배우자의 연금분할을 막거나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만약, 아내가 선생님의 국민연금을 분할받겠다는 허황된 욕심으로 합의를 안 해준다고 해도 이혼소송에서 아내가 연금분할을 못 받게 하거나 아내가 받는 분할연금액수를 줄이는 판결을 받으면 되는데, 제 생각으로는 그련 판결을 받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인 2016년 12월 29일 헌법재판소가 이혼한 배우자가 국민연금을 분할받을 때 실질적인 혼인기간이 아니라 서류상으로만 존재한 명목상의 혼인기간 전체를 고려하는 것은 헌법에 불합치된다는 결정을 내렸거든요. 헌법에 불합치된다는 것은 위헌결정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고요. 이렇게 헌법재판소가 먼저 실제혼인기간을 고려해서 국민연금을 분할해야 한다는 점을 확실하게 해주었으니까 이혼재판에서도 실제혼인기간을 기준으로 분할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조언을 드린다면 아내가 주지 않은 아들 양육비를 지금이라도 받을 수 있으니 생각해보시라고 하고 싶네요. 합의나 판결로 양육비를 정하지 않은 경우에는 언제라도 과거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법원의 확고한 판례거든요. 지난 세월이 억울하다면 이런 식으로라도 보상을 받을 수 있으니 이 부분도 고려해보세요. 과거는 말끔하게 정리하시고 선생님의 미래가 행복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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